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부와 중고등부 학생들이 만든 허수아비들
느린IN뉴스
한 달에 한 번, 경기권과 서울 지역 느린학습자 중고등학생들은 한 농부님으로부터 "너희들은 햇빛이고 별이고 하늘이고 우주"라는 말을 듣는다. 학교에서 이따금, 혹은 종종 투명 인간이 돼 버리곤 하는 느린 친구들이 이 공간에 들어서면 해처럼 환한 빛을 내뿜는 존재가 된다. '나'라는 존재를 온몸으로 체감하게 된다. 중고등 느린 친구들이 농촌 체험을 하는 이곳은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독지리에 자리한 유기농 포도 농장 '스튜디오 흙'이다.
프로그램의 정식 명칭은 '중고등 느린학습자 치유농장'이다. 이 프로그램은 '흙이 시를 만나면'의 농장 대표이자 농부인 이상배 씨가 화성시느린학습자부모회 '늘품'과 2023년 몇 번의 일회성 귀촌 체험을 진행한 후 학부모들의 지속적인 프로그램 요청으로 기획됐다.
올해는 화성 '늘품'만이 아니라 수원, 고양, 성남, 부천, 관악과 은평까지 경기권과 서울의 느린학습자들과 함께하는 체험으로 확대돼 매달 10가족 이상 30명이 넘는 이들이 참여한다. 스튜디오 흙을 통해 만난 중고등 느린학습자들과 부모들은 내 동네에 국한하지 않고, 전국 방방곡곡에 인연의 실타래를 엮어 식연(食緣), 즉 먹는 인연으로 밥정을 쌓아가는 중이다.
총 9회차로 이뤄진 프로그램은 4월부터 시작해 10월까지 7회차가 진행됐다. 회기 당 체험 시간은 4시간이다. 4월에는 흙 고르기와 씨앗과 모종 심기를, 5월에는 모내기를, 6월에는 감자 캐기와 양배추와 배추 따기, 포도 봉지 씌우기를 했다. 7월과 8월에는 옥수수, 수박, 참외를 수확했다. 9월에는 샤인머스켓 따기와 배추 심기를 했고 10월에는 허수아비를 만들었다.
치유농장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체험이 생존 음식 만들기다. 부싯돌을 이용하거나 한여름에는 돋보기로 불을 지펴 가마솥에 밥을 하고 된장국을 끓인다. 학생들이 직접 심고 딴 배추로 커다란 솥뚜껑에 기름을 두르고 배추전을 부치기도 하고, 삼복더위에는 삼계탕도 해먹는다.
한 달에 고작 한 번이지만 중고등 친구들은 스튜디오 흙에서 사계절의 농촌을 온몸으로 느껴가고 있다. 치유농장이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 프로그램으로 정착된 건 몸으로 하는 경험을 훨씬 잘 기억하는 느린학습자들의 특성 때문이었다. 몸과 머리를 같이 쓸 수밖에 없는 농촌 체험은 학생들의 인지력을 높여 주며, 무엇보다 협동 체험은 이들의 자발성과 사회성 향상을 돕고 있다.
이상배 농부님의 아이디어로 중고등 친구들은 나눔 활동도 한다. 각자 집에서 해온 반찬, 자신들이 딴 포도, 농부님이 준비해 준 쓰레기 봉투를 동네 어르신들에게 배달하는 것이다.
학생들뿐 아니라 부모들에게도 치유의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