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판 일송북이 '한국 500인' 프로젝트로 <나는 왕평이다>를 펴냈다.
일송북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아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이 잠 못 이뤄
구슬픈 벌레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황성옛터'라는 노래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레코드판을 좋아하는 음악애호가라면 일제강점기 때 이름을 날렸던 가수 이애리수가 가녀린 목소리로 부르는 '황성옛터'를 기억하고 있다. 또 가수 남인수를 떠올린다면 '황성옛터'가 가장 먼저 기억될 것이다.
황성옛터는 1908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연기와 공연기획, 운영, 악극단 효과 방법 등을 배우고 활동한 왕평(본명 이응호)이 작사한 노래이다.
왕평의 나이 20세이던 1928년 극단 '조선연극사'의 순회공연 중 전수린이 개성 만월대에서 느낀 감회를 먼저 멜로디로 만들었고 왕평이 작사했다. 이 노래는 가수 이애리수가 불렀다. 1932년 4월 레코드로 출반되었고 당시 5만 장이라는 판매기록을 남겼다.
'황성옛터'는 망국의 서러움과 상처를 쓰다듬어주고 있는 우리 민족의 비장한 한의 정서가 그대로 묻어나는 가사로 이 노래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 불리게 되자 조선총독부는 이 곡을 금지시키고 부르는 조선인을 처벌했으나 금지곡이 되면서 더욱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왕평은 1930년대 악극 활동과 난센스, 만담 등의 대본을 쓰고 직접 출연하면서 이름을 날렸으나 1940년 평안북도 강계에서 연극 '남매'를 공연하던 도중 무대에서 뇌일혈로 사망했다.
그는 연극으로 시작해 레코드 음반 발매, 만담 대본 쓰기와 직접 출연해 100여 곡의 가사 쓰기, 신진가수 발굴, 영화배우 출연, 유랑극단 무대행사의 기획과 책임자로 초창기 우리나라 대중문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왕평이 사망한 후 1941년 그를 추모하는 노래 '오호라 왕평(조명암 작사, 김해송 작곡, 남인수 노래)'이 발표되었고 1996년부터 그의 고향인 영천에서 '왕평가요제'가 열리고 있다.
이동순 교수 <나는 왕평이다> 출간 "고품격의 시인이자 대중문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