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도 세계적인 축제 만들 수 있다는 것 증명하겠다”하고 싶은 건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탓에 서승희 감독은 앞으로도 한참 동안은 즐거운 마음으로 한계와 마주할 심산이다.
빙관식
꽤 똘망똘망하단 소리를 듣는 배우가 있었다. 연기도 잘해 조만간 스타반열에 오르겠다는 평가 속에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지만, 그의 선택지는 엉뚱하게도 충남 태안의 촌구석인 안면도 바닷가였다. 30대의 서승희가 벌인 짓이었다.
강산이 3번 가까이 변할만한 세월이 지나, 흰머리가 잘 어울리는 중년이 된 서승희씨를 지난 2일 만나 물었다. "후회 하지 않느냐?"라고. 대답 대신 돌아온 건 잔잔한 미소. 하지만 그 속에 답이 있었다.
이어 그가 밝힌, 젊은 시절 자신의 일탈(?)을 뒷받침하는 이유가 걸작이었다.
"인기에 취해 정신없이 지내던 중 문득 내 인생이 타인의 선택에 소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 뒤로는 모든 게 시들했어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주저없이 결정할 수 있었죠."
선택의 결정은 뜨거웠으나 안면도 생활은 냉랭했단다. 시골 사람들에게 유명 여배우라는 타이틀은 엿과도 바꿔 먹기 힘든 애매모호하고, 부담스러운 존재였던 까닭이다.
또한 아름다운 바다가 주는 공기의 질감은 달콤했으나 문화나 예술이라는 개념에 취약했던 당시 공무원들의 어색한 시선도 초창기 안면도 생활의 커다란 장벽으로 마주했다.
만만한 것이 하나 없는 시골 생활에 보따리를 싸서 갈 만도 했지만, 소매에 숨겨둔 에이스 카드 한 장이 큰 버팀목이 됐다. 시골로 내려오기 직전 뜻있는 동료들과 결성한 '소리짓발전소'가 바로 비장의 카드였다.
12명이 의기투합한 소리짓발전소는 1996년 창단 첫해부터 '천제의 소리'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콧대 높기로 유명한 예술의전당 관계자들에게 백기(대관)를 받아내는 등 천방지축 에너지를 발산했다.
이런 탓에 1998년부터 고집스럽게 안면도 축제를 지역에서 선보일 수 있었고, 6회 때는 충남 우수축제로 선정되며 중앙과 지역에서 동시에 두각을 나타냈다.
언제부턴가 세상 사람들은 그를 '서승희 감독'이라 부른다. A4용지 몇 장을 빼곡하게 채운 활동 연혁은 감독이란 이름으로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증명한다.
서 감독의 치열함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몇 해 전 해미읍성이란 매력적인 소재를 만난 후로는 눈이 더 반짝인다. 그는 '해미읍성' 컨텐츠를 개발, 총괄 기획자 겸 예술 총감독이라고도 불린다.
"2016년 해미읍성과 마주했는데 하늘이 성에 담겨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너무나 신선했죠. 그래서 수년째 토요 상설 공연도 하고, 해미읍성 월야연이란 프로그램으로 야간축제에도 도전 중이죠. 해미읍성은 콘텐츠의 보물창고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서승희 감독은 농사를 짓는 심정으로 축제를 꿈꾸고 만든다고 했다. 항상 결이 다른 축제를 만들기 위해 머릿속이 복잡하지만 두 가지는 꼭 지킨다. 축제는 함께 해야 하고, 사람에게 이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탓에 서 감독은 앞으로도 한참 동안은 즐거운 마음으로 한계와 마주할 심산이다. 당장 격렬비열도 사랑운동본부 출범식과 2024 태안거리축제 준비로 정신이 없다지만, 그래도 표정만은 즐겁다.
서산과 태안의 어느 축제에서 문득 "아 신선한데"하는 느낌을 받았다면 "혹시 서승희 감독"하고 예상을 해도 크게 빗나가지는 않을 것이라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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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도 세계적 축제 만들 수 있다는 것 증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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