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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처럼 비 쏟아진 오송 지하차도 "여전히 우리에겐 죽음의 터널"

[현장] 오송 참사 1주기 앞두고 유가족·생존자·시민들 도보행진... "진상규명, 참사 당일 멈춰"

등록 2024.07.08 19:57수정 2024.07.09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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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송참사유가족협의회·생존자협의회·시민대책위원회가 8일 오전 참사 현장인 궁평제2지하차도에서 1주기(오는 15일)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도보행진에 나섰다. 이들은 11일까지 충북도청으로 이동해 결의대회를 열 계획이다.
오송참사유가족협의회·생존자협의회·시민대책위원회가 8일 오전 참사 현장인 궁평제2지하차도에서 1주기(오는 15일)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도보행진에 나섰다. 이들은 11일까지 충북도청으로 이동해 결의대회를 열 계획이다.박수림

"오송 참사로 14명의 생때같은 시민이 돌아가셨고, 16명의 생존피해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도 진상규명과 관련해서는 모든 것이 지난해 참사 당일에 멈춰 있습니다." - 최은경 오송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

"아무것도 이루어진 게 없는데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책임지지 않는 정부와 지자체에 경각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언론의 관심이 필요하거든요." - 오송 지하차도 참사 생존자 A씨


오늘도 그날처럼 비가 쏟아졌다. 1년 전 가족을 잃은 이들과 살아남은 이들은 다시 오송 지하차도 아래 섰다. 그리고는 "악몽 같은 1년이 지났지만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다"고 힘주어 말한 뒤 청주 시내를 걷고, 걷고, 또 걸었다. 좀 더 많은 시민에게 "기억해달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오송 참사) 1주기(7월 15일)를 일주일 앞둔 8일 오전 10시. 오송참사유가족협의회·생존자협의회·시민대책위원회와 충북 지역 정치인들이 참사가 발생했던 궁평제2지하차도에 모여 추모 기간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도보행진에 나섰다.

이들 80여 명은 8~11일 도보행진을 이어간다. 행진은 궁평제2지하차도를 시작으로 청주시외버스터미널, 청주지방검찰청, 청주시청 등을 거쳐 충북도청 앞까지 진행한다.

반복되는 참사에 "처벌 지지부진"
 
 오송참사유가족협의회·생존자협의회·시민대책위원회가 8일 오전 참사 현장인 궁평제2지하차도에서 1주기(오는 15일)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도보행진에 나섰다. 이들은 11일까지 충북도청으로 이동해 결의대회를 열 계획이다.
오송참사유가족협의회·생존자협의회·시민대책위원회가 8일 오전 참사 현장인 궁평제2지하차도에서 1주기(오는 15일)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도보행진에 나섰다. 이들은 11일까지 충북도청으로 이동해 결의대회를 열 계획이다.박수림
    
오송 참사로 아버지 고 이수영씨를 잃은 아들 이중훈씨는 행진 선두에서 '진상규명,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라는 현수막을 들고 걸었다. 그의 아버지는 지하차도를 지났던 747번 버스기사였다. 말없이 묵묵히 걷던 그는 기자가 다가서자 "아버지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아까 747번 버스가 지나가더라고요. 저희가 걸어온 길이 747번 버스 노선이거든요. 특히 오늘처럼 비가 오고 버스가 보이면 아버지 생각이 참 많이 나죠.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참사가 현실 같지 않아요. 꿈이라면 좀 빨리 깨면 좋겠고요. 그렇지만 이게 또 현실이라는 게 참... 


2년 전 쯤에 아버지랑 나눴던 대화도 떠올랐어요. 그날이 오랜만에 아버지를 만난 날이었는데, 제가 그때 머리를 기르고 있었거든요. 아버지께서 저한테 '머리는 왜 기르냐, 음악 하려는 거냐'라며 장난을 치셨어요. '소아암 환자들한테 기부하려고 기르는 중'이라고 하니까 '잘했어'라고 이야기 해주셨던 게 생각났어요."


'참사 1주기를 앞두고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말에 이씨는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그리고 이를 위한 국회의 국정조사 실시"라고 답했다. 그는 "또한 (정부가) 재발 방지 대책을 좀 더 꼼꼼히 살폈으면 좋겠다. (충청북도가) 현재 지하차도 벽에 탈출용 핸드레일(안전 손잡이) 2개를 달았는데 급물살에는 성인 남성도 못 버틴다"라며 "있으나 마나 한 대책만으로는 또 작년처럼 희생자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오송 참사 이후에도 인재가 반복되는 것 또한 강하게 지적했다. 

"최근에 경기도 화성에서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가 있었잖아요. 일하셨던 분들 대부분이 외국인인데 배터리 화재 발생 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출구는 어느 쪽인지 등 안전교육이 안 됐더라고요. 인재가 반복되는 거죠. 오송 참사도 최고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지지부진하고, 아리셀 참사의 책임자도 처벌이 될는지..."

"충북도지사 등 수사 지지부진, 검찰 직무유기"
 
 오송참사유가족협의회·생존자협의회·시민대책위원회가 8일 오전 참사 현장인 궁평제2지하차도에서 1주기(오는 15일)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도보행진에 나섰다. 이들은 11일까지 충북도청으로 이동해 결의대회를 열 계획이다.
오송참사유가족협의회·생존자협의회·시민대책위원회가 8일 오전 참사 현장인 궁평제2지하차도에서 1주기(오는 15일)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도보행진에 나섰다. 이들은 11일까지 충북도청으로 이동해 결의대회를 열 계획이다. 박수림

이씨 뒤로는 참사 생존자 A씨가 걷고 있었다. 그는 참사 당일 함께 차에 타고 있던 친한 형을 잃었다. 두 사람은 10여 년을 알고 지낸 대학 동문 겸 이웃사촌이었다. A씨는 "참사 이후 두통을 앓고 있다"고 했다.

"비가 오는 날은 항상 두통이 심해져요. 오늘도 신경안정제랑 진통제를 먹고 왔어요. 신경이 곤두서있다고 해야 하나. 오늘 지하차도에 가니까 울분이 차오르고 화가 나더라고요. 충북도청이 재개통을 연기하면서 피해자와 유가족 탓을 한 것도 생각났어요."

A씨는 "정부는 의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오송 참사의 원인을 조사하지 않고 있다. 충북도청과 청주시청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라며 "경찰은 법적인 처벌에 집중하고 있어서 진상규명과는 좀 거리가 있고, 그래서 저희는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위해서 국회의 국정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더해 A씨는 "충북도지사, 청주시장, 행복청장에 대한 소환 조사 후 서너 달이 지났는데도 검찰은 기소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검찰이 직무를 유기하는 것이다. 계속 이렇게 기소가 지지부진하다면 특별법이나 특검도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시민들에게 "함께 행동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최근 한 뉴스에서 봤던 클로징 멘트를 전해드리고 싶어요. '반복되는 참사는 인재'라고 하더라고요. 참사는 절대 뉴스 속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저도 저에게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시민분들께서도 경각심을 가지면서 함께 관심 갖고 행동해 주셨으면 합니다."

"잊힐까 걱정" 그 뒤 따라간 시민들
 
 오송참사유가족협의회·생존자협의회·시민대책위원회가 8일 오전 참사 현장인 궁평제2지하차도에서 1주기(오는 15일)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도보행진에 나섰다. 이들은 11일까지 충북도청으로 이동해 결의대회를 열 계획이다.
오송참사유가족협의회·생존자협의회·시민대책위원회가 8일 오전 참사 현장인 궁평제2지하차도에서 1주기(오는 15일)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도보행진에 나섰다. 이들은 11일까지 충북도청으로 이동해 결의대회를 열 계획이다.박수림

참사로 어머니를 잃은 최은경씨는 기자회견에서 유가족 대표로 발언할 때도, 행진할 때도 "계속 엄마를 떠올렸다"고 했다. 

"(기자회견을 했던) 그 지하차도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장소잖아요. (참사 당일처럼) 오늘 오전에도 비가 많이 내렸고요. 그날이 떠올라서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참사 이후 지하차도에 49재 때도 가고, 현장 조사할 때도 갔지만 여전히 저희에게는 '죽음의 터널' 같은 느낌이에요. 

마음의 준비도 못 하고 하루아침에 엄마가 사라져서 못다 한 말이 많아요. 엄마한테 말을 전할 수 있다면 '엄마는 정말 훌륭한 엄마였다'고, '나랑 동생에게 최선을 다했고 엄마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 거'라고, '우리가 엄마한테 더 신경 쓰고 놀러도 많이 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너무 죄송하다'고 전하고 싶어요."

최씨는 "오송 참사가 잊히는 게 걱정스럽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사람들의 관심도 멀어질 것이고 그러다보면 진상규명이나 책임자 처벌도 멀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라며 "여전히 이뤄진 게 없어 엄마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한 번 더 노력하자, 힘들지만 힘내자' 이런 마음으로 행진했다"라고 말했다. 

여러 시민도 이날 행진에 걸음을 보탰다. 청주시민 진영(29)씨는 "오송 참사가 누구에게나 트라우마로 남았다"고 했다.

"오늘 부모님께서 '비가 많이 오니까 지하차도 쪽은 가지 마'라고 말씀하셨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비가 많이 내리면 정부가 대응을 해줄 거라는 기대보다 '개개인이 조심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하시는 거잖아요. 청주시민, 충북도민, 그리고 전국에 있는 사람들 모두 오송 참사가 트라우마로 남은 거예요. 1년이 지났지만 아직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해요."

시민 장새롬(40)씨는 묵묵히 걸어가는 유가족과 생존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참사 1년이 됐는데도 제대로 된 대책이 없고 책임자들이 모른 척하는 것이 실망스럽습니다. 분노가 차올라요. 제가 참사를 겪었더라도 아마 다른 시민들이 저와 함께 걸어주셨겠죠. 저 역시 그런 마음으로 오늘 걷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오송참사 1주기 "진상규명·책임자 처벌이 첫걸음" https://omn.kr/29cje
 
 오송참사유가족협의회·생존자협의회·시민대책위원회가 8일 오전 참사 현장인 궁평제2지하차도에서 1주기(오는 15일)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도보행진에 나섰다. 이들은 11일까지 충북도청으로 이동해 결의대회를 열 계획이다.
오송참사유가족협의회·생존자협의회·시민대책위원회가 8일 오전 참사 현장인 궁평제2지하차도에서 1주기(오는 15일)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도보행진에 나섰다. 이들은 11일까지 충북도청으로 이동해 결의대회를 열 계획이다.박수림
#오송참사 #오송지하차도참사 #1주기 #진상규명 #청주오송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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