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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300일... 꼭 승리해서 보답하고 싶다"

[인터뷰] 고공농성 300일 한국옵티칼 해고자들 "고용승계 해야만 내려갈 것"

등록 2024.11.02 15:16수정 2024.11.0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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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구미공장 옥상에서 10개월째 농성 중인 소현숙(왼쪽)·박정혜씨.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구미공장 옥상에서 10개월째 농성 중인 소현숙(왼쪽)·박정혜씨.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고용승계를 (합의) 해야만 내려가지 저희 스스로 포기해서 내려가지는 않을 겁니다." - 박정혜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수석부지회장

"물량을 가져갔으면 직원도 고용승계 하는 게 마땅한데, 왜 그걸 하지 않고 노동자의 외침을 외면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회사는 저희랑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 소현숙 지회 조직2부장

10개월째 '옥상 투쟁'을 하고 있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이하 한국옵티칼) 해고 노동자 박정혜(39)씨와 소현숙(42)씨는 "'내일 내려갔으면 좋겠다'고 매일 생각한다"면서도 "이겨야만 내려갈 것"이라며 단호한 투쟁 의지를 밝혔다.

박씨와 소씨는 한국옵티칼에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지난 1월 8일부터 경북 구미에 위치한 한국옵티칼 공장 건물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2년 전 불에 탄 9m 높이의 그 건물에서다. 이들의 고공농성은 2일로 꼭 300일째를 맞았다. 이들은 옥상에서 300일 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왜 이곳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을까. <소리의숲>은 고공농성 300일째를 하루 앞둔 지난 1일 두 사람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한국옵티칼은 일본계 다국적 기업 니토덴코의 자회사로, 엘시디(LCD)용 편광필름을 생산해 엘지(LG)디스플레이에 납품해 왔다. 회사는 2003년 구미4국가산단 외국인투자전용단지에 입주해 토지 무상임대‧각종 세제지원 혜택 등을 받아왔는데, 2022년 10월 공장에 불이 나자 한 달 뒤 공장 청산을 통보했다.

물량은 모두 니토덴코의 또 다른 자회사 한국니토옵티칼 평택공장으로 옮겨졌지만, 노동자 고용승계는 이뤄지지 않았다. 200명가량의 노동자 대부분은 희망퇴직 했고, 이를 거부한 17명은 정리해고됐다. 해고자 가운데 7명은 평택공장으로의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2년째 투쟁하고 있다.

"투쟁,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몰랐어"


"아주 짧게 있지는 않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길게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소씨는 전화 인터뷰에서 "앞으로도 옥상에 더 있을 것 같아서 (걱정)"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웃으며 말했지만 목소리엔 걱정이 배어 있었다. 소씨의 말처럼 지난겨울 시작한 옥상 투쟁은 봄과 여름을 지나 어느새 가을로 접어들고 있다. 사계절을 옥상에서 보내고 있는 셈이다.


옥상에서의 지난 10개월은 두 사람에게 쉽지 않았다. 특히 지난여름엔 역대급 폭염이 고공농성장을 달궜다. 두 사람은 뜨거운 태양 아래 텐트 그늘과 선풍기‧얼린 생수병에 의지해 더위를 달랬는데, 얼음은 안고 있으면 2~3시간 만에 다 녹았다. "진짜 타 죽는 게 뭔지 알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수화기 너머로 소씨가 당시 상황을 전했다. 옥상엔 2인용 텐트 1동이 설치돼 있다.

자던 중 폭우로 텐트가 무너진 적도 있었다. 두 사람은 "조금만 더 늦게 알아차렸으면 크게 다쳤을 것"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소씨는 그날 이후 아직까지도 비가 내리거나 바람이 불면 잠을 잘 못 잔다.

씻는 것도 녹록지 않다. 옥상엔 전기는 들어 오지만 수도 사용은 안 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연대자들이 밑에서 도르레를 통해 올려보내는 생수로 몸을 씻고 있다. 소씨는 "생수가 아깝긴 한데 너무 안 씻으면 청결에도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 정도로만 물을 쓰고 있다"며 "그래서 몸에서 약간 쉰내가 나기도 한다"고 헛웃음을 쳤다.

체력도 많이 약해진 상태다. 이들은 "마음은 매일매일 힘들다. 옥상에서 300일을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여기서는 할 일도 많이 없다. 진짜 하루를 버티는 수준"이라는 말도 전했다. 식사는 점심과 저녁, 하루 두 끼 연대자들이 도르레로 올려 주는 음식으로 해결한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 노동자 박정혜씨가 지난 6월 구미공장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하던 중 얼음물을 안고 더위를 식히고 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 노동자 박정혜씨가 지난 6월 구미공장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하던 중 얼음물을 안고 더위를 식히고 있다.금속노조

"가족이라던 회사… 가족이라면 불났을 때 혼자만 도망 안 가"

그럼에도 두 사람이 고공농성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소씨는 "바보같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런 식으로 쫓겨나고 싶지는 않았다"는 이유를 밝혔다.

"제가 10년 넘게 일해온 회사에서 불이 났는데, 회사에선 그냥 '회사 문을 닫기로 했다. 너네는 위로금 받고 나가라' 그러더라고요. 그게 너무 화가 났어요. '최선을 다해 노력해 볼 테니 회사가 문 닫을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으면 이런 선택은 안 했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회사에선 저희를 끝까지 기만한 거죠."

박씨도 공장 화재 이후 해고자들과 공장 점거 농성을 했는데 회사 압력이 심해져 옥상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을 전했다.

"고용승계가 가능하다고 생각해 투쟁을 시작했는데 회사는 우리를 엄청 나쁜 사람으로 내모는 거예요. '너희들이 감히 이런 투쟁을 해?' 이런 식으로요. (농성장에) 단전‧단수를 해버리고 굴삭기를 끌고 와서 위협하고, 해고자들 전셋집 가압류도 걸었어요.

우리 요구사항은 하나도 들어줄 생각도 안 하고요. 거기다 구미시는 공장 철거 승인까지 한다고 해버리는 거예요.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쫓겨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공장을 지켜야만 사측과 이야기를 하고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이곳에 올라오게 됐습니다."

하지만 300일의 고공농성에도 사측과의 협의는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두 사람은 "회사는 오히려 (싸움으로 돈이 얼마나 들든) 고용승계 사례를 남기면 안 된다는 입장인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올해 안에는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회사는 저희를 소중한 인적 자원이라고, 하나의 가족이라고 했는데 진짜 가족이라면 이렇게 불이 났을 때 혼자만 도망가지 않겠죠. 진짜 가족으로서의 책임을 지어 줬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회사가 망하길 바라고 이렇게 투쟁하는 건 아니거든요."

두 사람은 "이겨야지 내려갈 수 있다"는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이들은 "공장에 불나고 투쟁한 지가 2년이 넘었다"며 "이 2년이 아깝지 않게 진짜 좋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힘닿는 데까지 (투쟁을)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다음은 박정혜씨, 소현숙씨와의 일문일답이다.

"어떻게든 교섭 테이블 마련해 이야기 나눴으면"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 박정혜·소현숙씨가 고공농성하고 있는 옥상 현장.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 박정혜·소현숙씨가 고공농성하고 있는 옥상 현장.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 건강은 어떤가.

"저희가 크게 아픈 곳은 없다. 하지만 300일 동안 옥상에 있다 보니 체력적으로 몸이 많이 약해져 있다. 옥상에서 걷기 운동을 하며 건강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 하루 일과는 어떤가.

"아침 7시나 8시쯤 일어나서 세안을 한 뒤 잠시 개인적인 일을 한다. 그러다 연대자들이 건물 밑으로 방문하면 인사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옥상에 있다 보니, 이야기를 하다 보면 연대자들의 고개가 아프기 때문에 오랫동안 이야기하진 못한다.(웃음) 여기선 솔직히 할 일이 없다. 책이나 뉴스를 보면서 하루를 버틴다. 박정혜는 연대하러 오는 분들에게 드린다고 수세미를 뜨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 자신에게 한국옵티칼은 어떤 의미인가.

"이곳에서 16년을 검사원 등으로 일했다. 회사가 어려울 때부터 매출 1조 원 날 때까지 함께 했다. 가능하면 여기서 정년퇴직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여기서 모든 걸 다 바쳐서 일했는데 불이 났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사람을 버린다는 게 좀 화가 났다."(소씨)

"저도 이곳에서 12년 정도 검사원 등으로 일했다. 조장이라는 직책까지 달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이 회사가 저에게 준 것도 많다고 생각한다. 저는 구미 사람이 아니고 타지 사람인데 여기 와서 구미에 자리를 잡기도 했기 때문에 저한테는 회사가 정말 고마운 존재였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회사가 원하는 대로 일했는데 이렇게 돼서 회사에 배신감이 크다."(박씨)

- 옥상에서 내려오면 뭐가 제일 하고 싶나.

"일단 병원부터 가서 여러 검진을 좀 받아봐야 할 것 같다."(소씨)

"저는 그냥 집에 가서 제 침대에 눕고 싶다."(박씨)

- 2일 300일을 맞아 전국에서 노동자‧시민 1000여 명이 연대버스를 타고 와 고공농성장 앞에 집결한다. 시민사회에 할 말이 있다면.

"저희가 자본의 횡포에 의해 고통을 많이 받을 때 연대자 분들이 아니었으면 지금까지 투쟁을 이어오기가 진짜 힘들었을 것이다. 함께 연대해 주셔서 감사하고 고용승계를 쟁취할 때까지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다. 꼭 승리해서 연대자 분들이 연대해 주신 것에 꼭 보답하고 싶다."

- 사측에 하고 싶은 말은.

"저희랑 몇십 년 같이 일했던 분이 오히려 공장 청산 일을 맡아서 우리를 쫓아내고 있어서 더 화가 난다. 우리를 평택공장에 보낼 수 있게 도와줘야 되는 다리가 되셔야 할 분이 오히려 우리를 쫓아내는 다리가 되신 거다. 노동자가 이렇게 정말 열심히 일했던 사람들인 건 그분들이 더 잘 알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저희랑 교섭 테이블을 마련해서 이야기를 좀 나눴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소리의숲'(https://forv.co.kr)에도 실립니다. ‘소리의숲’은 2024년 9월 문을 연 1인 대안언론입니다. 소리의숲 홈페이지에도 들어오셔서 많이 봐 주시면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제보와 각종 제휴 문의도 환영합니다. 문의는 joie@forv.co.kr로 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 #300일 #고공농성 #해고자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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