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극영 선생님의 방달력은 선생님이 작고하신 1988년 11월의 달력 그대로다.
최민정
윤극영 선생님은 경성고등보통학교 졸업 후 도쿄에 있는 동양음악학교에서 바이올린과 성악을 공부했다. 유학 시절 만난 방정환 선생님을 비롯해 진장섭, 조재호, 손진태, 정병기, 이헌구, 마해송 선생님과 함께 '색동회'를 만들었다.
색동회는 '바른 어린이가 성장하여 바른 어른이 됩니다.'라는 표어 아래 창립된 어린이 운동 단체다. 이 단체는 어린이 문학전집을 간행하거나 어린이 동화구연대회를 여는 등 아이들의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특히 반달 할아버지, 윤극영 선생님은 아이들이 즐겁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동요를 보급해 아동문화에 싹을 틔웠다고. 그의 작품은 <설날>, <따오기>, <고드름> 등 제목만 듣고도 저절로 멜로디가 입속에서 맴도는 곡들이 수두룩하다.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수많은 동요와 동화를 창작하신 윤극영 선생님. 미래에 태어날 아이들이 반달 할아버지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색동회가 창립된 1923년은 일제 강점기였다. 조선 가사를 붙인 찬송가곡과 일본 노래가 전부인 시대를 살았던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무엇이었을까? 아마 윤극영 선생님은 그 정답을 아셨던 모양이다.
이듬해인 1924년 선생님은 동요 단체인 '다리아회'를 조직하여 동화 창작 활동과 어린이 문화운동을 전개했다. 아이들이 우리말로 된 노래를 부르며 교문을 나서길 간절히 소망했다는 선생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거실에 모여 프로그램의 참가자들이 한목소리로 <반달>을 부르자 해설사 선생님과 큰아이의 손놀이가 시작됐다.
"우리가 놀던 걸 너희들도 그대로 하는구나?"
문학기행 열차에 동승한 참가자 중, 나이 일흔을 넘기셨다는 할머니께서도 손놀이를 하시며 아이처럼 해맑은 웃음을 터뜨리셨다.
거실에는 윤극영 선생님의 노랫말에 그림을 더한 시화전이 한창이었다. 작품 <따오기>를 보며 해설사님의 설명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