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정보참모 해군 중령 김두찬이 제주 성산포 경찰서장 문형순에게 보낸 ‘예비구속자 총살 집행 의뢰의 건’ 문서. 1950년 8월 30일자로 보낸 문서에는 발송인 김두찬 이름 아래 직인이 찍혀 있다. 이 명령을 받은 문형순 서장은 오른쪽 위에 ‘부당(不當)하므로 불이행(不履行)’과 함께 자신의 이름 문형순(文亨淳)까지 적고(붉은색 사각형) 문서를 돌려보냈다.
임재근
하지만 문형순 서장의 결단은 '원칙'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군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항명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항명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그 명령이 '정당'해야만 합니다. 문형순 서장은 군인과 경찰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본연의 의무라는 생각에 아무리 전시라 하더라도 무고한 국민을 죽이라는 명령은 '부당한 명령'이라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문형순 서장이 이와 같이 원칙적이고 용기 있는 행동에 나설 수 있었던 이유는 과거 그의 삶을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1897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난 문형순 서장은 일제강점기 만주일대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의용군, 고려혁명군, 국민부, 광복군 등에서 항일무장투쟁에 나섰습니다.
해방 후 1947년 5월 제주경찰감찰청 기동경비대장에 임용되면서 경찰에 투신했습니다. 해방 후 재등용 된 친일 경찰들이 다수를 차지했던 당시 경찰 상황을 생각하면 문형순 서장의 경찰 투신은 특별해보입니다. 소수이긴 하지만 독립운동에 나선 이들이 경찰에 투신해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고 국민의 목숨을 살려내 경찰의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4.3 때 '주민 학살' 문서 발송한 독립운동가
문형순 서장이 2018년 '올해의 경찰 영웅'으로 선정되면서 부당한 명령에 항거한 문형순 서장의 삶과 행동이 재조명됐습니다. 그렇다면 부당한 명령을 내린 사람은 누구였고, 그는 어떻게 됐까요?
당시 '예비 구속자 총살 집행 의뢰의 건'을 발송한 이는 해병대 정보참모 해군중령 김두찬이었습니다. 문서의 내용은 제주도에 계엄령 실시 이후 현재까지 성산포경찰서에 예비구속 중인 D급 및 C급에서 총살 미집행자에 대해 경찰에서 총살 집행 후 그 결과를 9월 6일까지 육군본부 정보국 제주지구 CIC 대장에게 보고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주민들을 학살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김두찬 중령은 특이한 군 경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해방 후 군사영어학교 시절 통위부 참위(소위)로 임관했으나 부임 받은 경리직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만뒀습니다. 육군사관학교 1기로 입교했지만, 과정 이수 도중 해군으로 전입했습니다.
김두찬은 한국전쟁 발발 시 묵호기지사령관으로 있다가 철수하는 과정에서 해병대로 전입해 제주도로 왔습니다. 해병대가 제주도에 주둔하기 시작한 것은 1949년 12월 28일이었습니다. 4.3과 관련해 토벌 작전을 펴기 위해 기존 부대와 교대를 한 것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4.3 진압뿐 아니라 예비검속에 이은 피 비린내 나는 학살이 이어졌습니다. 김두찬은 1950년 7월 30일부로 제주도에 주둔하고 있던 해병대사령부 정보참모에 임명됐고, 한 달 후 '예비 구속자 총살 집행 의뢰의 건'의 명령을 경찰에 하달했던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