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정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이 계속되고 있지만, 2025학년도 의대 수시모집에는 지원자가 대거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진학사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각 대학의 수시모집 경쟁률을 보면 11일 오전 9시(대학별 경쟁률 집계 시간 상이)까지 전국 37개 의대 수시에 1만9천324명이 지원했다. 이 수치는 모집인원 대비 7배 가까운 숫자로 수시 경쟁률을 비공개한 의대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쟁률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1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의 의학 계열 전문 학원의 모습. 2024.9.11
연합뉴스
고3인 큰아이의 2025년 수시 원서 6개의 등록을 마쳤다. 등록 기간 5일 중 3일 만에 등록을 마쳤는데, 그 3일의 시간이 우리 가족에게는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 아이가 가고 싶은 학교는 사실 하나였다. 아이는 그 학교의 심리학과를 가기 위해 2년 반 동안 열심히 생활기록부를 채웠다.
대한민국 고교생의 대부분이 그러하겠지만, 아이가 생기부를 챙기는 과정은 엄마인 내 눈에는 눈물겹기도 하고, 감동의 서사로 보이기도 했다. 우리 아이는 중학교 때까지 학교 공부 자체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아이였다. 태권도를 좋아하고, 친구들을 좋아하고,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선생님들께 수업 태도가 좋다고 칭찬받으며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지만, 정작 성적에 연연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누군가 나서서 일을 진행할 때, 잘 도와주고 따라주는 유형의 아이였지, 스스로 중앙에 나서서 무언가를 이끌어가는 성격은 아니었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사람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뺏기는 그런 성격이었다. 밖에서 밝게 웃음을 터뜨리지만, 집에 오면 뻗어버리는 아이였다. 바깥에 있는 시간만큼 집에서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한 그런 아이였다. 그랬던 아이가 고등학교를 입학하면서 크나큰 결심을 하게 되었다.
"엄마, 성격을 바꿔야겠어."
꿈을 위해 성격까지 바꾼 아이
MBTI 유형 중 극 I의 놀라운 결심이었다. 한 번도 나선 적 없던 학급 임원에 도전해보겠다더니 3년 내내 학급의 회장, 부회장을 역임하며 활발히 대의원회 활동을 했다. 오디션 같이 긴장된 상황을 잘 이겨낼 수 있을까 염려스러웠는데, 상담심리 관련 동아리에 당당히 오디션을 봐서 들어갔다. 다수가 여학생인 무리 가운데에서 소수의 남학생으로서 궂은 일도 도맡아 하며 열심히 활동했다.
방학 때는 팀을 꾸려 사회단체를 방문하거나, 주요 공공기관을 견학하는 등 적극적인 면모를 보였고, 잘 따라오지 못하는 후배를 위해 친절히 안내하고 이끌어가는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교장 선생님과 함께하는 풍물 공연에서 꽹과리를 맡아 멋지게 무대를 꾸미기도 했고, 학교 축제 때는 마음 맞는 친구와 듀엣을 준비해 코믹한 무대로 큰 웃음을 던져주기도 했다. 아이를 보면 너무 흐뭇하다는 선생님들의 칭찬이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의 고교생활을 지켜보는 동안 나는 꿈이라도 꾸고 있는 듯했다. 저렇게 잘하는 아이였던가? 저렇게 밝은 아이였던가? 엄마 품 안이 아니면 아무것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아이일 줄 알았는데, 아이는 엄마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해 가고 있었다.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고, 이제 어디에 갖다 놔도 잘해 낼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런데 수시 원서를 등록하는 동안, 아이는 많이 힘들어했다. 등급을 맞추기 위해 나름 학업에 열심히 임했지만, 산출된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면접에서 반등해 보리라는 기대를 붙들고 상향 지원을 했다.
차선책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지방의 거점국립대학으로 눈을 돌렸는데, 아이가 불안해했다. 학생부종합전형에서는 면접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면접을 준비하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드러내던 아이가, 학생부교과전형 지원에서는 자꾸만 머뭇거렸다. 이유는 한 가지였다. 수능 최저 점수를 맞출 자신이 없다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