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3월 7일 치 <群山新聞(군산신문)> 광고
조종안
위는 1948년 3월 7일 치 <군산신문> 광고란이다. 제헌국회 구성을 위한 총선(5·10 선거)을 앞두고 있던 시기로 무척 혼탁하고 어지러웠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영화 프로를 비롯해 군산청과물주식회사 설립공고, 합자회사 등기 공고, 음식점 구인 광고, 군산소주 주식회사에서 제조한 명주(銘酒) 소개, 병의원, 사진관 등 다양한 광고가 보인다.
그 시기(1948년 3월~9월) <군산신문>에 실린 병의원은 중앙로 1가 '복민의원(福民醫院)', 장미동 경신소아과의원(敬信小兒科醫院), 미원동 영생의원(永生醫院), 명산동 구암병원(龜岩病院), 평화동 평화의원(平和醫院), 신창동 송이비인후과의원(宋耳鼻咽喉科醫院) 등. 군산의사회, 군산치과의사회, 군산도립의원 등은 정부수립 축하 광고를 실어 눈길을 끌었다.
그중 '복민의원'은 입원실 8개와 안채가 딸린 2층 목조건물로, 일제강점기 일본인 의사가 운영하던 병원이었다. 광복 후 군산에 정착한 옥풍빈(玉豊彬) 원장이 미 군정청 군산지구 사령부 군정관 로저 백(Roser Beg) 대위 알선으로 1946년 7월 1일 개원한 것으로 기록에 나타난다. 위치는 군산부 중앙로 부청 앞(현 중앙로 1가 구 시청 앞)이다.
전언에 따르면 병원과 안집 건물은 약간 경사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향나무 등이 심어진 일본식 정원도 있었다. 옥인영(1946년생, 옥풍빈 원장 장남) 가톨릭의대 명예교수는 "아버지는 군산에서 6년쯤 병원을 운영하다 부산으로 이사하셨다"며 "군산 해양대학교 학생들이 새카만 인디언 복장 차림으로 가장행렬 하던 모습이 어렸을 때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개원 3년 후 '의술 뛰어난 의사'로 알려지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