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쓴 노력?실천 등의 단어가 인상적인 권총인두.?김 대표가 젊은 시절 학원에서 기술을 배울 때부터 지금까지 사용하는 장비다. 마치 그의 수족처럼 50년을 함께하고 있다.
<무한정보> 황동환
"형광등 수리를 많이 했다. 주로 안정기를 교체하는 수준이다. 한번은 어떤 식당에서 형광등이 안 들어온다는 수리 요청을 받고 가서 덮개를 열어보니 쥐가 산 채로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며 그가 겪었던 일화를 전한다.
학원 졸업 뒤 그곳에서 알선해 준 성우전자(독수리표)에 취업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결핵이 문제였다. 그리고 그가 다시 향한 곳은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 오산리다. 집에서 건강을 회복하며 신례원에 있던 전파사 '충남전자'에 취업해 수리기사 일을 다시 시작했다.
"카세트, 진공관 전축, 도시바 오디오, TV, 밥솥 등의 수리를 많이 했다. 특히 충남방적 여직원들이 기숙사에서 다림질용으로 사용하던 다리미 수리 요청이 많았다. 자취하는 학생들은 고장난 카세트, 야외용 전축 수리 요청이 많았다"며 웃음 띤 얼굴로 "지금 돌아봐도 그때가 가장 좋았던 시절이다"라고 말한다.
신암면 집에서 신례원까지 걸어 출근했다. 한창 젊은 시절이라 빨리 걸으면 30분 정도 걸렸다고 한다. 돈을 절약하려는 생각도 있었다. 농사꾼 부모는 아들이 어엿한 서비스 기사라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졌다고 한다. 추억 거리가 많았던 충남방적이 부도가 나면서 '복음전자' 개업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이 냉장고를 사면 동네 사람들이 우물에다 담가 놓고 먹으면 되는데 냉장고를 샀다고 손가락질 하던 시절. 접이식 문이 달려 있던 TV를 수리하다가 주인이 브라운관 뒤에 보관했던 소 판돈을 발견하고 돌려준 일. 경찰서가 고물상 대장을 두고 전파사들을 관리했던 이야기 등은 김 대표가 아니면 듣기 힘든 시대의 단면들이다.
"지금은 사라진 제도지만 전파사는 등록할 때 '낡은 물건을 새것으로 고친다'는 의미에서 고물상으로 허가를 받았고 경찰서에서 관리했다"며 "가령 삼성 TV 14인치를 팔려면 전파사마다 누구에게 언제 팔았는지 적어야 했다. 누가 물건을 도난당하면 경찰들이 전파사 장부를 들여다 봤다. 장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