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중앙광장에서 고려대 학생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자녀 ‘특혜 논란’ 진상규명 집회를 열고 있다.
이희훈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혔다
그랬던 '공정지상주의자' 대학생들이 불과 2년여 만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통계로 봐도,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를 선택했던 20대 대학생들 대다수는 이미 지지를 거둔 상태다. 다만,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며 분노하면서도, 관망하고 외면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조국 사태'보다 수백수천 배 심각한 부정과 불의가 만천하에 드러났고, 또 연일 터져 나오는데도 그때처럼 집단적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 게 당최 이해되지 않았다. 제자의 말에 따르면, 뉴스에 아예 관심을 끄고 사는 게 요즘 대학생들 나름의 저항 방식이라고 했다. 또래들 SNS에 '윤석열'을 공유하는 경우는 아예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온갖 시시껄렁한 연예계의 가십거리와 스포츠, 게임 등을 소재로 한 유튜브 채널이 공유되고 있을 뿐, 민감한 정치·사회적 이슈는 자취를 감췄다고 했다. 대학가에서도 '진지충'이라는 말이 은연중에 통용된다며, 말 한 번 잘못 꺼냈다가 데면데면해진 친구들이 더러 있단다. 애초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거다.
섣부르긴 해도, 그와의 대화를 통해 요즘 20대 대학생들이 공유하는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들 모두 집단적 무력감에 빠져 도피처를 찾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국 사태' 당시 공정과 상식을 부르대고 급기야 윤석열 후보를 당선시킨 나름의 정치적 효능감이 단숨에 꺾여버린 후유증 같았다.
살아있는 권력에 굴하지 않고 할 말을 하는 당찬 검사인 줄 알았는데, 막상 정적 수사 외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바보'였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선 집단적 절망에 빠졌다는 거다. 심지어 무지하고 무능하면서도 만기친람하며 '격노'만 일삼는 전형적인 '혼군'이라고 규정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실질적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라는 이야기가 팽배해있다고 전했다.
'머리는 빌려 쓰면 된다'던 한 전직 대통령의 지혜조차 배우지 못한 채, 하나같이 이상하고, 황당하고, 뻔뻔한 인사들만 요직에 중용하는 모습에 더는 기대할 게 없다고 잘라 말했다. 말인지 막걸린지 모를 말을 쏟아내는 대통령의 기념사는 낮술 한 잔 뒤의 '주사'라며 한껏 조롱했다. 급기야 '반국가 세력'이라는 서슬 퍼런 용어까지 끌어와 대한민국을 반세기 전 군부독재 시절로 되돌려 놓았다고 혀를 끌끌 찼다.
그들은 여전히 공정과 상식을 갈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대통령 취임 후 지난 2년은 공정과 상식이라는 가치가 뒤집히고 더럽혀진 시간이었다며, 대한민국의 역사에 '잃어버린 2년'이라고 표현했다. 자신에겐 한없이 관대하고, 타인에겐 지나치리만큼 가혹하게 적용하는 '법 기술자' 대통령의 뻔뻔함에 혀를 내둘렀다. 대통령은 더 이상 법치를 말할 자격이 없다는 거다.
그런데, 대학생들 모두가 역대급 무능한 대통령이라고 앞다퉈 손가락질하지만, 아무도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기실 대학생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지난 대선 때 누굴 찍었는지 묻는 건 금기 중의 금기다. 실제로 물었다가 말다툼이 벌어진 적도 있다며 입을 가리는 시늉을 했다.
아주 드물게 윤석열 후보를 찍었다고 선선히 고백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구동성 당장 손모가지를 자르고 싶은 심정이라며 적이 민망해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서로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대통령에 관련된 이야기는 무조건 피하게 된단다. 대학생들에게 대한민국 대통령이 비웃음거리를 넘어 기피 대상으로 전락한 셈이다.
그들은 '겨 묻은 개' 조국을 몰아내고, '똥 묻은 개' 윤석열을 옹립한 꼴이 됐다는 자괴감에 휩싸인 채 헤어나지 못하는 모양새다. 그러잖아도 정치적 이슈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그들에게 정치적 환멸을 부추긴 꼴이 됐다. 여야 정치인들 모두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그들의 편견이 공고해질수록 정치적 무관심의 골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