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 비드〉 표지
이숲출판사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에 읽은 레아 뭐라비에크의 그래픽 노블 <그랑 비드>(2023, 이숲)은 흥미로운 텍스트이다. 자신을 증명하지 못하면 살 수 없는 시대를 만화의 형식으로 맛깔스럽게 풍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만화는 명성을 얻지 못하면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없어 불안해하는 존재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텍스트의 인물들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명성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결혼하지 못하면 동물로 변하는 세계관을 담고 있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더 랍스터〉(2015)의 주인공들처럼, 이 그래픽 노블의 인물들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애쓴다.
만약 이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사회에서 도태되니 그렇다. 도태된다는 것은 특정한 조직에서 쓸모없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이다. 그러니 악착같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발악하는 모습은 독자들에게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중요한 것은 이런 세계관이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만화 속 인물들은 함부로 거역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런 풍경은 지금 이곳의 우리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기도 하다.
자신을 증명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세계관을 품고 있는 이 만화에서 유일한 해결책은 '그랑 비드(이 책의 제목 그랑 비드(Le Grand Vide)는 영어로 Big Empty, 즉 '대공허'로 번역할 수 있지만, 이런 의미를 담고 있는 지역의 고유 명사여서 그대로 그랑 비드라고 표기했습니다 -편집자말)'를 찾아가는 것이다. 익명의 사람들을 붙잡기 위해 아우성치는 곳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복잡한 도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시작부터 끝까지 탈출구에 해당하는 '그랑 비드'가 수없이 반복된다. 하지만 도시로부터의 탈출은 쉽지 않다. 실제로도 주인공 마넬 나에르는 시작부터 끝까지 도시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곳 세계관에서 시키는 대로, 원하는 대로, 조정하는 대로만 강박적으로 자신을 몰아세울 뿐이다. 따라서 이 만화는 자신을 증명해야만 하는 강박적인 세계관을 마넬 나에르라는 인물을 통해 재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인공 마넬 나에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