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하우스 전시실 내부건축 당시의 잔해들을 유리조각 하나까지 전시 중이었다.
한성은
100년 전 건축에 커튼 월(Curtain Wall) 개념을 적용했다는 것도 대단한데, 여기에 사용된 유리는 채광과 개방성을 극대화하고 미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높은 투명도와 반사도를 지닌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것이었다. 이런 역사들이 하나씩 쌓여서 문화적 역량이 되는 것이다.
조선총독부 건물이 떠올랐다. 건립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큰 신고전주의 건물이었고, 철근콘크리트 구조가 적용된 화강암 건물이었다. 치욕의 역사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근대사를 명징하게 상징하는 건축이었다. 꼭 폭파해야만 했을까? 조선총독부 건물이 산산조각 나고, 한 세기 동안 가려졌던 경복궁이 위용을 되찾는 순간에 국민들이 느꼈을 통쾌함과 짜릿함이 우리의 역사보다 중요했을까? 이전하여 보존할 수는 없었을까? 아픔을 잊지 않을 수는 없었을까? 일본의 사도 광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들은 왜곡하고, 우리는 잊어간다.
바우하우스는 일상과 예술을 통합하려 했다.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모두와 나누려고 했다. 그 정점에 있는 것이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가 만든 바실리 체어(Wassily Chair)다. 데사우에 오기 전부터 바우하우스에서 바실리 체어에 앉아 멋지게 사진을 찍는 모습을 상상했었다.
바티칸 미술관의 <라오콘 군상>도 아니고 루브르 박물관의 <사모트라케의 니케>도 아닌 겨우 의자 하나를 상상했다니. 어쩌면 호치민의 짝퉁 가구점에서도 구할 수 있을 보편적인 의자다. 하지만 마르셀 브로어이어가 바실리에게 헌정한 이 의자에는 바우하우스의 정신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