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남매 가르쳤던 바다가 이렇게... 보면 성질이 나"

새만금 사업 그 이후... 계화도 주민들의 이야기

등록 2024.08.16 10:55수정 2024.08.16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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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새만금 방조제 앞 국립새만금간척박물관을 나와 계화로 향했다. 계화에 가기 전 새만금 전시관 옆 해창 장승벌과 잼버리 부지, 그리고 해창 갯벌에 들렸다. 예전에는 1호 방조제 바로 안부터 계화도 앞까지 넓은 땅이 모두 해창 갯벌이었다. 해창 장승벌은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한 4대 종단 성직자들의 삼보일배 출발지이고 계화는 새만금 사업을 온몸으로 막고 저항했던 어촌 마을이다. 해창 장승벌과 해창 갯벌 사이에 잼버리 부지가 있다.

해창 장승벌에 도착하여 장승을 살펴보니 세월이 느껴졌다. 비바람에 닳고 색이 바래고 쓰러진 장승이 있는가 하면 이제 막 세워진 듯 윤기 있고 글씨가 뚜렷한 장승도 있었다. 방조제가 막히기 전까지 이곳은 갯벌이었으나 지금은 풀이 자라고 있다. 잼버리 부지를 지나 아직 매립되지 않은 해창 갯벌로 들어선 우리는 갈대숲 사이 길로 오토바이를 달렸다.

한참을 달려도 계속 이어지는 갈대숲은 장관이었다. 오토바이 소리에 놀라 날아오르는 새들, 그물 사이로 버려진 배에서 자라는 풀, 언제라도 바닷물이 들어오기만 하면 풍요로운 갯벌로 변할 준비가 된 넓은 해창 갯벌을 달리는 동안만큼은 '이곳에 물이 들어오면 다시 생명이 넘쳐나겠구나' 하는 생각에 희망찼다.

"계화도를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방조제를 터야 한다"
 
 새만금 잼버리 부지 옆으로 아직도 물만 들어오면 갯벌로 복원될 수 있는 해창 갯벌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새만금 잼버리 부지 옆으로 아직도 물만 들어오면 갯벌로 복원될 수 있는 해창 갯벌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유기만
 
강경근 어촌계장을 만나기 위해 계화도에 도착했는데 시간이 남아 야영할 곳을 찾아 텐트를 쳤다. 우리가 텐트를 친 곳은 야외 운동기구가 있고 마을 정자가 있던 곳이다. 마침 저녁을 먹고 운동을 하러 나온 계화 주민이 있어 인터뷰를 요청했다.
김계화(가명)씨는 올해 85세라 했다. 맨손어업으로 조개를 잡아 홀로 6남매를 키웠다고 한다. 자식들은 모두 도시에서 잘 살고 자신은 살다 죽으면 그만이지만 계화도를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방조제를 터야 한다는 김계화씨.

- 어업을 언제부터 언제까지 하셨어요?

"그레(생합을 잡는 기구)질 할 수 있을 때부터 조개를 잡아먹었지 여기서. 국민학교 때부터 잡아먹고 계화도 사람에게 시집가서 또 잡아먹고 살았어. 내가 22살에 결혼을 했어. 남편이 35살에 죽었으니까 겨우 12년 살고 돌아가셨어. 아기는 6남매를 낳아 놓고 이 바다에서 먹고 가르쳤어. 많이는 못 가르치고 고등학교까지 가르쳤어."

- 방조제가 막힐 때까지 그레질 하신 거예요?


"방조제 막히고도 고창이나 이쪽저쪽 다니면서 죽합도 잡고, 생합도 잡고 그랬는데 이제 고창 그런데도 못 가지. 막히고도 한참 해 먹었어요."

- 옛날 생각하면 어떠세요?


"보면 성질나. 우리 딸이 영종도에서 사는데 영종도 가는데 그 생각이 얼핏 들더라고 우리 계화도도 정치하는 사람들이 잘해서 영종도처럼 다리를 놓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농사지어 먹고, 고기도 잡고, 조개도 잡고 그런데 이걸 막아 놓아서. 주민도 잘못했어요. 그때 당시는 먹는 식량이 부족했잖아. 막아서 농사지으면 그리고 이 막을 때 우리 원주민은 혜택이 있을 줄 알았어. 근데 혜택이 어디 있어? 보상 받아서 뭐 해? 우리 같은 조개 캐던 사람은 바다만 뜯어 먹고 애들 가르치고 먹고 살아. 그런 바다를 이렇게 막아 놓고... 앞으로 여기를 트면 우리는 죽지만 밑에 후손들이라도 좋아지지."
 
 새만금 개발 계획에 따르면 계화도 바로 앞 농촌주택단시 예정지가 있다
새만금 개발 계획에 따르면 계화도 바로 앞 농촌주택단시 예정지가 있다유준
 
김계화씨는 말했다. 조개 잡는 그레(생합 잡는 도구)와 바구니만 있으면 먹고살 수 있으니까, 사람들이 몸 하나 믿고 계화로 몰렸다고. 마을은 77년 된 초등학교도 폐교될 정도로 사람이 줄고 빈집이 늘어나는데 바로 앞은 농촌 도시 부지가 들어선다니 새만금 사업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옆에는 아침에 숭어를 잡고 돌아온 어민도 있었다. 갯벌이 사라져 맨손 어업은 할 수 없지만 아직도 선박 어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처음 새만금 사업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새만금 사업은 농지 개발을 목적으로 2004년 완공을 목표로 했다. 또한 완공 후에는 방조제 내부에 어민들을 위한 대체 어장 수산 단지 2000ha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기본계획이 변경되면서 공사는 2050년으로 완공이 늘어났고, 내부에 만들어 주겠다던 수산 단지 약속도 슬며시 사라졌다는 게 주민들의 불만이다.

새만금 내측에 사는 어민들은 맨손 어업의 경우 가구당 수백 만 원 정도의 보상을 받았으며 선박 어업의 경우 수천 만 원의 보상을 받았으나 그것도 반납한 배 값에 지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공사가 끝나면 다시 어업을 기대했던 어민들은 늘어난 공사 기간과 사라진 수산 단지 약속에 어렵게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애초의 계획과 달리 공사가 길어진 만큼 어업을 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그마저 쉽지 않아, 어민들은 단속을 피하며 어업 활동을 이어가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주민 인터뷰를 마치고 강경근 어촌계장을 만나기 위해 계화 어촌계로 이동했다.

강경근 어촌계장은 64년 계화 출생이다. 아버지도 어업에 종사하셨고 군대 다녀오고 1980년대 후반부터 어업에 종사했다고 한다. 조개도 캐고 어장도 하고 계화 주민들은 새우 포망을 많이 했다고 했다.
 
 강경근 계화어촌계장이 어촌계 사무실에서 새만금 사업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있다
강경근 계화어촌계장이 어촌계 사무실에서 새만금 사업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있다유준
 
- 현재 계화도는 어업 상황이 어떤가요?

"불법으로 하죠. 어제도 해경이 왔어요. 지금 새만금 내에서 3개 시군(군산, 김제, 부안)이 안에서 어업에 종사해요. 3~5월은 실뱀장어 잡은 사람도 있고, 겨울 숭어 잡은 사람, 여름 숭어 잡은 사람도 있고, 민물 장어도 나오고 꽃게도 일부 나오고, 전어도 하고 합니다. 새만금 호 막고 나서 재첩이 많이 있었거든요. 근데 재첩이 한 3~4년 전부터 줄더니 작년부터 안 나요. 해수 유통 하루 두 번 하니까. 염기가 많으니까 안 나는 거죠.

내부도 많이 변했죠. 해창 갯벌도 다 이름이 있었어요. 돈지 앞을 구복작이라고 했고, 거기 조개나 어류가 많이 서식했는데 내부 준설을 하다 보니까 많이 사라졌죠. 잼버리로 이쪽 구복작은 다 없어졌죠. 저쪽 삼선 풀 쪽도 다 파내 버렸지. 재첩도 이제 서식할 데가 없어져서 일부 남아서 잡고 있거든요. 옛날에는 엄청 많이 있었어요."

- 새만금 내에서 어업에 종사하시는 분이 얼마나 계세요?

"재첩은 70척 숭어도 한 40척 되죠. 근데 여기는 배를 정박할 데가 없으니까 불법으로 하는 거예요. 그리고 새만금 밖보다 여기가 어업이 나으니까 여기서 하는 거죠. 고기가 산란하러 강둑을 끼고 오는 거예요. 저기 (새만금) 문 열면 들어오니까. 이런 천혜 자원이 없어요."

- 새만금 사업 이후, 지금 과거를 돌아보면 어떠세요?

"맨손어업만 해도 1년에 하루 종일 하는 것도 아니고 물 때 맞춰 작업 해서 잘 버는 사람들은 1980년대에 (연) 8천만 원을 벌었어요. 못 버는 사람들이 4~5천만 원을 벌었어요. 투자금도 없이 백합 잡아서 사람들이 살기가 좋았죠. 농민들은 농업 하면서 부수입으로 바지락, 백합, 꼬막 이런 걸 잡았어요. 조개는 사시사철 1년 12달 계속 잡았으니까요. 죽합, 백합, 동죽, 바지락, 모시조개, 맛, 코끼리 조개 없는 것이 없었어요."

강경근 어촌계장은 국민권익위에 '새만금호 내측 한정 어업허가 요구' 고충민원을 낸 바 있다. 이들은 "새만금호 내측 수면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지역으로 각종 수산자원이 많음에도, 새만금개발청장과 한국농어촌공사가 추가 보상 및 안전 등을 이유로 한정어업허가에 동의해주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새만금호 내측에서 합법적으로 어업을 할 수 있도록 동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 같은 민원은 새만금개발청장과 한국농어촌공사 측의 반대로 합의 및 조정이 성립되지 않았다. 어업을 할 경우 공사에 지장이 있고, 안전 문제나 배상 민원이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2024년 5월 국민권익위원회의 한정 어업 면허 불가 통지서
2024년 5월 국민권익위원회의 한정 어업 면허 불가 통지서유기만
 
- 어민들이 한시적으로라도 허가를 내달라고 요구했다고 들었는데요.

"작년에, 국민권익위에다가 민원을 넣었어요. 한정 어업에 종사하게 해 달라고. 새만금개발청 등은 공사에 피해 없이 하겠다고 했는데 공사가 우선이어서 안 된다는 입장이에요. 지금 (새만금 내측에는) 무허가(어선)도 너무 많아요. 어느 때는 전국에서 다 와서 해요. 불법이다 보니 누구나 다 오는 거예요. 한정 어업을 하게 해주면, 허가자만 하니까 낫겠죠. 지금은 무허가 어선이 많아요. 허가 선으로 하다 적발되면 영업 정지당하고, 소형 어선은 장비 산 거 다 갚아야 하니까. 내부는 지금 이런 실정이에요. 지금 한번 돌아보면, 새만금 호는 개판이 돼 버렸어요."

- 어촌계는 몇 분이나 계세요?

"예전에는 500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248명이에요. 그중에 실제로 어업에 종사하시는 분은 한 100명 좀 넘죠. 어업을 혼자 못 하고 한 배에 3명 5명씩 하거든요. 떠나는 분도 있고 또 수협에 출자금이 많다 보니 그걸 빼서 생활하기도 하고 했죠. 수협 탈퇴하면 자동으로 어촌계 탈퇴가 되거든요. 여기 젊은 사람이 많았어요. 요즘은 없죠."

-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좀 좋겠습니까?

"터야 한다니까요. 무조건 이거 터야 해요. 진짜 답 없는 공사예요. 외국은 다 트고 있잖아요. 네덜란드, 우리나라도 지금 시화호 트고 있잖아요. 정치적으로 이용해서 (새만금 사업이 추진)된 거라고 생각해요. 여기는 다 썩었어요. 갯벌 바닥을 파내서 향후 100년 지나도 재생이 안 될 것 같아요. 또 메우면서 날림 먼지가 어마어마해요. 남북로와 동서로 공사 할 때 먼지가 엄청나게 났어요. 문 못 열고 살았다니까요."

계화도 어민 인터뷰를 하는 동안 어민들의 체념, 절망과 분노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언론에 대한 불신, 정부에 대한 불신. 2004년이면 끝났어야 할 공사가 2050년으로 늘어나면서 단속을 피해 어업 활동을 하는 어민들. 새만금 방조제를 두고 내부와 외부는 문제가 전혀 달랐다. 외부는 고기가 없어서 문제고, 내부는 고기가 있어도 불법으로 내몰려서 문제였다. 우리는 외롭고 슬픈 계화도에서 1박을 하고 김제 심포로 향했다.
#새만금마을기행 #해창갯벌 #계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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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전주시에 살고 있습니다. 기자 활동은 전라북도의 주요 이슈인 새만금 사업에 대해서 다뤄보고 싶어 시민 기자로 가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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