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시 산내면의 카페 '플래닛커피' 에서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 공연한다. 오른쪽부터 한결, 보석, 객원연주자 박원형.
임현택
- 코로나 팬데믹 이후부터 지리산권에 살래재즈팀의 연주가 울려퍼지고 있어요. 살래재즈팀은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요?
한결: "지리산권에서 재즈를 전파하고 연주하는 살래재즈팀이고요. 산내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 '살래재즈팀', 혹은 '살래재즈트리오'라는 이름으로 주로 활동하고 있어요. 멤버들이 모두 산내에 살고 있다면 참 좋겠지만, 저희 둘로는 연주에 한계가 있어서 객원 멤버를 항상 모시고 와서 살래재즈트리오 혹은 살래재즈콰르텟, 이런 식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팀을 결성하게 된 건 산내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는 보석을 만나고나서였어요. 보석에 대한 얘기는 건너서 듣고 있었지만 만날 계기가 없었는데, 2년 전에 마을 분의 소개로 만나게 됐어요. 처음엔 그 마을 분과 셋이서 연주 팀을 만들어보려다 와해됐고, 이후에 재즈 팀을 해보고 싶어서 보석에게 제안을 했어요. 그런데 마침 보석이 재즈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고맙게도 팀을 결성하게 됐습니다."
- 요즘은 공연 이외에 어떤 활동을 하고 있어요?
보석: "저는 '장항마을'이라는 새로운 유니버스의 성원권을 얻게 됐어요. 집이 생기면서 '마을 사람'이라는 인식을 얻은 것 같아요. 그에 따라서 해야 하는 마을 일이 상당히 많더라고요. 저희 마을에는 귀농귀촌인이 거의 없고 특히 젊은 사람은 더욱 없어요.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마을 일을 돕고 있고, 그 대신 마을회관이라는 공용 공간을 자주 활용하고 있어요. 집에 와이파이와 냉장고가 없기 때문에 저에게 마을회관은 너무 중요한 곳이예요.
그리고 회관을 가면 자연스럽게 할머니들과 자주 만날 수밖에 없잖아요? 마을의 할머니들이랑 되게 친해지게 되면서 이제는 제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더라도 마을회관에 자주 가고 있어요. 가서 할머니들께 휴대폰 플래시 끄는 거 도와드리거나 지로용지를 읽어드려요.
그 외에도 들깨 심기, 마을 수로 청소, 쓰레기 정리하기 같은 일들 때문에 마을 밖에 나올 시간이 많지 않아요. 그러면서 농산물 같은 걸 얻기도 하고요. 마을에 출근하지 않는 젊은 사람이 저뿐이니까 마을 분들은 도움이 필요할 때 집에 찾아오시거나 전화하시는데 다행히 그게 체질에 맞아요. 최근엔 마을 소풍도 같이 다녀왔는데 정말 신세계를 경험했네요. (웃음)"
- 한결은 어머님이 이장이 되면서 '이장 아들'이 되셨죠? (웃음) 어떤 활동을 하면서 지내고 계신가요?
한결: "시골에서 이장의 파워는 엄청나더라고요. 이장 아들이라고 하면 아니꼬왔던 시선도 확 달라지세요. 어쨌든 저는 마을 일로 바쁘진 않고요. 주로 실상사작은학교, 인월중학교, 운봉중학교, 도서관의 수업을 많이 가요. 남은 시간에는 보통 공연 준비를 하고 있고요.
학교에서는 밴드 수업과 통기타 수업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되게 좋아해줘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선생님이셔서 서당개처럼 습득했던 스킬들이 저도 모르게 나오더라고요. 아이들 가르치는 일이 되게 즐거워요. 그렇지만 연주할 때가 가장 행복해서 수업을 더 늘리고 싶진 않아요. 아직은 연주에 더 집중하고 싶은데 수입이 필요하다보니 수업은 유지하고 있어요."
시골에서 음악한다고?
- 두 사람 다 음악 전공자잖아요. 이런 분들이 가까운 마을에 있다는 게 항상 귀하게 느껴지는데요. 두 사람은 어떻게 음악을 전공하게 되었나요?
한결: "저는 아무래도 어머니가 음악을 전공하셨다보니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어요. 대안학교인 실상사작은학교에 진학하게 된 것도 밴드부가 있었기 때문이고요. 덕분에 재밌게 활동을 했지만 졸업 후에 저는 지레 겁먹고 음악을 앞으로는 하지 않을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친구들이 졸업 후에 음악을 계속 하는 걸 보고 '쟤도 가면 나도 가보자' 하고 용기를 얻어서 서울재즈아카데미에서 음악을 하게 됐고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그때 같이 갔던 동기는 서울재즈아카데미랑 맞지 않아서 나갔고, 저는 너무 재밌게 다녔어요."
- 유학도 재즈 전공으로 간 거네요?
한결: "한국 실용음악이나 대학 시스템에서 공부하는 것들이 다 재즈예요. 그렇기 때문에 클래식은 클래식, 실용음악은 재즈를 공부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미국에 갈 땐 애초에 재즈가 좋아서 갔기 때문에 4년 정도 공부를 했어요. ESL(English Second Language Course)에 토플 점수가 모자라서 6개월 조건부 입학으로 시작해서 운이 좋게 3년 반 만에 조기 졸업했어요. 졸업 후에 코로나로 셧다운이 되고나서 산내로 돌아오게 됐죠."
- 보석도 학창시절 때부터 음악을 전공했었죠?
보석: "중학교 때 관악합주부라는 관악기로만 구성된 오케스트라 동아리가 있었어요. 거기서 처음 트럼펫을 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쭉 트럼펫을 공부하는 길로 가게 됐습니다."
- 그런데 산내에 귀촌하고 나서는 한동안 트럼펫을 놨던 시기가 있었다고 알고 있어요.
보석: "맞아요. 그때쯤엔 다른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나 봐요. 트럼펫은 어렸을 때부터 계속 해왔던 건데, 이것 말고 내가 궁금한 것들, 해보고 싶은 것들을 발견하고 싶어서 산내로 귀촌을 결심한 거죠. 그런데 귀촌하고 보니까 실제로 해야 될 게 진짜 많은 거예요.
그러니까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될 것들, 또 여기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되게 많았어요. 음악이 하기 싫은 건 아니었는데 트럼펫은 혼자 음악할 수 있는 악기가 아니기도 하고 여기서는 같이 할 사람도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다른 일들에 집중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다 한결을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다시 음악을 하게 된 거죠."
- 오랫동안 전공을 하면 그 전문성을 살려서 일을 하거나 더 깊이 파고들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도시에서의 삶이 더 유리할 텐데 시골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나요?
한결: "처음에는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에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때는 마음이 되게 급했어요. 타지에서 공부하는 동안 돈을 어마어마하게 썼을 텐데 집에서 뒹굴거릴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고 여기에 연주자들이 많은 것도 아니라서 연주도 어려웠고요. 급한 마음에 돈이라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음악은 코로나라는 핑계로 계속 미루고요. 왜, 음악하는 사람들이 산 속에 들어가서 몇 년씩 수련하잖아요. 저도 여기에서 수련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한 2년을 보낸거죠.
그러다가 서울로 우연히 공연하러 가서 오랜만에 정말 잘하는 사람들과 연주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좋긴 했지만 별로 재미는 없는 거예요. 일단 서울이라는 곳이 갑갑하게 느껴졌고, 너무 치열하게 살고 있는 것도 보였고요. 무엇보다 다른 뮤지션들의 공연을 보면서 무대와 관객을 위한 공연보다는 돈을 위해서 공연을 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느낌이 제가 도시에서 음악을 하고싶지 않게 만드는 결정적 이유였어요.
그리고 제가 공부했던 필라델피아에서는 로컬 뮤지션들이 상당히 많았어요. 정말 동네의 작은 카페에서도 수준급의 연주자들이 음악을 즐기면서 여유 있게 연주하는 걸 보면서, 또 그런 뮤지션들에게 음악과 삶을 배웠다 보니 내가 그렇게 서울에서 살 돈이면 차라리 외국 가서 살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또 한편으로는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전 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 같은데, 그러면서 내가 사는 장소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요. 나만 잘하면 내가 어디에 숨어 있든 음악적인 활동을 계속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과 지역에서도 음악하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두 가지 마음으로 여기에 남게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