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함양
지난 5월 20일 정규화 교수의 밭에서 홍콩 중문대학교 박사과정의 두 연구원과 대학교수와 연구소 학생과 함양토종씨앗모임 심영지 대표, 본지 최학수 기자 등 9명이 모여 콩 심기를 시작했다. 흙에 구멍을 내고 한 칸에 콩 두 알씩. 세로줄이 넘어갈 때마다 다른 콩으로 바꾼다. 그렇게 모종판 하나에 야생콩 열두 점을 채운다.
콩을 종자 상태로 보관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5년이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밭에 심어 증식을 해야 한다. 물론 야생종의 특성을 고려해 농약과 비료 없이 자연 그대로 키운다. 이걸 30여년 반복해온 정규화 교수는 어느덧 칠순을 넘겼다.
이렇게 모은 콩은 전부 전라남도 일대 섬 등 한반도 전역을 훑으며 수집한 야생콩이다. 모은 씨가 발아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GPS 좌표 정보까지 데이터로 확보했다.
"이렇게 작은 콩을 먹어보겠다고 하루종일 물에 불려서 밥 짓는 데 넣었는데 콩이 자갈처럼 딱딱해서 다 버렸어요", "이 콩으로 콩나물을 해서 먹으면 먹을 수는 있는데 거무튀튀해서 안 예뻐요. 줄기도 얇고요" 역시 단순반복 노동 중에는 잡담이 최고다.
야생콩과 육종된 재배콩을 비교하면 천지차이다. 야생콩은 제대로 먹기도 힘든데 비해 재배콩은 낱알도 크고 빨리 성장하고 단백질도 많다. 하지만 재배콩은 그런 특성을 얻게 되면서 잃은 정보들이 많다. 유전적인 다양성이 낮아진 셈이다. 유전적 다양성이 높은 야생콩은 어떤 성질을 갖고 있을까? 정규화 교수에게 물었다.
"한 개만 이야기 하자면, 우리가 노인이 되면 다리에 힘이 빠져버리잖아. 근육이 약해져서 그런 거야. 야생콩에는 근육의 퇴화를 막아주는 물질인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있는 거야. 분명 재배콩은 야생콩에서 발달된 건데 이런 성분은 발견되지 않지. 참 재밌더라고."
현재 연세대학교의 도움을 받아 유전자원 분석을 마친 콩은 약 500점 정도다. 500점 분석을 위해 사용된 연구비용은 대략 10억원이다.
정규화 교수는 "콩이 세계인의 단백질을 최소 30% 이상 책임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콩은 굉장히 중요한 작물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종적으로 어떤 콩을 만들고 싶은지 묻는 질문에 정규화 교수는 "콩은 수요가 많다보니 목적이 다르다. 콩으로 두부나 비건 콩고기를 만든다고 하면 무조건 단백질 함량을 높게 콩을 해야 하고, 갱년기를 건강하게 보내는 기능성 콩을 만든다고 하면 이소플라본 성분이 포함된 콩을 개발해야 한다. 콩은 식품도 많이 쓰이지만 사료, 기름, 연료, 잉크나 페인트 소재, 섬유로도 쓰일 수 있으니 정말 다양하다"며 "용도가 다양한 만큼 목적에 따라 만들 콩이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정규화 교수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콩을 심었다. 그렇게 유지한 게 30년이 넘었다. 기후위기와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 식량주권, 종자주권의 중요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 문제들은 해를 거듭하며 더 중요해질 것이다. 정규화 교수의 진주 콩밭에는 올해도 모종이 심겨지겠지만 야생콩은 이미 조금씩 소실되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 새 수많은 해법과 대책이 사라지고 있다. 미국HBO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처럼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ing)" 겨울이 오기 전에 문제 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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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종자 회사의 수십억 제안 거절한 야생콩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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