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인생곡선 생애 주기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삶의 모양이 바뀐다
문진수
이 그림은 두 개의 다른 인생 곡선을 그려본 것이다.
파란색 실선이 우리가 아는 곡선, 빨간색 점선이 새로 그린 곡선이다. 20세부터 10년을 준비해 첫 번째 인생을 살고, 50세부터 다시 10년을 준비해 두 번째 인생을 산다는 시나리오다. 60세를 기점으로 놓고 보면 두 곡선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전자(단봉)는 내리막의 시작점이지만, 후자(쌍봉)는 오르막의 출발점이다. 어느 선을 따라가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과 속도가 달라질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봉우리가 하나뿐인 단봉낙타 상(像)에 맞추어 살기 마련이다.
포물선의 꼭짓점(60세)을 지나면 내리막길이 시작된다는 것. 전반부의 성공 여부가 후반부의 삶의 질을 결정하게 될 거라는. 따라서 전반부 동안 최대한 많은 식량을 창고에 쌓아 두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돈을 버는 일에 매진한다. 하지만 이 시도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위험인 시대가 도래한 탓이다.
은퇴한 시니어 100명의 인생 궤적을 살펴보았는데, 90명은 파란색 실선을, 10명은 빨간색 점선을 따르고 있었다. 연역하면 약 1할의 사람들이 기성의 통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생 항로를 걷고 있는 셈이다. 현재 지구에 살고 있는 전체 낙타 개체 가운데 쌍봉낙타의 비중이 10%라는 사실과 묘하게 닮았다. (쌍봉낙타는 단봉낙타에 비해 속도는 느리지만, 극한 상황을 견디는 힘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흐름은 '개인의 실존적 결단'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궤적을 따라 걷는 이가 늘어나면 인생 항로의 새로운 표준(new normal)이 만들어진다. 우리 사회 전반에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이미 변화는 시작된 걸로 읽힌다. 전반부보다 훨씬 왕성한 에너지로 후반부 삶을 개척해 가는 중장년층이 빠르게 늘고 있다. 우리 시대의 시니어들은 이제 '사회적 돌봄'의 대상이 아니다.
국가는 이 변화에 잘 대응하고 있을까.
최근 발표된 노인 정책 중 가장 황당한 버전은 '은퇴자 해외 이민 보내기'다. 생산가능인구(분모)가 줄어드니 비생산 인구(분자)를 국외로 보내자는 아이디어인데, 지금 우리나라 시니어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가 결핍되어 있다. 미래의 노인 세대가 현재의 노인층보다 부유할 거라는 가정도 터무니없다. 국책 연구기관이 내놓은 대안이 이 수준이라니, 현실 인식도 사회적 상상력도 남루하기 짝이 없다.
부(富)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 은퇴자의 지형은 '돈 걱정 없이 사는' 10%와 '너무 오래 살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90%로 나뉘어져 있다. 해외 이민을 떠날 물질/정신적 여유를 가진 집단은 누구인가. 상위 10%다. 나머지 90%는 이민을 꿈꿀 여력이 없다. 상위 10%가 이민을 떠나면 무슨 일이 생길까? 국내에서 쓸 돈을 해외에서 쓰게 된다. 이들이 국내에 남아 소비하는 것이 국가 경제에 훨씬 도움이 된다. 중학교 3학년이면 아는 경제 상식이다.
2024년은 우리나라 역사에 기억될 만한 한 해가 될 것이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총인구가 정점을 찍는 시점이 올해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는 5167만 명이고, 2024년 예상 인구수는 5175만 명이다. 올해를 기점으로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해서 2030년은 5131만 명, 50년 후인 2072년은 3622만 명이 될 걸로 예측된다. 1977년의 인구로 돌아가는 것이다.
인구감소는 피할 수 없는 미래가 되어가고 있다.
지금은 인구감소 자체보다 그에 따른 대응 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다. 아직 본격적으로 검토되지 않은 주제가 있다. '줄어든 인구 안에서 어떻게 생산성을 유지할 것인가?'라는 의제다. 분자에 속한 비생산 인구를 분모로 돌려 생산가능인구를 늘리는 방안을 말한다. 은퇴자 해외 이민 보내기의 반대 '버전'이다.
노년기에 접어든 국민이 최소한의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일차적 책임은 국가에 있다. 당신이 지금 정년과 은퇴라는 변곡점을 앞두고 있다면, 국민의 책임과 의무를 다했고 나라에 세금을 성실히 낸 정직한 시민으로 살았다면, 그럼에도 앞에 놓인 긴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라면,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정부는 달라진 인생 곡선 안에서 '답'을 구해야 한다.
두 번째 봉우리를 오르는 이들을 위해 국가가 길을 닦아주는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라. 정년이 지났어도 생산적 활동을 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는 중장년이 넘쳐난다. 이들을 생산가능인구로 전환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면 된다. 하루 3시간씩 근무해 월 27만 원을 받는 공익형 노인 일자리 수준의 볼품 없는 대응이 아니라 크고 담대한 규모의 일자리 뉴딜정책을 실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