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가족과의 간담회
416해외연대 웹자보
아빠를 닮아서 손재주가 좋고 자상한 시찬이
20대 중반이 된 시찬이는 어떤 모습일까? 시찬이가 정장을 차려 입은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엄마의 바람으로 정장을 입은 시찬이를 포토샵 작업으로 만들어봤다. 집에도 시찬이랑 같은 크기의 등신대를 만들어 놓고 시찬이와 대화를 하고 있다. 늘 달라붙고 껴안는 걸 좋아했던 시찬이는 사진 찍을 때도 아빠랑 딱 붙거나 껴안거나 했다.
이제는 아빠를 업을 정도로 자라서 든든했던 시찬이. 가족들이 함께 나들이를 가서 찍은 사진에는 누나와 시찬이가 엄마에게 뽀뽀를 하며 애교를 떠는 모습이 배경의 노랗게 물든 은행잎과 어울려 너무 행복하고 아름답다. 세월호 CCTV에서 아빠가 찾아낸 시찬이의 마지막 모습. 친구들과 함께 있고 매점에 가는 사진. 가슴이 시리고, 아프다.
12월 겨울에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가 '손이 시려워 꽁, 발이 시려워 꽁'을
불러서 시찬이는 '꽁꽁군'이 되었다. 이것저것 만드는 걸 곧잘 하는 손재주꾼 시찬이. 아마도 아빠를 닮아서 그런 것 같다. 종이접기를 좋아하는 손재주꾼.
버킷리스트가 아주 많았다. 축하해 주는 걸 좋아해서 케이크로 축하해 주고 싶었는지, 케이크도 버킷리스트에 들어 있었는데, 미리 보지 못하고 나중에 봐서 챙겨주지 못한 것이 많이 후회가 된다. '여자 친구'는 있었을까. 평소에 시찬이는 결혼을 빨리 하고 싶어 했는데, 진도체육관에 있을 때 여자 친구가 찾아와서 시찬이가 자기 얘기를 많이 들어줬다고 전해 주었다. 여자 친구한테는 끔찍하게 잘해 주었을 거다. 이것도 아빠 닮아서?
시찬 아빠는 매월 한 번씩 생명안전공원 부지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예배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아이들이 그곳으로 돌아오기 바라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해오고 있다.
"엄마 나 장가 보내줘" 꿈에 나타난 동영이
동영이는 어렸을 때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삼성에 들어가고 싶어 했는데, 고등학교 들어가서는 "엄마, 삼성 들어가기는 좀 힘들 것 같아요"라며 안정적인 직장으로는 공무원이 최고니까 공무원이 되겠다고 했다.
동영 엄마는 사진을 올리지 못 했는데, 사진만 생각하면 참 속상하다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분식집을 시작했는데, 엄마가 바빠서 여행도 잘 다니지 못 해서 사진도 많이 찍지 못 했다. 동영이는 걷는 걸 좋아했는데 버스 타고 다니라고 하니까 교통비 아껴서 나중에 맛있는 거 사 먹겠다고 하는 알뜰쟁이였다.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에는 꽃 선물도 하고, 생일이나 어버이날도 잊지 않고 챙기는, 세심하면서 이름처럼 동글동글한 성격의 동영이. 동영 엄마는 아이가 없으니까 그런 날이 되면 더 생각이 난다고 했다.
어느 날 동영이가 꿈에 나타나 "엄마, 나 장가 보내줘"라고 했다고. 얼마나 억울했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2014년 9월에 꾼 꿈인데, 지금도 너무 선명한 꿈을 잊을 수가 없다. 교복을 입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뚜렷하게 보였는데, 지금도 너무 선명하게 남아있다. 엄마한테 한 것처럼, 결혼했다면 아주 자상했을 텐데.
참사 초기에는 밖에서 활동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공방에는 '나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나가는 것 같다. 공방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는데, 요즘에는 유화를 그리고 있다. 애니메이션 잘 그린 동영이, 음악 피아노에도 재능이 있었다.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는데, 망치더라도 물감을 엎어서 고칠 수 있는 유화에 흥미가 생겼다.
동영이는 수학여행 가기 전에 인터넷에서 옷을 주문했는데, 참사 이후에 도착해서 입지도 못 했다. 잘해 준 것보다 못해 준 게 기억난다.
위로하려고 갔는데, 오히려 위로받았다
올 7월에 애진이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소설 <루카스-가장 그리운 이름이거나>는 애진이가 언론과 한 인터뷰가 기반이 됐다. 모든 인세는 가족협의회에 기부하게 되어 있다. 애진이 이야기는 소설과 다큐멘터리 <드라이브 97>로 만나보면 좋겠다.
애진 엄마는 노란리본과 416기억상점에서 활동하고 있다. 기억상점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데, 처음에는 긴 싸움을 위한 재정사업의 일환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김 판매로 시작했는데 많은 분이 찾아와서 물건도 구매해 주시고, 여러 의견도 주셔서 정말 고맙다.
생존자 가족으로 함께 하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도 드는데, 애진 아빠는 참사 이전부터 활동가였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일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희생자 가족들이 애진이 부모를 보면 애진이가 떠오르고, 애진이를 떠올리면 떠나간 아이들이 생각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괜찮다'"고 손을 잡아 주며 말을 건네 주는 게 너무 고마웠단다.
위로를 해 주려고 갔는데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다른 생존 가족들도 가협에서 활동하는 분도 있고, 회비를 내거나 하는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다. 생존 학생들도 힘들어하지만, 각자 다양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아플 거라고 걱정만 하지 말고 응원을 보내 줬으면 좋겠다는 게 애진 엄마의 바람이다.
"우리는 이제 갇혀 있지 않아요"
모임에 앞서 있었던 참가 단체 소개에서는, 모두가 한 마음으로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가족들과 함께 할 것을 다짐했다. 이날 모임에서 시찬 아빠가 보여 준 사진이 있다. 2014년 5월, 가족들이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에 있을 때 뉴욕에서 아이들의 영정 사진을 들고 집회를 하는 사진이다.
시찬 아빠는 이 사진을 보면서 "우리는 이제 갇혀 있지 않다. 절망하지 말고 아이들 찾고, 다시 시작해서 나가자"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비록 우리는 떨어져 있지만, 우리의 작은 행동들이 가족들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준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앞으로도 아이들이 살아남은 우리들에게 남겨 준 숙제를 마칠 때까지 가족들과 함께 하겠다는 마음을 새롭게 하는 시간이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일본 나고야의 장애인 인형극단 '종이풍선(紙風船)'에서 일하고 있음
공유하기
"절망 말고 아이들 찾고, 다시 시작해 나가자" 세월호 가족들을 움직인 사진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