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편을 건네는 마음정성스럽게 빚은 떡을 나눠먹으며 위로를 건네고 싶다.
임은희
명절만 다가오면 속이 더부룩하고 두통이 심해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동네 언니가 있다. 주방에서 나오질 못하고 일만 하다 추석 당일을 보내는데 앉아서 사과 한쪽 먹을 시간도 없단다. 일하랴, 아이 돌보랴, 살림하랴, 제대로 된 밥 한 끼도 먹지 못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며 중년이 되었지만 명절에도 타인들 돌보느라 바쁠 어머님들께 부드러운 밤을 넣은 단정하고 깨끗한 백색 송편을 선물하고 싶다.
고등학교 1학년인 ㅇㅇ이는 동네 빌라촌의 어느 작은 원룸을 빌려 자립을 준비하고 있다. 만 18세가 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자립해야 하기 때문에 기관 근처의 방을 빌려 홀로서기를 준비하고 있다. 식사 준비부터 빨래까지 모든 일을 혼자 감당하며 학교를 다녀야 하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고소한 깨와 꿀을 담은, 단호박과 껍질로 색을 낸 영양가 높은 연두색 송편을 건네고 싶다.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였던 김지은씨는 지난 5월 4년 만에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충청남도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일부 승소했다. 잦은 성폭행으로, 사회의 2차 폭행으로, 소송으로 보낸 4년 동안 했을 마음고생이 어땠을지 짐작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다. 성폭력 피해자 분들께 꿀에 갠 녹두경단을 넣고 은은한 향의 쑥가루를 보탠 멥쌀가루로 동그랗게 빚은 초록 송편을 나눠드리고 싶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30년째 수많은 사람들이 가습기 살균제로 고통받고 있다. 피해자들 그리고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송편을 건네고 싶다. 잘 불린 서리태를 삶아 꿀을 바른 속을 담고 몸에 좋은 홍국쌀가루로 곱게 색을 낸 분홍 송편으로 추석만큼은 아픔을 잊고 지내시라 말씀드리고 싶다.
명절이면 택배가 너무 많아서 죽을 정도로 바빠진단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일에 치여 목숨을 잃어버린 택배 노동자들의 유가족들에게 힘내시라고 송편 한 알을 건네고 싶다. 개도 뛰어다니면 힘든 폭염에 쉴 새 없이 택배상자를 나르다 사망한 분들의 서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원통함에 눈물 흘리는 분들께 뭉근하게 끓여 단맛을 더한 팥경단을 꼭꼭 눌러 담고 치자로 색을 낸 노란 송편을 선물하고 싶다.
추석은 추수 전에 햇곡식으로 떡을 빚고 햇과일로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며 풍년을 기원하는 큰 명절이다. 함께 농사를 짓고 올벼쌀을 훑어 없는 살림에도 떡을 찌던 과거의 넉넉함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한가위의 풍요로움을 모든 이가 함께 즐겼으면 한다. 명절이 온다 해서 모든 이의 힘듦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추석만큼은 넉넉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온정을 베풀고, 슬픔을 잊을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두의 마음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기를 기원한다.
지속가능한 가치로 아이들을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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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노동자 유가족에게 송편을 나눠드리고 싶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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