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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2세의 금수저 고백?... 최태원 회장의 딜레마

['세기의 이혼소송' 관전법] '아버지가 다 했다'는 최 회장 - '당신도 경영 잘했다'는 고법

등록 2024.06.19 18:53수정 2024.06.19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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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노소영 아트나비센터 관장과의 이혼 소송 항소심 관련 입장을 밝힌 뒤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노소영 아트나비센터 관장과의 이혼 소송 항소심 관련 입장을 밝힌 뒤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연합뉴스
  
"재판부는 오류에 기반해서 SK C&C의 핵심 성장 요인이 최태원 회장의 경영활동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누가 한 말일까? SK C&C(옛 대한텔레콤)는 SK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SK㈜의 모태가 되는 회사다. 이를 고려하면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두고 '경영능력 없는 금수저 또는 재벌 2세'로 폄훼하는 말로 들린다.

놀랍게도 최 회장의 법률대리인 이동근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가 지난 17일 SK서린빌딩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그것도 최 회장이 같은 자리에서 자신의 이혼소송을 두고 대법원의 판단을 받겠다는 발언을 하고 퇴장한 직후였다.

최 회장 쪽은 왜 스스로의 경영능력을 깎아내리는 걸까. 이것이 현재 '세기의 이혼소송'에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포인트다.

'재산분할 1조3808억'을 뒤집어라

결론부터 말하면, 재산분할 금액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배우자가 기여하지 않은 상속재산(특유재산)은 재산분할대상에서 제외된다. 최 회장이 시가총액 약 3조 원에 달하는 SK㈜ 주식을 두고 아버지 최종현 선대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특유재산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최 회장 쪽은 '승계상속형' 사업가와 '자수성가형' 사업가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자신은 전자(승계상속형)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022년 12월 이혼소송 1심(서울가정법원 가사2부)은 최 회장 손을 들어줬다. 최 회장 보유 SK㈜ 주식은 재산분할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론은 위자료 1억 원, 재산분할 665억 원.

하지만 지난 5월 항소심 판결(서울고등법원 가사2부)에서 위자료 20억 원과 재산분할 1조3808억 원으로 껑충 뛴 이유는 1심 판단이 뒤집혔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현재 SK그룹은 최태원·노소영 부부가 함께 일궈낸 것으로, 최 회장 보유 SK㈜ 주식은 재산분할대상이 된다고 판단했다. 노 관장몫 재산분할 비율은 35%로 산정됐다.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힌 이상, 최 회장 측의 관건은 SK㈜ 주식을 어떻게 하면 다시 재산분할대상에서 제외시킬 수 있느냐다. 원칙적으로 이혼 등 가사재판은 비공개로, 양쪽의 구체적인 주장이 잘 공개되지 않는다. 그런데 상황이 불리해진 최 회장 측이 항소심 판결문에서 수치 오류를 발견했고, 이를 고리로 자신의 주장을 매우 구체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법원이 이를 일부 받아들여 판결문을 정정하기도 하는 등 성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복잡한 수치를 뒤로 하고, 2세 최 회장이 아버지에 비해 경영능력이 훨씬 떨어진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묘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깎아내려야 하는 딜레마
 
SK SK 본사
SKSK 본사이정민
 
이런 관점으로 최근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이해가 쉽다. 19일 현재까지 최 회장 쪽과 재판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항소심 재판에서 SK㈜ 주식이 재산분할대상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주요 기준은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과 최태원 회장 경영 시기의 SK㈜ 주식 가치 상승폭이었다. 이 과정에서 재판부의 실수가 나왔고, 최 회장 쪽이 이를 고리로 대대적인 공세를 폈다.

대한텔레콤·SK C&C에서 이어진 SK㈜의 1주당 가치는 1994년(최태원 회장이 증여받은 돈으로 최초 주식을 취득한 시점) 8원 → 1998년(최종현 선대회장 사망 무렵) 1000원 → 2009년(상장 시점) 3만5650원 → 2024년(재산분할 기준 시점) 16만 원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1998년 가치를 계산하면서, 액면분할 비율을 잘못 적용해 1000원이 아닌 100원으로 산정했다. 이에 따라, 최종현 선대회장 시기(1994~1998년) 대비 상장 시점까지의 최태원 회장 시기(1998~2009년) 상승폭이 12.5배 : 355배라고 판결문에 적시됐다. 최 회장의 기여도가 훨씬 큰 만큼, 최 회장 보유 SK㈜ 주식은 부부가 공동으로 일군 재산으로서 재산분할대상이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계산 오류를 바로잡으면, 그 비율은 125배 : 35.5배로 역전된다. 최 회장 쪽의 노림수가 이것이다. 17일 이동근 변호사는 "SK㈜ 주식이 최종현 선대회장의 기여도가 큰 재산이 되면, 1심 판결처럼 (재산분할대상에서) 빠지게 될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재판부는 판결문 오류를 즉각 수정하면서도, 결론은 바뀌지 않는다는 입장을 18일 내놨다. 1998년 주식 가액 오류는 중간단계의 오류일 뿐이고, 최 회장 경영 시기를 재산분할 기준 시점(항소심 변론종결 시점)인 2024년 4월로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 입장을 따라 계산하면, 최종현 회장 시기 대비 최태원 회장 시기 상승폭은 125배 : 160배다. 재판부는 "160이 125보다 크기 때문에, (원고 부친의 경우에 비하여) 원고의 경영활동에 의한 기여가 상대적으로 더 크다고 볼 수 있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재판부는 이렇게 강조했다.

"이 사건 SK주식의 가치 증가에 선대회장인 원고 부친(최종현)의 경영활동과 현 회장인 원고(최태원)의 경영활동이 모두 기여하였고..."

'아버지가 다 했고 나는 기여한 바가 별로 없다'는 아들을 향해, '그게 아니라 아버지만큼 당신도 잘 했다'고 법원이 공개적으로 밝히는 셈이다.

18일 오후 최 회장 쪽의 재반박이 이어졌다. 변호인단은 "재판부는 실질적 혼인관계는 2019년에 파탄이 났다고 설시한 바 있는데, 2024년까지 연장해서 기여도를 재산정한 이유가 궁금(하다)"면서 "12.5 : 355를 기초로 판단했던 것을 125 : 160으로 변경했음에도 판결에 영향이 없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재차 반박했다.

2022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그해 대법원에 접수돼 판결이 나온 이혼소송 사건은 모두 508건이다. 이 가운데 항소심 판결이 파기된 사건은 전체의 1.77%인 9건에 불과하다.

스스로를 공개적으로 깎아내리기까지 한 최태원 회장은 1.77% 확률을 뚫을 수 있을까.
#최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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