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형 공립고 선정 학교와 지역올해 교육부가 지정한 자율형 공립고 85개교 이름과 지역, 운영 시작 시기이다.
김홍규
실패한 정책, 더 망할 정책
자율형 공립고 정책은 교육적으로 실패했다. 김태연·한은정은 자율형 공립고가 학업성취, 교육과정 시수 자율화, 진로교육 수준 등에 유의미한 영향이 없다면서 정책 재검토를 주장했다(김태연·한은정, 2013, '자율형 공립고등학교 학교효과 분석', 교육행정학연구 31(3), 131~152쪽).
논문 몇 개를 근거로 '실패한 정책'으로 단정하기는 이르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국책 연구기관의 보고서들을 근거로 들 수도 있다. 이들 연구보다 더 확실한 근거가 있다. 박근혜 정부의 자율형 공립고 정책 폐기라는 역사적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는 여러모로 이명박 정부를 계승한 정권이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자율형 공립고 정책을 폐기한다고 밝혔다. 집권 첫해인 2013년 교육부는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자율형 공립고를 2014년부터 일반고로 전환한다고 했다(교육부 2013년 10월 28일 보도자료,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 확정 발표').
"학교 유형 다양화를 통해 학생들을 구분 짓는 것이 과연 진정한 다양성 있는 교육을 실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기존의 특목고가 갖는 학교효과 및 고교 설립 유형에 따른 학교효과 연구 결과와도 일치한다."
(김태연·한은정, 2013, '자율형 공립고등학교 학교효과 분석', 교육행정학연구 31(3), 147쪽)
일부 사람들은 학교의 우수함을 입시 결과나 취업 결과만으로 보려 한다. 하지만, '학생의 뛰어남'과 학교효과는 전혀 다르다. 좋은 학교일수록 배움이나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성장시킨다. 성적 서열 상위권 학교들일수록 학생들의 성장에 관심이 없다. 학생들 상당수를 우월감과 열등감에 시달리게 만든다.
강준만은 <지방은 식민지다>라는 책에서 재미난 사고 실험을 제안한 적이 있다(강준만, 2008, <지방은 식민지다>, 개마고원, 97쪽, 115쪽). 서울 유명 사립대학인 고려대와 연세대 가운데 한 곳을 강원도 동해시로 옮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학교 이전 이후에도 두 학교는 라이벌로 남아 있을까? 그는 "곧 연·고대라는 말이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의 학업성취 수준은 OECD 최고다. 하지만, 이들이 대학에 가면 어떻게 되는가? 서울 유명 대학들은 학생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세계 최고 수준의 수학과 과학 성취를 보이는 학생들을 모아놓고도 학생들 탓하기에 바쁘다.
강원도에서 올해 자율형 공립고로 지정된 학교는 세 곳이다. 상동고, 원주고, 춘천고이다. 강릉, 원주, 춘천은 평준화 지역이다. 오랜 기간 노력 끝에 지난 2011년 7만 3천 명 남짓한 주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70.3% 찬성으로 시작됐다.
지역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평준화 지역에 속해 '선지원 후추첨'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원주고와 춘천고가 독자적인 학생 우선 선발을 요구했다고 한다. 결국, 학교 성적이 높은 학생들을 뽑아 이른바 '명문대학'에 더 많은 학생을 보내고 비평준화 시절 '명성'을 되찾겠다는 욕심이다. 이러한 '비교육적 욕심'이 자율형 공립고의 제 모습이다. 실패한 교육정책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공립고등학교는 공적 교육기관이다. 그리고 공적 교육기관에 종사하는 이들은 국민들의 세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국민 다수를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다. '지금 속한 학교만 이름이 나면 된다', 또는 '졸업한 학교가 유명해지면 된다'라는 생각은 자신의 존재 의무를 위반하는 것이다. 자율형 공립고로 지정된 학교장들이 학생 우선 선발을 정부에 요구하고 언론에 인터뷰까지 하는 일은 '공무'를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교육부가 실패한 자율형 공립고 정책을 다시 꺼내든 덕분에, 전국에서 수많은 교육기관 종사자들이 국민 다수가 아닌 소수를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를 비롯한 공적 기관은 특정한 사람들만의 자유와 선택을 보장하는 정책을 펴서는 안 된다. 학교도 예외가 아니다.
지금 파리에서 올림픽이 열리고 있다. 마스코트 '프리주(phryges)'가 상징하듯, 프랑스 혁명은 자유와 평등, 인간 존엄성 존중이 우리 모두 함께 추구해야 할 가치임을 보여주었다. 자율형 공립고를 비롯한 학교를 줄 세우는 '카스트' 제도는 이같은 민주주의 가치에 어긋난다. 지금이라도 교육부는 정책을 바꿔야 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교육과 사회의 배치를 바꾸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공유하기
실패한 교육정책 다시 꺼내 든 정부, 무슨 생각일까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