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 폭염으로 조류 번식 급증전북 진안 용담호에 지난 1일 올해 첫 조류경보 '관심' 단계가 발령됐다. 전북지방환경청은 장마 기간 집중호우로 다량의 영양물질이 유입된 상태에서 폭염으로 수온이 상승해 조류가 급격히 번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일 조류가 번식해 짙은 녹색으로 변한 용담호의 모습.
연합뉴스
지금껏 '못 볼 것'을 너무 많이 봐온 탓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이런 경험이다. 몇 해 전 인근 농촌 마을에 대기업 브랜드를 앞세운 대규모 축사 시설이 들어온다는 소식에 지역 주민, 환경 단체 등과 함께 반대 시위에 며칠간 참여한 적이 있다. 거리 곳곳에 '결사반대'라는 현수막이 내걸렸고, 여론도 주민의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였다.
업체와 지방자치단체는 전가의 보도처럼 시설이 오면 지역 경제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읊어댔다. 하지만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다른 이가 챙기게 될 것'이라며 되레 주민들의 반대 목소리만 키운 결과를 낳았다. 반대 시위가 계속되던 어느 날, 업체가 유치 의사를 접게 될 것 같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이내 뒤풀이 자리가 마련됐다.
바로 그때, 청정한 농촌 마을에 악취 풍기는 축사를 세운다는 계획만큼이나 충격적인 모습을 봤다. 서로 수고했다며 덕담이 오간 뒤풀이 자리가, 다름 아닌 고깃집이었다. 술잔이 몇 순배 도는 동안 불판 위에선 두툼한 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갔다. 축사 시설은 '결사 반대'한다면서 고기 먹고 힘내서 싸우자는 그들의 의기투합은 괜찮은가. 그 아이러니함에, 채식주의자로서는 더 당혹스러웠다.
상황은 달라도 '못 볼 것'은 주변에 숱하게 널려 있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내연기관 자동차를 최근에 큰마음 먹고 전기차로 바꿨다는 한 지인은, 최근 지하철 공사로 교통 체증이 심각해졌다며 대화 중 버럭 화를 냈다. 전기차를 사는 것보다, 시내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자주 타고다니는 게 실은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 텐데 말이다.
자전거를 상용할 수 있도록 도심에 전용도로를 넓히고 편의 시설을 갖추도록 하자는 제안에도 사람들은 대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하나같이 요즘 같은 폭염에 자전거는 이동 수단이 될 수 없다는 이유를 댄다. 최근의 기후 여건을 고려하면, 1년 중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시기는 기껏해야 4개월 남짓에 불과하다고 눈을 흘긴다.
눈앞 이상기후, 고개 돌리는 사람들... 이게 최선일까
그들 역시 해마다 경신되는 역대급 폭염이 자기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때문이라는 사실에는 눈을 감는다. 심지어 자전거 전용도로가 확충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다음과 같은 궤변을 늘어놓는 이도 있다. 차라리 자동차 전용도로를 넓혀 교통 체증을 줄이는 것이 연비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어 더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억지 섞인 주장 말이다.
이런 당혹스러운 주장과 행동은, 분명 그들이 몰라서 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저 오랫동안 몸에 밴 관행 탓에 불편함을 견디기 싫다는 거고, 나아가 혼자 고기 안 먹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자전거를 탄다고 해서 해결될 리 만무하다는 관성적 인식이 워낙 강고해서일 것이다. 억지 논리일지언정 자신의 주장과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몸부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학교에서 동료 교사들은 물론, 아이들에게까지 유별난 환경주의자로 낙인찍힌 탓에 나는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다. 채식주의자라고 하면 식물도 생명체인데 동물만 불쌍하냐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쏟아내던 십수 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세상은 진보했다. 그러나 적게 소비하고 자발적으로 불편함을 감수하는 데까진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고백하자면, '효능감'은 낮아지고 자꾸만 흔들리는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다짐 삼아 이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민망하게도 조금 전까지 내 두 손에는 택배 상자와 플라스틱이 가득 담긴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스티로폼 상자와 플라스틱, 빈 종이 상자가 수북하게 쌓인 아파트 분리수거함에 다녀오는 길이다. 당장 우리집에서 하루에 배출되는 양만 족히 한두 상자는 될 성싶어 면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