▲비조골의 붉가시나무
완도신문
비조골은 상왕봉을 중심으로 삼장안 마을과 완도의 여러 곳을 잇는 도보교통(徒步交通)의 중심지였다. 비조골에서 남쪽으로 향하면 한두재를 넘어 오늘날의 화흥리(花興里)를 거쳐 도암리(道岩里)에 다다르는 완도읍을 오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또 북쪽으로는 미내길이 있는데 미내길로 내려가면 예로부터 인근 섬을 연안여객선으로 연결하는 원동(院洞)에 다다른다. 또 다른 길로는 물맹이재(오늘날 완도수목원 제1전망대)를 거쳐 백운봉(600. 白雲峰)과 상왕봉을 가르는 하느재를 넘어 완도의 동부쪽인 대야리(大野里)에 이르는 오솔길이 있었다.
이 비조골에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붉가시나무가 숨어있다, 어떻게 홀로 떨어져 단일목(單一木)으로 살아남았는지는 모르지만 강대훈씨 집터 주변 잡목 속에 숨겨져 있다. 이 나무의 수령은 알 수 없지만 수고가 약 20m, 흉고직경 85cm, 흉고둘레는 258cm로 크기가 주변 나무들에 비해 압도적이다. 수간(樹間)이 통직(通直)하고 수형 또한 매우 웅장하다.
근원(根源)에서 약 2m를 곧게 뻗어 올라 크게 두 갈레로 갈라진 뒤 다시 여러 갈래로 수간이 퍼져있다. 다만 지난 수십년간 주변의 소나무와 잡목에 둘러 쌓여 수간이 상당히 수직으로 뻗어있다. 빨리 식생조사가 이루어지고 나무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서 보호수 지정을 서둘러야 할 필요가 있다.
붉가시나무는 나무의 조직이 아주 치밀하고 단단하면서도 탄력이 강해 예로부터 다양한 생활용품과 무기 제작 등에 다양하게 이용되었다. 특히 임진왜란(壬辰倭亂)때 적선의 배를 뚫을 때 사용된 천자총통(天字銃筒)의 화살이 대장군전(大將軍箭)인데 가리포진(加里浦鎭. 오늘날의 완도읍)에서 제작되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에 벌어진 안골포해전(安骨浦海戰)은 이순신 장군과 경상우수사 원균, 전라우수사 이억기 장군이 연합하여 대승을 거둔 해전으로 구키 요시타카(九鬼嘉隆)가 이끌던 아타케부네(安宅船 あたけぶね)와 세키부네(せきぶね)를 대장군전을 이용하여 모두 격침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