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월 19일 모란관 영빈관에서 열린 국빈 리셉션에 참석하고 있다.
타스통신=연합뉴스
이번 북러 간 포괄적동반자 협정이 갖는 목표를 보면 조소 조약과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롭다. '정의롭고 다극화된 새로운 세계질서 수립'에 적극 협력한다는 것을 목표로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은 2022년 6월 30일 제10차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법률포럼에서 영상 인사말을 통해 "현재 국제 관계는 다극 체제로 만들어져 가고 있으며 이는 되돌릴 수 없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규범에 기초한 질서(RBIO)'는 미국의 부정의한 일극 체제일 뿐이라고 비판하며 이것을 허물어뜨리고 다극 질서를 만들어가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실천적 방향도 입만 열면 주장해 왔는데 그것은 브릭스3)와 상하이 협력기구4)의 발전이었다.
푸틴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김정은 위원장도 입만 열면 미국의 일방 패권은 끝났음을 지적하고 신 냉전을 반대하고 다극화된 세계에 대한 지향을 수시로 밝힌 바 있다. 이러한 두 정상의 주장이 이번 협정의 제1 목표로 정확하게 제기되었다는 점에서 그 특징을 읽을 수 있다. 미국의 일방적 패권주의를 반대하는 반제 전선을 공동으로 펼쳐나갈 것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조소 조약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전략적이다.
무기한 조약
조소 조약은 10년간 효력을 가지며 일방이 기한 만료 1년 전 조약 폐기에 대한 의사를 표시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5년간 계속하여 효력을 갖는 방식으로 연장한다고 되어 있다. 소련이 붕괴된 후 1994년 6월 김영삼 대통령은 러시아를 방문하여 보리스 옐친 대통령에게 해당 조약의 폐기를 요구한 바 있다. 1995년 8월 7일 러시아는 북에 이 조약의 기한을 늘리지 않겠다고 선언해 1996년 9월 10일 폐기되었다. 북의 입장에서 본다면 오랜 친구였던 러시아에 관계 단절의 아픔을 겪었다 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 조약은 이보다 훨씬 진일보했음을 보여준다. 조약은 총 23조로 작성되었는데 양국의 비준을 거쳐 비준서를 교환한 날로부터 무기한 효력을 가지며 조약의 효력 중지는 일방이 서면으로 통지받은 날로부터 1년 후에 발생한다고 못 박은 것이다. 국가 간 군사 지원까지 염두에 둔 조약이 무기한이라는 점에서 두 국가 간 신뢰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9월 27일 개정된 북한 사회주의 헌법 제104조에 따르면 국무위원장이 다른 나라와 맺은 중요 조약에 대해 비준 또는 폐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재의 무력화
두 정상의 회담에는 외교·군사뿐 아니라 에너지·교통·철도·우주·보건 등 다양한 경제 분야 책임자들이 대거 참석하였다. 이것은 향후 두 국가의 협력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한 전망을 보여준다 할 것이다. 북러 양국은 이번 조약에서 첫째, 식량 및 에너지, 둘째, 정보통신기술분야, 셋째, 기후변화·보건·공급망 등 전략적 의의를 가지는 분야, 넷째, 무역경제·투자, 다섯째, 우주·생물·평화적 원자력·인공지능·정보기술 등 과학기술분야, 여섯째, 농업·교육·보건·체육·문화·관광·환경보호 및 자연재해 방지 등 여러 분야의 교류와 협조를 포괄적으로 약속했다.
한마디로 유엔 대북제재를 뛰어넘어 관계를 발전해가겠다는 것이다. 물론 러시아는 몇 년 전부터 대북 제재 관련한 추가 결정에 계속 반대표를 던져 유엔 제재에 심대한 타격을 입혀왔다. 추가 제재를 반대하는 수준을 넘어 제재 결정에 구애받지 않고 무제한 협력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군사 강대국 간 결합
이제 그 누구도 북이 핵 보유국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한국 정부도 애써 이를 부인하고 있을 뿐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가 요원해졌음을 잘 알고 있다. 북은 다양한 핵무기를 소형화·규격화하여 양산 체계에 들어갔음을 보여 주고 있다. 더욱이 최근 극초음속 중장거리 미사일 시험에 성공해 괌과 오키나와에 주 전력이 몰려있는 미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미 본토를 위협하는 고체연료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핵무기를 실은 3000t급 잠수함, 다양한 순항 미사일을 선보이고 있다.
북과 러시아의 밀착은 동북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군사적 균형을 뒤흔드는 일대 사건이 분명하다. 러시아가 현재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는 중국·인도·베트남·몽골·남아프리카공화국·우즈베키스탄·아르헨티나 등이다. 그러나 이들 중 서로 공격받을 경우 군사적 지원을 약속한 나라는 아무도 없다. 공동훈련을 하는 중국과도 그런 약속은 하지 않았다. 즉 북과 맺은 이번 동반자 관계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군사동맹이 탄생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조소 조약과 질적 차이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번 조약의 가장 큰 수혜자는 북이 아니라 러시아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면서 미국과 나토 등지에서 러시아 본토 공격에 대한 언급이 심심찮게 흘러나오며 확전의 위험성이 커져가고 있다. 5) 그 어느 나라도 러시아와 상호 지원을 약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의 일부 학자와 언론은 조러 조약을 보며 세계 무대의 전면에 등장한 김정은이라고 묘사하는 것이다.
북은 자신감에 차있다. 미국을 비롯한 유엔 제재를 뚫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으며 군사적으로 상당한 성과를 내는 모습이 확연하다. 여기에 세계적으로 가장 핵무기를 많이 갖고 있는 러시아와 굳게 정치·군사·경제적 결속을 이루어 냈으니 두 나라의 시너지는 상당하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