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런던 패럴림픽 개막식2012년 8월 29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패럴림픽 개막식 오프닝 공연 모습.
EPA/연합뉴스
영국의 패럴림픽 유산 프로젝트(National Paralympic Heritage Trust) 매니저 비키 홉워커는 2012 런던하계패럴림픽(런던 패럴림픽)이 영국 대중의 인식을 급진적으로 변화시켰다고 언급했다(최한별, 2018). 실제로도 런던 패럴림픽은 패럴림픽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대회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영국의 장애인운동계와 정반대이다. 런던 패럴림픽 준비 과정에서 영국 정부는 장애인을 세금 도둑으로 몰아세워 장애인 복지 예산을 삭감했고, 이는 장애인의 자살률이 급증하는 결과로 이어졌다(Crow, 2014).
장애인운동의 비판에는 성찰할 지점이 있음에도 패럴림피즘은 '포용사회 구현'이라는 규준에 부합하는 이야기만을 선별하여 패럴림픽 역사
'안'으로 포함시킨다.
'안'에서
'우리'가 이끌어가는 역사는
'밖'에 있는
'그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면서 내적 질서를 유지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패럴림피즘은 패럴림픽 무브먼트로 인해 야기되었던 억압을 은폐하며 권력을 존속시킨다.
'우리'를 선별해내는 패럴림피즘
패럴림피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우리'를 선별하는 기능으로 작동하고 있다. 대부분의 장애 관련 연구물과 보고서는 1988년 서울하계장애자올림픽(서울 패럴림픽)을 장애인 복지의 중요한 기점으로 기록해 왔다. 대표적으로 최근 출간된 '어둠을 뚫고 새벽을 열다'(차흥봉, 박삼옥, 안이문, 2022)는 서울 패럴림픽을 설명하면서 장애인 복지 패러다임 전환, 비장애인(전문가 또는 국가)의 헌신, 장애 극복 등의 전형적인 패럴림픽 서사를 반복하며 오늘날의 에이블리즘과 결을 맞추었다. 패럴림피즘은 비장애 중심의 내러티브를 끊임없이 불러와 재기술하며 권력을 견고하게 하고, 시혜자의 정체성을 가진 이해관계자들에게 '우리'라는 동질성을 재확인시킨다.
반면, 연동교회 점거 후 단식 농성(3월 28일), 최초의 대중집회인 장애인권익촉진 범국민결의대회(4월 16일), 88장애자올림픽조직위원회 점거투쟁(7월 2일), 기만적인 장애자올림픽 폭로 및 장애인 인권쟁취 결의대회(10월 9일) 등은 서울 패럴림픽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사건임에도 여전히 패럴림픽 역사에서 다뤄지지 않는다.
물론, 이 시기 장애인 활동가는 영웅도 아니었고, 장애인운동은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킬 만큼 체계적이거나 영향력이 있지 않았다. 다만, 여기서 주목해야하는 것은 패럴림피즘과 에이블리즘이 결합하여 권력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서울 패럴림픽은 다수의 장애인의 권리를 묵인하며 개최된 행사였음에도 그 성공의 서사는 지금까지 균열 없이 에이블리즘을 공고히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패럴림피즘은 "장애인의 역량을 강화하여 장애를 극복하도록 지원하고, 개최국의 사회 통합을 촉진하여 진보적 변화를 이끈다"라는 믿음을 만들어낸다. 대부분의 시민은 패럴림피즘의 헤게모니에 자발적으로 동의한다. 에이블리즘에 기초하여 세워진 사회 체계에서 '장애 극복'과 '사회 진보'는 모두 긍정적인 신호로 표상되므로 반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패럴림피즘은 비장애인 시민들의 직간〮접적인 지지를 동력 삼아 유지되고 확산된다.
하지만 문제는 패럴림피즘이 패럴림픽 무브먼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통합사회 실현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문화적 우월성을 은연 중에 내면화시킨다는 점이다. 사회 진보를 이뤄내고 있다는 공동 의식은 매우 은밀하게 '우리'를 빚어낸다. 반대로 패럴림픽 무브먼트에 참가하지 않는 장애인 커뮤니티와 일부 시민들은 '그들'로 호명된다. 패럴림피즘은 차별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우리'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열등한 '그들'의 배제를 정당화한다. 패럴림피즘이 말하는 포용은 에이블리즘에 저항하는 연대를 구축하는 것이 아닌, 에이블리즘에 동화된 사람들을 식별하기 위한 언어적 수사에 가깝다.
역사적으로 패럴림피즘의 등장은 제국주의, 식민주의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우월과 열등이라는 기준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전략은 전형적인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통치 논리이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는 '오리엔탈리즘'에서 서구의 헤게모니가 동양의 후진성뿐만 아니라 유럽의 우월함을 반복하면서 그 권력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해낸다고 말했다(Said, 1978).
일본 제국주의는 아시아 국가들에게 동일한 전략을 적용했다. 그들은 제국주의적 침략과 식민지 수탈을 정당화하기 위해 야마토 민족의 우월성을 주장했으며, 그 근거로 다른 아시아 국가들보다 빠르게 달성한 근대화와 문명화를 내세웠다. 반대로 나머지 아시아 국가들은 미개하고 열등하다고 규정했다(Choi, 2003). 일본 제국주의에 동조하였던 일부 식민지 조선인들은 일본 제국으로부터 정상적인 몸으로 인정받았고, 그들은 식민권력과 하나된 정체성을 통해 제국의 우월성을 공유할 수 있었다.
박정희가 장애인 스포츠를 육성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