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대학교 하계 졸업식에서 만난 꽃집 아저씨
박승일
저는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제가 집 거실에 꽃병을 두고 가끔 꽃을 꽂아 놓는데, 볼 때마다 기분이 좋더라고요. 요즘은 어떤 꽃이 좋은가요?"
"하... 요즘 꽃값이 다 비싸졌어요. 원래는 여름에 꽃값이 많이 떨어지는데 외국에서 꽃들이 안 들어오고 우리 농가에서는 수익이 낮아서 재배를 많이 안 하고…."
그 분은 말하면서 이내 긴 한숨을 내쉬셨습니다.
"아침은 드시고 나오신 거예요?"
"아뇨, 새벽부터 집사람이랑 꽃다발 만들고 바로 나왔죠. 졸업식이 오전 11시니까, 끝나면 집에 가서 먹어야죠."
"아이고, 배고프시겠네요. 저도 새벽에 출근했는데. 우리 버스에 김밥이 조금 있는데, 한 줄 드시겠어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꽃을 많이 팔면 배도 부르겠지요."
사장님은 사양했지만, 저는 그냥 버스로 가서 김밥 두 줄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사실 요즘 같은 세상에 낯선 사람이 갑자기 김밥을 건넨다고 하면 뭔가 의심할 것 같았습니다. 저는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같이 앉아서 먹으려고 두 줄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한 줄을 아저씨에게 건네며 말했습니다.
"사장님 근데 저 경찰관인 거 아셨어요? 왜인지 한눈에 딱 알아보신 것 같아서요"
"당연하죠. 여기 바로 앞에 경찰버스들도 서 있고. 요즘 누가 지나가다 말을 걸어요. 아무한테나 말 걸지 않아요. 세상이 옛날 같지 않아요. 옛날에는 지나가다 잠깐 들려서 이런 말 저런 말 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요즘은 나이 든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잘 모르면 말을 걸지 않아요. 경찰관들이야 항상 일하면서 사람들과 편히 말하니까 그런 걸 잘 모르는 거죠."
"아, 이미 제가 경찰관인 거 아셨구나."
저는 당시에 상의 안에는 경찰 근무복 반소매를 입고 있었지만 바람막이 점퍼를 밖에 입고 있어, 외관상은 제가 경찰관인 걸 모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경찰관이라고 밝히면 김밥을 드실 거로 생각했습니다.
"저도 한 줄 먹으려고요. 혼자 드시면 맛이 없잖아요."
그렇게 우리는 김밥 한 줄 씩을 입에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바로 알았습니다. 이 분께서 이미 엄청나게 배가 고프셨다는 것을요. 제가 김밥 서너 개를 먹고 있을 때 이미 한 줄을 다 드셨기 때문입니다.
김밥을 드신 사장님은 맛있었는지 한층 밝아진 표정이었습니다. 거기서 한참을 이야기하다 저는 근무를 하러 갔습니다. 그리고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간, 경찰 버스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타고 있던 버스로 옆 팀 경찰관이 찾아왔습니다.
사장님이 "집에 못 가고 있다"며 기다린 사연
"팀장님. 저기 학교 정문 앞에 꽃 팔던 분이 팀장님을 계속 기다리고 계세요. 이미 차에 짐은 다 옮겼는데 팀장님을 보고 가야 한다면서 집에 못 가고 계신다고, 오시면 꼭 말 좀 전해달라고 하셔서요."
'무슨 일이지? 내가 실수라도 했나?'라고 걱정하며 급하게 정문 앞쪽에 주차된 트럭 쪽으로 뛰어갔습니다.
"아니 사장님, 저를 찾으셨다고요. 제가 다른 곳으로 근무를 다녀왔거든요. 이제 끝나서 막 버스로 왔는데 다른 팀 직원이 이야기를 해줘서 왔습니다. 무슨 일 있으세요?"
그 분이 답합니다.
"아뇨, 무슨 일은요. 제가 아까 김밥 값을 못 드려서, 드리고 가려고 기다렸죠."
"밥값요? 그게 무슨 말씀이죠?"
"아침에 저한테 김밥 한 줄 주셨잖아요. 그것 덕분에 기분 좋게 하루 시작하면서 꽃도 많이 팔고 갑니다. 그래서 제가 밥값으로 꽃다발 하나 드리고 싶어서 기다렸어요."
"안 그러셔도 돼요. 제가 일부러 사다 드린 것도 아니고, 남아서 드린 건데요. 진짜 괜찮아요."
"아닙니다. 제가 꼭 드리고 싶어요. 뵙고 가려고 지금 20분 넘게 출발도 못 하고 기다리고 있었잖아요. 받아주세요."
사장님은 그러면서 차에서 꽃다발을 내어왔습니다. 그 말에 저는 꽃다발을 받았습니다. 가지도 않고 오랜 시간 기다리셨다는 말이 너무 감사하고도 미안했기 때문입니다.
경찰 버스로 돌아와 옆자리에 두고 그 꽃을 바라볼 때마다 왠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예전 결혼식장에서 가져왔던 꽃과 바꿨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는데, 지금까지도 꽃이 너무나 싱싱하고 이쁩니다. 볼 때마다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