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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유기농 밥상 차려 먹는 일'의 진짜 의미

[StopKADEX③] 지역에서 평화를 말한다는 것

등록 2024.10.01 17:05수정 2024.10.0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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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부터 격년으로 열려온 지상군 무기박람회 대한민국 방위산업전(DX KOREA)가 9월 25일부터 28일까지, 올해 처음 열리는 대한민국 국제방위산업전시회(KADEX)가 10월 2일부터 6일까지 개최됩니다. 세계의 주요 무기 회사와 각국 정부의 국방 관계자가 참여하며, 이 중에는 민주 시위를 탄압하고 국내외 분쟁에서 민간인을 학살하는 국가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기박람회저항행동은 전 세계 무기산업이 초래하는 인명 살상과 군비경쟁의 문제점 등을 6회에 걸쳐 짚어봅니다.[기자말]
"내가 널 행복하게 해 줄게."

추석 연휴 동안 보고 싶었던 영화를 몰아보던 도중, <52 헤르츠 고래들>이라는 일본영화에서 남성 주인공이 여성 주인공에게 이야기한 문장이다. 나도 종종 연애를 해왔을 때 상대방에게 들었던 말이었지만 영화 속 남성의 입을 통해 발화된 그 문장은 좀 더 불쾌하게 다가왔다.

시스젠더(태어날 때 사회로부터 부여받은 지정성별과 자신의 성별정체성이 일치하는 경우) 이성애자 남성 캐릭터는 여자 주인공을 짝사랑하는 또 다른 트랜스젠더 남성에게 '당신은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며 못을 박는다. 트랜스젠더와 달리 규범적으로 '정상적인' 몸을 가진 시스젠더 이성애자 남성에, 부유한 엘리트 집안의 남성 캐릭터는 영화가 끝나는 내내 여자 주인공에게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고 말한다.

이것에 대해 할 말은 많지만, 남성인 자신이 여성인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거라는 말은 유독 남성은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이 깔려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는 '보호하는 자'와 '보호받는 자'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여성을 주체적인 존재가 아닌 수동적인 존재로 규정한다. 영화 속에서 여성은 자신의 행복을 자신이 주체적으로 찾아가는 캐릭터가 아닌, 남성의 사랑과 보호를 받는 수동적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마치 온실 속의 화초처럼.

이러한 보호하는 자/보호받는 자의 이분법적 구분은 남성/여성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모든 규범은 이러한 이분법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분법은 누군가를 '비정상'으로 규정하고 '대상화'하여 경계를 설정하고 불법적 존재를 검열하고 착취하는 데에 효과적으로 쓰이고는 했다.

남성/여성, 문명/자연, 이성/감성, 몸/마음, 시스젠더/트랜스젠더, 비장애/장애, 국민/비국민, 백인/흑인, 이성애/동성애, 인간/비인간 등 다양한 이분법적 구도가 우리 안을 헤집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지역에서 비거니즘을 이야기하고 동물해방을 이야기하는 동물로서, 인간과 비인간의 이분법적 구도를 살펴보고 싶다.

평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평화를 어떤 방식으로 말할 수 있을까? 사실 평화라는 것을 거의 경험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난 아직도 '평화'가 무엇인지, '평화로운 세상'이 과연 오긴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하지만 서울보다 비건으로 외식하기 어려운 지역에서 살아가면서 비거니즘과 동물해방, 동물권을 이야기하고 매일 내 앞에 놓일 밥상을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조금이라도 덜 착취하는 방식으로 차려 먹는다는 것은, 평화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

'탄잡채'에서 평화를 실천하는 법


a  탄소잡는채식생활네트워크의 활동 모습

탄소잡는채식생활네트워크의 활동 모습 ⓒ 탄소잡는채식생활네트워크


나는 대전에서 탄잡채(탄소잡는채식생활네트워크) 친구들과 서로의 몸을 부대끼며 비건으로 함께 밥을 먹곤 한다. 수요일에는 국산 유기농 농산물로 음식 준비부터 정리까지 '불편한 밥상'을, 그 외에도 틈만 나면 친구들과 밥을 해 먹는다. 이제는 같이 밥 해 먹는 것으로도 모자라 육식자본주의, 기후정의와 관련된 오리지널 그림자연극 '특별한 희망'까지 제작했다.

지난해부터 10회 정도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리 바빠도 '밥 해 먹는 일'을 빼놓지 않는다. '밥 해 먹는 일'이 모임의 의례가 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탄잡채는 '대전'이라는 지역에서 살고 있지만, 어쨌든 대전도 도시로서는 착취적이다.

대전은 태안에서 전기를 끌어다 쓰며, 어딘가에서 공장식으로 키워진 농산물을 여느 마트에서도 손쉽게 찾을 수 있다. 그 안에서 착취된 비인간과 자연, 비국민, 시골은 쉽게 지워지고 만다. 도시와 시골의 착취적 관계는 도시/시골을 이분법으로 나누어 시골을 그저 '낭만적인 곳'으로 규정하는 프레임에 쉽게 가려진다. 하지만 이러한 착취적 구조는 우리가 애써 찾아보지 않는 이상 쉽게 알아차릴 수 없다.

탄잡채를 통해 이야기하는 평화는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지고 재생산된 착취적 관계와 언어를 해체하여 모호한 것으로 바꾸고 실천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언제나 모호한 것보다 확실하고 고정되어 있는 것들을 선호한다. 하지만 인간/비인간, 문명/자연과 같은 이분법적 구도는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일까? 그리고 이분법적 구도는 어떤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하는가?

모든 규범적 언어들은 권력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것은 평등한 평화에 다가갈 수 있다. 그것은 인간과 비인간의 이분법적 대립 구도도 마찬가지이다. 인간도 동물이지만 우리는 쉽게 인간과 비인간을 나누며 인간/비인간을 보호하는 자/보호받는 자로 규정한다.

하지만 그렇게 규정하는 것은 '동물보호', '동물복지'를 외치는 것과 다름없다. 이것은 앞서 이야기한 권력자들의 규범에 그대로 편승하여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꼴이 된다. 그 말은 결국, 지금 내가 '인간'으로써 가지고 있는 권력은 그대로 누리면서 마음 내킬 때 저들에게 대중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착취하겠다는 말과 동일하다. 가해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상냥한 지배'나 다름없다. 앞서 이야기한 영화 속 대사의 '내가 널 행복하게 해 줄게'와 같이 여성을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 대상화하는 것과 과연 얼마나 다를까?

'보호' 이데올로기라는 착취적 관계

a  지난 9월 25일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제76주년 국군의 날 미디어데이 리허설에서 단거리지대공유도무기 천마가 이동하고 있다.

지난 9월 25일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제76주년 국군의 날 미디어데이 리허설에서 단거리지대공유도무기 천마가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러한 '보호' 이데올로기는 전쟁 논리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국가'는 '안보'를 위해서 다른 국가에 침략당하지 않기 위해 국방력을 강화하고 전쟁무기를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전쟁무기는 분명히 살아있는 존재를 살해할 수 있는 물질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끊임없이 합리화된다.

심지어 매년 무기박람회를 개최하여 생명을 학살하는 전쟁무기를 '국가의 성장에 이바지하는' '무기산업'으로 포장한다. 또한 대전에서도 '방산혁신클러스터'라는 이름의 산업단지가 조성될 예정이다. 이러한 국방산업단지 조성을 지지하는 이들은 '지역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목으로 국방산업 관련 기관과 기업이 지역에 유치되는 것을 합리화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합리성을 기반으로 한 주장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라고 칭하는 집단의 '성장'이 다른 누군가를 착취하고 죽게 한다면 그게 과연 정당화되는 것일까? 그리고 그 '우리'를 규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아무리 평화에 대한 감각이 없다고는 하지만 '안보'와 '보호'라는 이데올로기가 이렇게까지 강력하다는 것은, 우리 안에 전쟁과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항상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의 증거는 아닐까. 그것은 또한 국민/비국민을 나누는 이분법을 해체하는 다양한 실천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언젠가 나도 '저런 꼴을 당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며 또다시 '우리'의 울타리를 견고하게 보호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탄잡채에서 불편하더라도 얼굴 있는 국산 유기농 농산물로 비건 밥상을 차려 먹는 일과 무기거래를 반대하고 무기박람회, 국방산업에 저항하는 일은 전혀 다른 운동이 아니다.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보호' 이데올로기라는 착취적 관계를 바로잡는, 우리 안에 내재된 수많은 이분법을 해체하고 실천하는 평화의 길이다.

[StopKADEX①] 전쟁터 '한국산'의 실체... 윤 정부는 세금을 이런 데 쓴다
(https://omn.kr/2aa0n)

[StopKADEX②]충격적인 군 온실가스 배출량... 보고서는 왜 비공개됐나
(https://omn.kr/2ab9m)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무기박람회저항행동 소속 단체들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무기박람회저항행동은 무기박람회 반대 활동을 위해 모인 평화활동가와 평화운동 단체들의 네트워크입니다. 2024년 현재 18개 단체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의 필자는 설 탄소잡는채식생활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
#무기박람회저항행동 #KADEX #무기박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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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박람회저항행동은 무기박람회 반대 활동을 위해 모인 평화활동가와 평화운동 단체들의 네트워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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