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 파출소 전경. 제주 4.3 당시 연평 지서 자리로 추정되는데, 이곳에서 차두옥 선생은 서북청년단에 의해 모진 고문을 당해 숨졌다. 4.3 연루자들의 도피를 도왔다는 죄목이었다.
서부원
그러고는 지금의 우도 파출소에 가서 문의해 보라고 했다. 경찰에 관련된 역사이니만큼 그들이 정확하게 알 것 아니냐는 거다. 우도 파출소의 당직 경찰도 면사무소의 직원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당시에도 이곳에 있지 않았겠느냐며 얼버무릴 뿐이었다. 대신 경찰서 본청이 해당 자료를 가지고 있을 테니 거기에 가서 알아보라고 했다.
더욱 난감했던 건, 누구든 차두옥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는 건 알지만, 그가 어떤 분이고 왜 희생되었는지 잘 모른다는 점이다. 지역 주민의 이름으로 애써 위령비를 세운 취지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주민들이 그의 행적도 모른 채 그의 정신을 기린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파출소 문을 나서며 괜스레 슬퍼졌다. 지역 주민들이 덩그러니 위령비 하나 세워놓고 할 일 다했다는 식 같아서다. 4.3과 차두옥 선생이 우도를 온전히 대표할 순 없겠지만, 지역 공공기관의 무관심이 못내 아쉽다.
돌아가는 길, 면소재지와 천진항을 잇는 남북 방향 중심 도로변에 조성된 '충혼묘지'에 들렀다. 이 작은 섬에 '충혼'이라는 이름을 단 묘지가 있다는 게 놀라워서다. 큼지막한 충혼탑 뒤로 30여 기의 묘비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6.25 전후 희생된 우도 출신 참전 군인들을 기리는 시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