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베이
문해력은 학업적, 직업적,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해력이 높은 개인은 정보를 쉽게 습득하고 신속하게 이해할 수 있으며, 문서와 정보를 효과적으로 작성하고 분석할 수 있다.
이는 학습 능력, 의사소통 능력, 문제해결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더 나아가 살아가는 데 있어 제반 상황을 이해하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사고 능력까지 제공한다.
특히 청소년에게 문해력이 중요한 것은 문해력이 여타 학습에 중요한 도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문해력이 부족하면 전반적인 학습 의욕을 떨어뜨리고 당연히 학업 성취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여러 측면에서 청소년 시기와 그 이후 인생에서 자신감과 자존감을 하락시켜 정신 건강에 해를 끼치고 사회 적응을 어렵게 만든다.
최근 국내 성인과 청소년의 문해력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사흘' '금일' '심심한 사과' 등 기본적인 어휘를 오해하는 일도 잦아져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 8월 29일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실시한 제4차 성인문해능력조사 결과에서 우리나라 성인 가운데 3.3%인 146만 명이 기본적인 읽기, 쓰기, 셈하기에 어려움을 겪는 비문해 성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성인 100명 중 3명의 문해력이 초등학교 1~2학년 수준인 것이다.
추후 공업고등학교가 어디야?
지난 3월 대학교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실제로 올라온 게시글의 제목이다. 게시글에서 작성자 A씨는 "추후 공업고등학교가 어디야? 카카오맵에 왜 안 뜨지? 어딘지 아는 사람?"이라며 다른 학생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A씨의 게시글을 본 학생들과 누리꾼들은 A씨가 장소 공지에 적힌 '추후 공고'를
보고 이를 '추후 공업고등학교'라고 받아들인 것 같다고 추측했다. "이건 레전드네"라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추후(追後)'는 '일이 지나간 얼마 뒤'라는 뜻이며, '공고(公告)'는 '세상에 널리 알림'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즉, 추후 공고는 '일정 시간 뒤에 알려주겠다는'는 뜻이다. 그러나 A씨는 '추후 공고'에서 '공고(公告)'를 공업고등학교의 준말인 '공고(工高)'로 잘못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문해력 부족으로 엉뚱한 말을 하거나 황당한 답변을 하는 '문해력 저하 논란' 사례는 다양하다.
지난 5월 대형 유튜브 채널 '너덜트'는 배우 모집 공고를 내며 '모집인원 0명'이라는 문구를 사용했다. 이에 일부 네티즌들은 '한 명도 안 뽑을 건데 공고를 왜 냈냐" "구체적인 인원 수가 있어야지 공고 올려놓고 0명이라니" 등 악성 댓글을 남겼다.
현직 어린이 집 교사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학부모들의 문해력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지난 6월 당시 9년 차 어린이 집 교사라고 밝힌 작성자는 "보통 'OO를 금합니다' 라고 하면 당연히 금지한다는 뜻 아니냐. 그런데 일부 학부모들은 금이 좋은 건 줄 알고 'OO을 하면 제일 좋다'고 알아듣는다"고 털어놨다. '우천시에 OO로 장소 변경'을 보고 "우천시라는 지역에 있는 OO로 장소를 바꾸나요?"라고 질문하시는 분도 있다며 "섭취, 급여, 일괄 이런 말을 진짜 모를 수 있냐. 예전엔 이런 걸로 연락 오는 부모님이 없었는데 요새는 비율이 꽤 늘었다"고 한탄했다.
또한 "단어뿐만 아니라, 말의 맥락 파악도 못한다"며 "OO해도 되지만, 하지 않는 것을 권장합니다"라고 했더니 "그래서 해도 되냐, 안되냐"고 문의한 학부모가 네 명이었다고 토로했다.
이 외에도 '급식으로 중식을 제공한다'라고 적힌 가정통신문에서 '중식'을 중국음식으로 이해하거나 '사흘'을 4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대표적인 문해력 부족 사례로꼽힌다.
조병영 한양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역시 지난해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학부모님들은 아이들에게 글과 책을 읽으라고 하지만 본인들은 가정통신문조차 안 읽는다"고 꼬집은 바 있다.
유명 유튜버 고말숙(본명 장인서)씨가 '결혼식 축사'를 '소 키우는 곳'이라고 말해 논란이 된 경우도 있다. 최근 고말숙은 개그맨 김대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꼰대희'에 출연했다. 김대희가 초등학교 동창의 딸이 결혼한다며 "내가 축사해 주기로 했다"고 말하자 고말숙은 "축사는 소 키우는 데 아니에요?"라고 답해 주변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었다. 이에 김대희가 "솔직히 웃기려고 한 얘기야, 진짜 모르는 거야?"라고 되묻자, 고말숙은 "축가까지는 안다"고 답했다. "축사는 편지다. 친구가 편지 읽어주는 걸 축사라고 한다"는 김대희의 설명에 고말숙은 "아~ 이거 편집해달라"고 요구했다.
선생님, '완강하다'는 '완전 강하다' 아닌가요?
청소년 문해력 문제도 성인들과 다르지 않다. 최근 수도권 고등학교의 한 영어 교사 B씨는 고교 3학년 수업에서 뜻밖의 일을 겪었다. '완강하다'가 '완전 강하다'의 줄임말인 줄 알았던 학생들이 생소한 단어가 나올 때마다 자기들끼리 웅성거렸던 것이다. 또 "'모색한다'는 '색깔을 따라 칠한다'는 뜻인가요?"라는 질문에 B씨는 "내가 영어 교사인지 국어 교사인지 헷갈릴 정도"라고 착잡함을 드러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 6월 발표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분석 결과'에서도 중학교 3학년생의 국어 과목 '보통학력 이상' 비율은 2019년까지만 해도 82.9%에 달했지만 지난해에는 61.2%로 급감했다. 고등학교 2학년생의 국어 과목 '보통학력 이상' 비율도 77.5%에서 52.1%로 하락했다.
서울신문에 따르면 학생들의 문해력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2학기가 시작된 8월 중순부터 지난 6일까지 전국 초중고교 교사 20명을 심층 인터뷰하고 학생 조사를 병행한 결과, 교사들은 "수업 진행이 어려울 정도로 최근 2~3년 새 문해력이 저하됐다"고 입을 모았다.
문해력 저하는 초등학생부터 발견된다. 조기 교육으로 한글을 뗀 덕에 글자는 잘 읽지만 단어와 문장의 뜻을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김민중 대구 월배초 교사는 "고학년이 북한 이탈 주민에서 '이탈'의 뜻을 모른다든지, 지진이나 홍수는 알아도 '재난' 같은 상의어나 포괄어를 모르는 경우가 흔하다"고 말했다. '같이'를 '가치'로 쓰는 등 비교적 쉬운 맞춤법을 틀리거나, 문장 주술 관계를 파악하지 못하는 고학년도 쉽게 볼 수 있다.
문해력 문제는 국어는 물론 다른 과목 학습에도 걸림돌이다. 학생들이 수학 계산 능력은 뛰어나지만 서술형 문제의 문장을 이해하지 못해 손을 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조미숙 교사는 "'대변(마주 보는 변)을 가르치는데 아이들이 똥 아니냐고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수학 개념은 단어와 직접 연결된 게 많다 보니 더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사회나 과학 교과를 가르칠 때도 다르지 않다. 기본 단어 설명에 수업 시간의 10~20분은 할애해야 하는데, 시간은 부족하지만 단어를 모르면 진도를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매질에 따른 빛의 굴절'을 설명하는데 "왜 때리냐"고 묻기도 하고, 고교 1학년 시험에서 학생들이 '왕이 승하한다'는 표현을 몰라 역사 시험에서 오답이 속출했다.
아 몰라, 세 줄 요약해줘
세계 최저 수준 문맹률과 최고 수준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청소년들과 성인들의 문해력이 저하된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신문의 인터뷰에 응한 교사 20명 모두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와 영상 매체 이용 증가를 가장 큰 이유로 뽑았다. 15년
차 이상 교사들은 스마트폰의 등장 전후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느낀다고 한다.
2022년 1월 국제 과학 연구 학술제 네이처(Nature)에 게재된 논문 'Reading on
a smartphone affects sigh generation, brain activity, and comprehension' 역시
스마트폰 등 IT 기기의 사용이 증가함에 따라 뇌의 장문 읽는 능력이 하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어휘력뿐 아니라 글의 주제와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도 부족하다고 입 모아 이야기 했다. 조금만 글이 길어도 읽기를 피하거나 엉뚱한 주제를 적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환경 보호를 위해 주인공이 자전거 여행을 한다'는 글의 주제를 '자전거를 타고 싶다'로 답하는 경우도 있었다. 황수진 인천 이음초 교사는 "아이들이 전반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추출하고 의도 파악하는 것을 어려워한다"며 "긴 글도 영상 요약본으로 접하니까 스스로 찾는 힘이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22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10대 청소년 미디어 이용 조사'를 보면 청소년의 인터넷 이용 시간은 하루 평균 8시간으로 2019년보다 1.8배 증가했다. 특히 청소년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동영상 플랫폼은 유튜브(97.3%)와 유튜브 쇼츠(68.9%), 인스타그램 릴스(47.6%), 틱톡(39.6%)으로 이용률 2~4위가 모두 쇼트폼 콘텐츠 플랫폼이다.
교사들은 흥미와 자극 위주의 영상 신청이 글 읽기 방해의 주범이라고 지적했다.
15초 안팎의 짧은 길이에 언어도 거의 없는 '릴스'와 '쇼츠'에 익숙해지다 보니 호흡이 긴 글을 읽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배주호 초등교사는 "쇼트폼 콘텐츠가 많아지고 짧은 메시지로만 소통하면서 전반적인 주의 집중력이 부족해지는 현상"이라고 했다.
실제로 최근 온라인 상에서는 '긴 글 주의' '세 줄 요약 좀' 등의 말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는 장문의 글이 인터넷 커뮤니티의 경고 대상이 될 정도로 장문의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을 반기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세 줄로 요약해줘"라는 말은 사람들이 조금만 긴 글을 봐도 글을 다 읽지 못하거나 읽는 것이 귀찮다는 이유로 짧게 세 줄로 요약한글만 보고 싶다는 의사가 잘 드러나 있다.
심화되는 문해력 저하 문제, 해결 방법은 없나
문해력 저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사회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개인적으로는 독서 습관을 기르고, 다양한 글을 읽으며 사고의 깊이를 더하는 것이 중요하다. 디지털 미디어에 지나치게 의존하기보다는, 책을 읽고 정보를 분석하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 특히 청소년들에게는 책을 읽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고, 글을 통해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적으로는 문해력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학교에서는 문해력 향상을 위한 기초 교육을 강화하고, 학생들의 수준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또한, 디지털 시대에 맞춰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도 병행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디지털 환경에서 정보를 올바르게 해석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도 다양한 정책을 통해 문해력 회복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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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사회의 그늘, 속절없이 추락하는 한국인 문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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