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쏙쏙뉴스] 대선 때 윤석열 선택했던 20대 대학생들은 지금... ⓒ 최주혜
"일말의 기대조차 사라졌으니, 실망할 것도 없어요. 윤석열 이야기는 그만하시게요."
요즘 대학생들의 시국에 대한 평가가 이렇다. 입대를 앞두고 찾아온 제자와 대학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하루가 멀다 않고 분란을 일으키는 현 정부의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또래 대학생들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물었더니 말을 도중에 끊으며 손사래를 쳤다.
어쩌면 '도발적인' 내 질문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몇 해 전 '조국 사태'가 터졌을 때, '아빠 찬스'로 공정의 가치를 무너뜨렸다면서 집단 반발하던 그 많던 대학생들은 다 어디 갔느냐고 따지듯 물은 게 화근이었다.
부언하기조차 새삼스럽지만, '조국 사태'에 대한 분노로 결집한 그들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이었고, 집권 초기 든든한 지지기반이 됐다. 당시엔 후보 시절 공약으로 내건 '여성가족부 폐지' 스티커를 스마트폰 케이스 등에 붙이고 다니는 게 유행이었다. 아무튼 그땐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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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8월 2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중앙광장에서 고려대 학생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자녀 ‘특혜 논란’ 진상규명 집회를 열고 있다. ⓒ 이희훈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혔다
그랬던 '공정지상주의자' 대학생들이 불과 2년여 만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통계로 봐도,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를 선택했던 20대 대학생들 대다수는 이미 지지를 거둔 상태다. 다만,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며 분노하면서도, 관망하고 외면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조국 사태'보다 수백수천 배 심각한 부정과 불의가 만천하에 드러났고, 또 연일 터져 나오는데도 그때처럼 집단적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 게 당최 이해되지 않았다. 제자의 말에 따르면, 뉴스에 아예 관심을 끄고 사는 게 요즘 대학생들 나름의 저항 방식이라고 했다. 또래들 SNS에 '윤석열'을 공유하는 경우는 아예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온갖 시시껄렁한 연예계의 가십거리와 스포츠, 게임 등을 소재로 한 유튜브 채널이 공유되고 있을 뿐, 민감한 정치·사회적 이슈는 자취를 감췄다고 했다. 대학가에서도 '진지충'이라는 말이 은연중에 통용된다며, 말 한 번 잘못 꺼냈다가 데면데면해진 친구들이 더러 있단다. 애초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거다.
섣부르긴 해도, 그와의 대화를 통해 요즘 20대 대학생들이 공유하는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들 모두 집단적 무력감에 빠져 도피처를 찾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국 사태' 당시 공정과 상식을 부르대고 급기야 윤석열 후보를 당선시킨 나름의 정치적 효능감이 단숨에 꺾여버린 후유증 같았다.
살아있는 권력에 굴하지 않고 할 말을 하는 당찬 검사인 줄 알았는데, 막상 정적 수사 외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바보'였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선 집단적 절망에 빠졌다는 거다. 심지어 무지하고 무능하면서도 만기친람하며 '격노'만 일삼는 전형적인 '혼군'이라고 규정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실질적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라는 이야기가 팽배해있다고 전했다.
'머리는 빌려 쓰면 된다'던 한 전직 대통령의 지혜조차 배우지 못한 채, 하나같이 이상하고, 황당하고, 뻔뻔한 인사들만 요직에 중용하는 모습에 더는 기대할 게 없다고 잘라 말했다. 말인지 막걸린지 모를 말을 쏟아내는 대통령의 기념사는 낮술 한 잔 뒤의 '주사'라며 한껏 조롱했다. 급기야 '반국가 세력'이라는 서슬 퍼런 용어까지 끌어와 대한민국을 반세기 전 군부독재 시절로 되돌려 놓았다고 혀를 끌끌 찼다.
그들은 여전히 공정과 상식을 갈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대통령 취임 후 지난 2년은 공정과 상식이라는 가치가 뒤집히고 더럽혀진 시간이었다며, 대한민국의 역사에 '잃어버린 2년'이라고 표현했다. 자신에겐 한없이 관대하고, 타인에겐 지나치리만큼 가혹하게 적용하는 '법 기술자' 대통령의 뻔뻔함에 혀를 내둘렀다. 대통령은 더 이상 법치를 말할 자격이 없다는 거다.
그런데, 대학생들 모두가 역대급 무능한 대통령이라고 앞다퉈 손가락질하지만, 아무도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기실 대학생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지난 대선 때 누굴 찍었는지 묻는 건 금기 중의 금기다. 실제로 물었다가 말다툼이 벌어진 적도 있다며 입을 가리는 시늉을 했다.
아주 드물게 윤석열 후보를 찍었다고 선선히 고백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구동성 당장 손모가지를 자르고 싶은 심정이라며 적이 민망해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서로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대통령에 관련된 이야기는 무조건 피하게 된단다. 대학생들에게 대한민국 대통령이 비웃음거리를 넘어 기피 대상으로 전락한 셈이다.
그들은 '겨 묻은 개' 조국을 몰아내고, '똥 묻은 개' 윤석열을 옹립한 꼴이 됐다는 자괴감에 휩싸인 채 헤어나지 못하는 모양새다. 그러잖아도 정치적 이슈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그들에게 정치적 환멸을 부추긴 꼴이 됐다. 여야 정치인들 모두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그들의 편견이 공고해질수록 정치적 무관심의 골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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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2022년 1월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대하빌딩에서 열린 선대위 신년인사회에서 청년보좌역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치적 효능감 되찾아 줘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성인인 대학생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유도하는 건 무도한 정권의 지상 과제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1980년 5월 광주 학살로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 정권이 이른바 '3S(Sports, Screen, Sex) 정책'을 전광석화처럼 시행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우민화(愚民化) 정책'은 불의한 권력에는 전가의 보도다.
정치적 무관심이 팽배한 사회일수록 공공성의 약화를 초래해 사회 구성원 각자의 정의감이 낮다. 아울러, 타인의 처지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지며 인권 감수성과 사회적 포용력을 훼손한다. 이는 현재 우리 사회에 횡행하는 각자도생의 가치관과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 부박한 세태의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다.
20대 대학생들의 '탈정치적 동조화' 현상이 두렵다. 더 늦기 전에 그들의 정치적 환멸을 일소하고 정치적 효능감을 되찾아 주어야 한다. 그들의 의견이 자유롭게 개진되고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고, 당장 학교에서 토론 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도록 교육 과정이 보완되어야 한다. 학벌 구조에 기댄 대학 입시가 혁파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는 옳으냐 그르냐보다 재미있느냐 없느냐를 더 중시하는 '예능 사회'를 바루는 데도 특효약이다. 혹자는 지난 대선 때의 '원죄'를 거론하며 20대 대학생들을 싸잡아 백안시하지만, 기성세대가 해야 할 일은 그들에게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시민성을 함양시키는 것이다. 그들은 기성세대의 거울일 뿐이다.
그에게 부러 할까 말까 망설이던 이야기를 꺼냈다. 대학생 제자와 오랜만에 만나 고작 교수 뒷담화나 소개팅 등 시답잖은 이야기만 나누고 헤어지는 게 솔직히 민망했다. 장래 취업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줄곧 자격증과 시험만 되뇌는 게 안쓰러우면서도 못마땅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고등학교 때처럼 '경쟁'뿐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대학의 낭만을 이야기하기엔 너무나 각박하다. 모든 대학생이 고등학교 수험생처럼 아등바등 살아가지만, 미래는 점점 암울해져만 간다. 잠깐 숨을 고르고, 시선을 밖으로 돌려보자. 자책하고 외면하는 대신, 친구들끼리 '윤석열'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 사회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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