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보험 접근성은 지금보다 더 높아져야 한다. 2024년 6월 25일 열린 산재보험 60주년 노동안전보건운동단체 기자회견
산재보험개악대응함께
투쟁으로 넓혀온 산재보험 적용 대상
이렇게 좁게 시작한 산재보험은 2017년부터는 상시근로자 수가 1명 미만 사업장에도 모두 적용되게 되었다. 그런데 여전히 '근로자' 중에서도 산재보험 적용이 안 되는 경우가 아직도 남아 있다. 농임어업 중 개인이 운영하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경우, 가구에 고용되어 일하는 가사사용인등은 여전히 산재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다.
가사근로자법이 2021년 제정됐고 이 법의 가사근로자에 해당하면 산재보험에도 가입되게 되지만, 이는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의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에만 해당된다. 가사서비스 제공 기관이 인증받지 않은 경우, 플랫폼을 이용해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에는 가사근로자법의 가사근로자가 아니고 여전히 산재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근로자'인데도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이들을 포괄하는 것은 매우 시급한 과제다.
법적으로 노동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장이 산재보험 가입 대상이더라도 이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여기서 벗어나는 노동자들이 산재보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사람들이 일하다 다치고 그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면, 법을 개정해 다양한 특례를 도입하는 땜질식으로 접근해왔다. 현장실습생에 대한 특례, 학생연구자에 대한 특례, 해외 파견자에 대한 특례 등이 그렇다.
이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앞으로도 늘어날 '특고' 노동자들 문제는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투쟁 끝에 2008년 보험설계사, 콘크리트믹서 트럭운전자, 학습지교사, 골프장캐디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는 이름으로 처음 산재보험 적용 대상이 되었다. 이후 2012년에는 택배기사, 퀵서비스기사, 2016년에는 대출모집인, 신용카드모집인, 대리운전기사, 2019년부터는 27종의 건설기계 조종사, 2020년부터는 방문판매원, 대여제품 방문점검원, 화물차주가 추가 적용되었다.
확대되어가는 방향은 환영할 일이었지만, 나날이 늘어나는 특고 노동자 규모에 비하면 매우 제한적이었다. 또 산재보험 대상이 되는 '근로자' 정의를 확대하는 대신 투쟁이 벌어지는 특정 직종에 대해서 적용을 확대하는 방식의 땜질식 접근이라는 점도 다른 '특례'와 다를 바가 없었다.
2023년 7월부터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대신 '노무제공자'로 명칭을 확대하며 이전에 '주로 하나의 사업에 노무를 제공'한다는 조건을 달았던 조항을 없애 여러 개의 플랫폼 사를 통해 업무를 수행하는 배달 라이더나 대리운전기사 등의 노동자들도 산재보험에 접근이 쉬워졌다. 하지만 여전히 특정 직종에만 적용된다는 점, 프리랜서 중에는 여전히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도 많다는 점 등은 여전히 문제다. 땜질식으로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모든 일하는 사람이 일과 관련해서 다치거나 아플 때 산재보험으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법 체계가 바뀌어야 한다.
산재 은폐를 줄이고 실제로 향유되는 권리가 되려면
법률상의 적용 범위가 확대된다고 노동자들이 산재보험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일하다 다치거나 아파서 산재로 치료받으려는 노동자들은 산재 신청부터 종결까지 다양한 제도상의 어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올해 3월 말부터 5월 사이에, 전국의 여러 노동안전보건단체와 노동조합들이 '윤석열 정부 산재보험 제도 개악 대응 함께'4)를 꾸리고, 온오프라인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총 2845명이 참여한 이 조사는 조사의 특성상 30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가 50%, 노동조합 가입돼 있다는 응답자가 95%였다.
그런데도 '지난 3년 이내에 일을 하다가 업무로 인하여 다치거나 아픈 적이 있다'는 응답자 1262명 중 산재보험으로 처리한 경우는 32%에 불과했다. 경미한 부상이나 질병이라서 산재처리하지 않았다는 답변이 절반 정도였지만, 그 뒤를 이은 답변은 '산재 신청 절차를 잘 모르고 어려워서'(125명, 산재보험을 이용하지 않은 경우의 14.6%)였다.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있는 노동자들도 이런 상황인데, 노동조합도 없는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이 일하다 다치거나 아프다고 해서 산재보험을 통해 제대로 치료와 재활을 받을 권리를 누리고 있으리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산재 청구 절차가 노동자가 대리인 없이도 쉽게 청구할 수 있을 만큼 지금보다 훨씬 간단해져야 한다. 노동자가 직접 신청하는 외에, 의료기관이 건강보험에 급여를 청구하듯이 진료를 담당한 의료기관이 산재보험에 직접 청구하는 방안을 병행할 수도 있다.
산재 신청을 망설이는 이유가 제도상의 허점만은 아니다. 산재를 신청할 경우 여전히 회사나 관리자의 불이익이 두렵다. 앞서 언급한 올해 설문조사에서도 95명의 응답자가 산재 신청 시 불이익이 걱정되어 산재 신청을 못했다고 답했다. 산재 요양 중인 노동자를 해고할 수 없다는 조항은 있지만, 산재 요양 중에 계약이 만료되는 경우도 흔히 본다. 산재 은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 대상이지만, 처벌은 미미하다. 용혜인 의원실에 따르면 2022년 한 해에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적발한 산업재해 은폐 혹은 미신고 건수는 5만 건이 넘었다.
누구나 일하다 아플 걱정 없는 세상으로
모든 노동자가 산재보험에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 일하다 다치거나 아플 때 보상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을 만들자는 것에 그치는 주장만은 아니다.
오히려 병들거나 다치면서까지 일해서는 안 되고, 혹시라도 병에 걸리거나 부상을 입으면 충분히 쉬면서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조건을 만드는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
시혜적인 '보상' 중심 논의 대신, 일하다 아프거나 다칠 걱정 없이 일하는 노동자의 권리 논의로 산재보험을 대하는 우리의 시각도 달라져야 한다. 박정희의 유산으로 만들어진 산재보험 60년에, 일하는 사람 누구나 일하다 아프거나 다칠 걱정 없는 세상을 만들 노동자들의 힘과 연대를 생각한다.
1) 유범상, 영국 산재보험의 형성과 노동정치의 역할에 관한 연구, 노동정책연구 12(1), 2012.
2) 임자운, 노동안전보건 법제도의 변화 흐름과 과제, 2023.
3) 송윤아, 산재보험의 운영체계에 대한 연구, 보험연구원 조사보고서. 2010.
4) (사)김용균재단, 건강한노동세상, 금속노조법률원, 노동건강연대,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민주노총법률원, 민주노총경남본부,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반올림,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전국금속노동조합,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새움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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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보험 60년, 적용 대상 확대의 역사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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