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강병수 한 분, 이명 강병수 두 분

[오늘의 독립운동가 18 ] 9월 30일 타계한 강병수 지사

등록 2024.09.30 12:29수정 2024.09.30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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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년 기념관(왼쪽), 이강년 의진의 전투 장소 중 한 곳인 문경 새재
이강년 기념관(왼쪽), 이강년 의진의 전투 장소 중 한 곳인 문경 새재정만진

경북 문경 영순면 이목리 381번지 본적의 강병수(姜炳修) 지사는 1972년 9월 30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7세였다. 1885년 9월 5일 출생했으니 나라가 망해가던 시대를 그는 20대로 살았다. 22세이던 1907년 이강년 의진에 들어 일본군과 싸웠다.

이강년은 22세이던 1880년(고종 17) 무과에 급제했다. 하지만 4년 뒤(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정치에 실망해 벼슬을 버렸다. 10년 뒤(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하자 그는 동학군에 투신했다. 이때 동학 장수 이강년을 따랐던 농민군들이 뒷날 의병을 자원해 창의대장 이강년에 큰 도움을 주었다.

농민들, 동학군 활동했던 이강년 적극 지원

이강년이 문경에서 처음 의병을 일으킨 때는 1896년이었다. 그는 왜적 앞잡이 노릇을 하며 양민 토색을 일삼던 관찰사 김석중, 순검 이호윤과 김인담을 농암 장터에서 효수하는 것으로 창의 출범식을 치렀다. 백성들은 이른바 열화 같은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이 무렵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을미의병은 고종의 해산 명령에 따라 스스로 군대를 해산하고 말았다. "국왕이 의병 해산을 명하게 되자, 여기에 항거할 명분을 상실하였을 뿐만 아니라 경군(인용자 주: 서울 중앙군)이 각지로 파견되어 의진을 압박한 까닭에 더 이상 활동이 불가능(국사편찬위원회 <신편 한국사>)"해졌기 때문이다.

고종의 명령에 따라 해산되고 만 을미의병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에 저항해 을미의병을 창의했다가 자진 해산한 이강년은 1907년 고종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 군대 강제 해산 사태가 터지자 다시 군사를 일으켰다. 강병수가 이강년 의진에 들어 종사(從事)로 참전한 것은 이때였다.


<운강선생 창의 일록>에 "강병수의 호는 신암(信庵)이며 문경에서 살았다. 한편으로 싸우며 한편으로 퇴각하는 중에도 잠시도 (이강년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그의 헌신도 보람 없이 이강년 의병장은 1908년 일제에 피체되어 순국했다. 그 이후 강병수는 고향에서 은둔했다.

이강년 의병장 순국 후 고향에서 은둔


문경 강병수 지사 출생보다 1년 전인 1884년, 인근 고을 상주에서 또 다른 강병수(姜秉秀, 秉洙, 炳洙) 지사가 태어났다. 한자이름이 여럿인 것은 본명이 아니라 그들이 이명(異名)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본명은 강순필(姜順必)이다.

상주 강병수(강순필) 지사도 이강년 의진에 들어 여러 전투에 참가했다. 그는 이강년 의진군 해산 몇 년 뒤(1913년) 경북 영주에서 결성된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에 다시 가담했다. 대부분 의병 성향 인물들로 구성된 풍기광복단은 독립운동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일본인 소유 영월 중석광산을 습격하고,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군자금 수합 활동을 펼쳤다.

이강년 의진 해산 후 풍기광복단 활동

그러던 중 1915년 8월 25일 대구 중심의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 등과 통합해 광복회(光復會)로 발전했다. "1910년대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독립운동 단체(제5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정 국사 교과서)" 광복회는 국내에서 모집한 군자금으로 만주에 독립군기지를 세워 혁명군을 양성하고, 국내에도 기지를 확보해 두었다가 때가 오면 봉기해 독립을 쟁취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

'비밀·폭동·암살·명령"을 4대 강령으로 한 광복회는 수많은 활동을 펼쳤다. 그 중 한 가지가 1917년 11월 10일 "세인을 놀라게 한 대구 부호 전 관찰사 장승원 사살(박성수, <알기 쉬운 독립운동사>)˚이었다. 하지만 1918년 1월 충청도 지부장 김한종, 2월 총사령 박상진 등이 피체되면서 광복회는 마침내 해체되었고, 장승원을 사살한 강순필은 1921년 사형으로 순국했다(37세).

 대한광복단기념관, 강순필 지사의 장승원 처단 보도 기사(신한민보, 1918.1.17.)
대한광복단기념관, 강순필 지사의 장승원 처단 보도 기사(신한민보, 1918.1.17.)정만진, 국가보훈부

문경 강병수 지사보다 11년, 상주 강병수(강순필) 지사보다 10년 뒤인 1895년, 상주에서 또 다른 강병수(姜炳秀) 지사가 출생했다. 이 강병수 지사는 권중환, 권중석, 양무, 장수화 등 많은 이명을 썼는데, 상주 강병수 지사와 마찬가지로 일제와 밀정들을 속이기 위한 방편이었다. 본명은 권준(權晙)이다.

가장 연소한 이 강병수(권준) 지사도 고향 10년 선배 강병수(강순필) 지사와 마찬가지로 광복회 회원이었다. 이강년 의병장이 순국하고 경술국치를 당할 때 겨우 13세 또는 15세였으니 그가 의병 활동을 하기에는 불가능했다.

권준 지사는 1917년, 22세 때 광복회에 가입했다. 문경 강병수 지사와 상주 강병수(강순필) 지사가 각각 22세와 23세에 이강년 의진에 들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또 다른 상주 강병수(권준) 지사가 22세에 광복회 단원이 된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22세에 광복회 가입, 23세에 만주 망명

1918년 광복회가 해체되자 권준 지사는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했다. 의열단 창단 주역인 이종암, 김원봉, 서상락 등이 한결같이 신흥무관학교에 다니면서 군사 훈련을 받았으니, 권준이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하여 그들과 만난 것은 '운명'이었다.

권준은 군자금 조달과 폭탄 제조, 재정 처리 등의 임무를 수행해 의열단의 종로경찰서,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과 동경 이중교 투탄 의거 등을 적극 지원하였다. 1926년 열린 동방 피압박 민족 연합회(東方被壓迫民族聯合會)에 한국 대표로 참석해 집행위원에 선출되기도 했다.

1932년 중국정부의 후원을 받아 설립된 한국인 군사학교 교관을 맡아 독립운동 간부 양성에 힘썼고, "민족 유일당"을 기치로 내건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에 입당해 활약했다. 19444년 임시정부 내무부차장으로 일할 때 광복을 맞이하였다.

 광복회 결성지 달성토성은 신라 시대 이후 군사시설(국가사적)이지만 현재 '동물원'을 가진 '공원'으로만 여겨지고 있다.
광복회 결성지 달성토성은 신라 시대 이후 군사시설(국가사적)이지만 현재 '동물원'을 가진 '공원'으로만 여겨지고 있다.정만진

영주와 밀양은 독립운동가들을 정성껏 모시는데

경북 영주시 풍기읍 산법리 376-6번지에 '대한광복단기념공원'이 있다. 5층의 웅장한 기념관을 비롯해 기념탑 등 많은 조형물들이 잘 건립되어 있다. 1995년 11월 17일에 만들어졌으니 벌써 40년째를 바라보는 현충시설이다.

그런가 하면, 경남 밀양시 노상하 1길 25-12에는 '의열 기념관'이 있다. 2017년 12월 27일 건립된 밀양 의열기념관은 영주 대한광복단기념공원에 견줘 아주 아담하지만, 의열단의 후광에 힘입어 널리 알려진 유명 현충시설로 자리를 잡았다.

광복단과 의열단의 가교로서 1910년대를 대표하는 독립운동단체 광복회 결성지인 대구 달성토성에는 안내판 하나 없다.
덧붙이는 글 국가 인정 독립유공자가 1만8천여 분 계시는데, 국가보훈부와 독립기념관의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소개하려면 1500년 이상 걸립니다. 한 달에 세 분씩 소개해도 500년 이상 걸립니다. 그래서 돌아가신 날, 의거일 등을 중심으로 '오늘의 독립운동가'를 써서 지사님들을 부족하나마 현창하려 합니다.

#강병수 #강순필 #권준 #의열단 #광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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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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