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동유적지 배롱꽃
김숙귀
고려 말, 성균관 진사 모은 이오(茅隱 李午) 선생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낙향하여 우거진 숲속에 배롱꽃이 만발한 것을 보고 이곳에 터를 잡았다. 마을을 둘러 담장을 쌓고, 고려의 유민이 산다고 해서 '고려동학(高麗洞壑)'이라는 비를 세웠다. 논밭을 일구고 우물을 파서 후손들이 자급자족하게 하였다고 한다.
또한 새왕조 조선에서 벼슬을 내려 불러도 가지 않았고, 아들들에게도 절개를 지켜 조선왕조에 출사하지 말 것과, 사후에 묘 앞에 글을 지워 백비를 세우고, 자신의 신주를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도록 유언을 남겼다.
그리고 후손들은 이오 선생의 뜻을 받들어 19대 600여 년 동안 이 곳을 떠나지 않았고 지금도 30여 호의 후손들이 재령 이씨 동족마을로 그 순수성을 이어가며 고려동이라는 마을 이름을 지켜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