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간호중>
찬란
영화의 배경은 2046년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영화를 보다보면 어쩌면 이런 미래는 조금 더 빨리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술의 발전 속도 때문이 아니라 이 사회의 노령화 속도 때문이다. 질병에 걸린 노인의 수가 많아지고 돌봄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될수록 그 돌봄자를 대체할 '비인간'에 대한 수요는 늘어날 것.
그런데 이런 흐름이 당연할 것이란 생각을 잠시 멈추고, 이 발상을 재고해 봐야 할 여지가 있다. 로봇으로 인간을 대체할 방법만 모색하려 하는 것은 이미 돌봄이라는 것이 '인간이 할 일이 못 된다'는 명제를 인정하고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환자를 돌봐주는 것이야말로 하루 세 번 밥과 약을 챙겨주는 단순한 일이 아니라 인간의 온기를 느끼게 해주고 마음을 살펴주는 일이니 그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행위가 필요한 영역일 텐데, 우리는 돌봄 문제의 해결책에 대해 이런 인간성은 쏙 빼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돌봄을 하는 보호자에 대한 대책, 즉 돌봄 때문에 생계를 이어갈 수 없는 문제나 소위 '독박 돌봄'으로 인한 정신적 우울에 대한 해결, 또 고용된 돌봄 노동자의 처우에 대한 '인간적인' 해결책을 먼저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하는 것이 바로 간병 로봇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 로봇의 구입 비용을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부터 돌봄 문제를 오로지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의식이 깔려있다고 할 수 있다.
돌봄을 로봇이 대체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될 수 있을지, 영화를 보면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간병 로봇을 구입하기 위해 집까지 팔았음에도 보급형밖에는 구입할 수 없었던 정길은 치매 남편을 돌보는 데 대한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어느 날, 수면제를 먹고 목숨을 끊으려고 한다. 죽음으로 이르는 과정에서 고통의 심연을 헤매다가 로봇에게 '살려달라'고 외치지만 환자 외에는 돌보지 않도록 설정된 로봇은 죽어가는 정길을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고급형 로봇은 달랐을까? 보호자 돌봄 기능까지 탑재된 '간호중'은 환자보다도 보호자인 정인의 상태에 더 민감해진 나머지 그만, 환자인 정인 엄마의 인공호흡기를 떼어 버린다. 엄마가 없어야 정인이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생존확률이 더 높은 정인을 살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다. 사람이 죽고 있는데도 아무런 감정을 가지지 못한 보급형 로봇도, 인간만큼의 감정을 소유해 인간 대신 임의적인 판단을 내려버린 고급형 로봇도 인간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마찬가지다.
영화 <간호중>은 한 방송사에서 시리즈로 내놓은 '시네마틱 드라마 SF 에잇(8)' 중 한 편이다. 8편의 SF 드라마는 앞으로 인공 지능이 진화할수록 격변하게 될 미래 사회를 다양하게 상상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그 작품들은 모두 '기술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지켜내야 할 인간성은 어디까지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중 <간호중>은 이미 인간의 존엄성이 화두가 된 '돌봄'이라는 영역에 기술의 발달이라는 숙제까지 안겨준 꽤 무거운 주제의 영화이다. 그럼에도 보호자와 간병 로봇 둘을 모두 연기한 1인 2역의 이유미, 염혜란 배우의 연기를 보는 재미와 영화 마지막, 지나치게 인간화되어버려 생존의 갈등을 겪는 AI 로봇 '간호중'의 고뇌를 지켜보는 참신한 재미가 있다.
노인 돌봄을 생각하다보면 한숨이 절로 나오며 마음이 무거워질 수 있지만 짧은 길이의 신선한 SF 영화라고 생각하고 접근한다면 오히려 가벼운 마음으로 노인 문제를 접할 수 있는 수작을 만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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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엄마가 있었다> 작가.
문화, 육아, 교육 분야의 잡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결혼 후 힘든 육아와 부모의 질병을 겪으며 돌봄과 나이듦에 관심 갖고 사회복지를 공부한다. 소중한 일상, 인생, 나이듦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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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 로봇'은 돌봄 부담을 줄이는 해답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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