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를 확장시키는 "파이팅"의 힘

'고양시 전국오픈 탁구대회'에 나서며 결심한 것... 이기고 싶어서 목청껏 외쳤다

등록 2024.07.17 09:04수정 2024.07.17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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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파이팅"을 입 밖으로 목청껏 외쳐보는 일이 몇 번이나 될까. 7월 13~14일 이틀 간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고양시 전국오픈 탁구대회'에 참여한 날, 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결심이란 것을 했다. 오늘은 시합에서 이기기 위해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총동원해보겠다고. 그중에서도 '파이팅'을 다 쏟아보겠다고. 
 
a 대회장 사진 1  7월 13~14일 이틀간 고양체육관에서 전국오픈탁구대회가 열렸다.

대회장 사진 1 7월 13~14일 이틀간 고양체육관에서 전국오픈탁구대회가 열렸다. ⓒ 신선숙

 
이전에 참여한 시합에서도 아침마다 그 시기에 가장 중요하다 생각되는 것들을 결심하긴 했다. 어느 땐가는 실수를 최대한 줄여보고자 했고, 어느 땐가는 지든 이기든 덤덤한 표정을 유지하는 우아한 탁구를 치자고 결심했으며, 어느 땐가는 '내가 김관장 와이프다!' 보여주기 위해 폼을 최대한 예쁘게 해보자 마음 먹은 적도 있었다.

매번 결심이 통하긴 했지만 우아한 탁구를 친들 예쁜 폼을 고수한들 그뿐, 게임에서 이기는 건 아니었다. 그러고 돌아온 날은 나를 위로하기 바빴다. '그래도 오늘 폼은 좀 좋았잖아', '오늘은 포커페이스를 잘 유지했으니 그것만도 대단해' 하지만 마음은 허했다.

탁구에 대한 기술도 경험도 부수도 꾸역꾸역 조금씩 올려 이제 전국대회에 겨우 턱걸이로 참여할 자격(오픈 6부)이 생긴 정도로 끌어올린 나는 이번엔 제대로 이기고 싶었다. 아니 쫌 제발 이기고 싶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매번 멘탈이 무너지든 실수가 나오든 여지 없이 지는 것도 이제 지겨웠다. 

이기는 방법이 없을까? 그때 김관장에게 늘 듣던 잔소리가 떠올랐다. "당신은 파이팅이 부족해!" 술만 마시면 하는 잔소리라 기분 나빠서 흘려들었지만, 어쩌면 내 인생이 그만그만한 이유가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내 삶의 태도 때문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번 시합에서는 그래서 '파이팅'의 힘을 실험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시합날 나는 시합장에서 가장 시끄러운 여자가 되어 있었다. 나를 위한 "파이팅"을 수백 번 외친 것 같다. 이게 얼마나 시끄러운 일이냐면, 한 사람과의 게임은 세트 당 11점씩 5세트를 진행해 5판 3선승제로 승패가 결정되는데, 한 점을 낼 때마다 수시로 파이팅을 외친 것이다.
 
a 대회장 사진 2  2024 고양특례시 전국오픈 탁구대회에는 전국에서 1,300여 명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

대회장 사진 2 2024 고양특례시 전국오픈 탁구대회에는 전국에서 1,300여 명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 ⓒ 신선숙

 
주로 "야!", "좋아!", "뗴이!" 같은 구호를 크게 외치는 식이다. 목소리가 저음이면 좀더 멋졌으련만, 앵앵거리는 고음에 평생 코가 막힌 듯한 비음을 가진 나에게서 나는 파이팅 소리는 사실 좀 민망한 면이 있다. 김관장은 귀엽다고 하지만, 누구는 제발 그만 좀 하라고 말린 적도 있으니 말이다.

창피하기도 했지만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냥 하고 싶은 만큼 했다. 끝나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그렇게 내가 가진 실력과 잘 되는 기운을 악을 써가며 다 써버리고 나니,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만났을 때 그 한계도 명확히 보였다. 모든 걸 다 쏟아부었기에 사실 가장 나다웠다는 이상한 만족감이 들었다.

물론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핀잔을 듣고 비웃음을 당했다. 나에게 좋은 일이 남에게도 무조건 좋을 리는 없다. 얼굴을 찡그리는 상대도 있었고, 말 없이 비웃는 상대도 있었고, 이상한 여자라는 듯 수근대는 상대편 응원단도 있었던 듯하다. 정신없이 "좋아!!"를 외치다가 상대방의 날카로운 공격이 성공했을 때 내가 "좋아"를 외치는 바람에 상대방과 심판이 동시에 기가 막혀 웃는 일도 있었다. 

예전에는 그들에게 멋지게 보이는 일, 좋은 상대 선수가 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처럼 여겨졌지만 이번만큼은 이기는 데에만 집중했다. 충분히 다 이기고 나면 그래서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그때 우아한 탁구를 쳐도 늦지 않겠단 생각이다.

탁구가 인생의 전부였던 김관장에게 자신의 한계를 조금이라도 더 확장시키려는 필사의 '파이팅'이 이기는 시합을 가능케 하는, 화룡점정의 마지막 눈동자였다는 걸 나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인생첫책’ 출판사 블로그에도 게재하였습니다.
#탁구 #고양특례시전국오픈탁구대회 #김관장 #인생첫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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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호기심 많은, 책 만드는 편집자입니다. 소심한 편집자로 평생 사는가 싶었는데, 탁구를 사랑해 탁구 선수와 결혼했다가 탁구로 세상을 새로 배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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