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러윈 축제가 열리던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지난 2022년 10월 29일 밤 대규모 압사사고가 발생해 1백여명이 사망하고 다수가 부상을 당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구급대원들이 참사 현장 부근 임시 안치소에서 사망자를 이송하기 위해 길게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권우성
2022.10.29
- 낮 12시 2분 :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용산 대통령실 앞 시위 관리를 위해 서울경찰청으로 출근했다.
- 오후 6시 : 코로나19 거리두기 해제 이후 3년 만에 맞는 핼러윈으로, 예상대로 이태원 일대에 인파가 몰리고 있었다. 법원은 "18:00~22:00 사이 이태원역 승차인원은 1만 9996명이었고 하차인원은 4만 3571명이었다. 이날 전체 승차인원은 4만 8558명, 하차인원은 8만 1573명이었는데, 이는 전주 토요일보다 폭증한 것이었다. 전주 토요일의 승차인원은 2만 3839명, 하차인원은 1만 8322명이었다"고 했다. 서울시의 실시간 도시 데이터에 따르면, 이태원 관광특구 일대 인원은 오후 7시에 4만 4172명, 오후 8시에 5만 1529명, 오후 9시에 5만 5935명, 오후 10시에 5만 7339명이었다.
- 오후 6시 34분 : ①첫 번째 112 신고. 이태원 참사 장소인 해밀톤 호텔 골목에 "인파가 너무 많아" "압사당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신고한 시민은 "통제 좀 해 달라"고 했지만, 경찰의 인파 통제는 이뤄지지 않았다.
- 오후 7시 5분 : 송병주 용산경찰서 112상황실장은 무전을 통해 "교통순찰자, 교통경찰관들이 배치되지 않았으면, 경찰관들 한 4명 정도 해밀톤 호텔 앞쪽으로 배치해서 인파가 차도로 나오는 것 전부 다 인파들 위로, 차도 쪽 인도 쪽 인도로 올려 보내세요"라고 지시했다. 이때 이미 인도에는 사람이 가득 차 차도 쪽으로 밀려나오고 있었다는 얘기다. 송 실장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차도로 나오는 인파들을 인도 위로 올려 보내라는 지시를 하는데, 오후 9시 26분에도 무전을 통해 "교통근무자들 추가 지원돼서 이태원 파출소 맞은편 쪽에 2개 차로 확보했어요. 차도에 나와있는 인파들 지속적으로 인도 쪽으로 올리고 있습니다"고 했다.
법원은 송 실장에게 유죄를 선고하며 이같은 지시가 이태원 참사 현장 일대의 군중밀집을 가중시켰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현장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안일한 상황 판단으로 차도로 쏟아져 나오는 보행자들을 인도로 밀어 올리라는 지시를 함으로써 경사진 좁은 골목길에 밀집된 군중의 출구가 봉쇄되어 이태원 일대의 군중 밀집도를 더욱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했다. 인파가 넘쳐 차도까지 침범하기 시작했다면, 차량을 통제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안전을 확보했어야 했는데, "그릇된 지시"를 했다는 것이다.
실제 이태원 참사 2주 전인 2022년 10월 15~16일 열린 이태원 지구촌축제 때에는, 이태원 일대 4~5차선 차도를 통제해 인파가 차도 위까지 교행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로써 인파는 비좁은 인도에서 벗어나 분산될 수 있었고, 안전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 오후 7시 30분 : 용산구청 직원은 '소음 순찰 실시 특이사항 없으나, 주변 인파 많음' 이라는 문자 메시지와 함께 인파가 밀집돼 있는 사진을 구청 동료 카톡방에 올렸다. 이 시각 용산구청 당직실에서 근무하는 숙직근무자들이 민원 처리를 위해 일대를 순찰하면서 '평소에 비해 훨씬 많은 인파가 모여있어 이동이 불가능하거나 매우 곤란한 상황'을 목격했고, 해밀톤 호텔 주변에 인파가 많아 순찰하지 못 하고 돌아왔다는 용산구청 직원의 진술도 있었다. 용산구청 당직실에 숙직을 서던 용산구청 직원은 총 8명이었다.
- 오후 8시 : 이 시각 순찰을 돌던 용산구청 직원은 "불안감이 많이 느껴졌던 건 사실이지만, 이번과 같은 큰 사고가 날 줄은 몰랐다"고 했다.
- 오후 8시 9분 : ②두 번째 112 신고.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정체가 돼서, 막 넘어지고 난리가 났다", "어떻게 해주셔야 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의 조치는 없었다.
- 오후 8시 33분 : ③세 번째 112 신고.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골목을 지칭하며 "사람들이 인파가 너무 많이 몰려", "길바닥에 쓰러지고 사고 날 것 같다", "통제가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경찰의 통제는 이뤄지지 않았다.
오후 8시 33분은 용산 대통령실 앞 반정부 집회 관리를 마친 김광호 청장이 상황을 마무리하겠다는 '치하종시' 무전을 한 시각이기도 하다. 이때까지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불과 1400미터 떨어진 용산 대통령실 앞, 삼각지역 인근에선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곳에는 경찰 경비기동대 67개 부대가 배치됐다. 하지만 3년만의 '노마스크' 핼러윈 축제가 예정돼 있던 이태원 주변엔 단 하나의 경비기동대도 배치되지 않았다. 경비기동대는 혼잡 경비를 전문으로 하는 경력이다.
검찰은 김 청장의 경비기동대 배치에 업무상 과실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불특정 다수의 인파가 운집할 예정이라는 사실만으로 경찰이 구체적으로 대응하여야 할 치안의 수요의 내용이 무엇인지 사전에 분명히 특정하기 어렵다"면서 김 청장이 이태원 참사와 같은 구체적인 위험성을 예견하기는 어려웠다고 봤다.
김 청장은 집회 관리를 끝낸 뒤 오후 8시 39분경 곧바로 퇴근했다. 67개 경비기동대는 해산됐다. 이는 그날 서울경찰의 시선이 용산 대통령실 앞 집회 관리에 쏠려있었다는 점을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검찰은 김 청장이 반정부 집회가 끝난 이후라도 대통령실 앞에 몰려있던 경비 경력을 모두 해산해 버리지 않고 이태원에 재배치했다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이 역시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선에서 특별한 요청이 없었던 이상, 김 청장이 그 필요성을 인식할 수 없었다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