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닿는 곳마다, 제주가 있었다

제주 올레길 20코스를 걸으며

등록 2024.11.17 16:43수정 2024.11.17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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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비바람과 함께한 여행 첫 날

제주를 방문할 때마다 비를 만난다. 11월 1일, 제주는 호우주의보와 강풍 특보가 발령됐다. 하루 동안 200mm의 비가 내렸고, 11월 역대 최다 강수량이라고 했다. 제주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마주한 비바람은 여행의 시작을 쉽지 않게 만들었다. 우산은 뒤집힐 듯 했고, 잠깐 사이 캐리어와 옷은 젖어 들었다. 렌터카 문을 여는 동시에 시트의 절반이 젖어 버릴 정도였다. 마치 비와 동승한 기분이었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와이퍼는 분주히 움직이고, 차창 너머로는 잿빛 바다가 보였다. 바다는 정말 다양한 색을 품고 있다. 햇빛을 받으면 선명한 푸른 빛으로 반짝이고, 비구름 아래에서는 잿빛 어둠을 머금는다. 볼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제주의 바다, 그 색채의 변화가 참 신비롭다.

폭우가 지나간 제주의 풍경

비가 지나간 다음날(11월 2일) 아침, 제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맑아진 하늘 아래 공기가 한층 투명해졌다. 구름이 걷히고 환한 얼굴을 드러낸 제주의 모습은 감탄을 자아낸다. 서늘하면서도 상쾌한 바람이 여행자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우리는 제주 올레길 20코스를 걷기로 했다. 김녕 서포구에서 시작해 제주 해녀 박물관까지 이어지는 이곳은 바다, 농가와 들길, 돌담, 당근 밭이 어우러져 있어 제주도의 자연과 농촌 풍경을 모두 만날 수 있는 그림 같은 길이다. 푸르름과 초록이 선사하는 풍경 속을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음 한구석의 시름도 사라지는 듯하다.

김녕 서포구 제주 올레길 20코스 시작을 알리는 안내 판에는 주의 사항이 상세히 적혀 있다. 옆에는 스템프를 찍는 곳이 마련되어 있다.
김녕 서포구제주 올레길 20코스 시작을 알리는 안내 판에는 주의 사항이 상세히 적혀 있다. 옆에는 스템프를 찍는 곳이 마련되어 있다.강선미

올레길 20코스는 김녕 서포구에서 시작한다. 바로 앞에 있는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다. 차를 이용하는 여행객은 이곳에 주차를 하고 다시 돌아올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된다.


김녕 바다 작은 마을을 지나는 동안 바다가 함께 한다.
김녕 바다작은 마을을 지나는 동안 바다가 함께 한다.강선미

김녕리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에 속하는 마을이다.

2007년 거문오름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를 따라 선흘리, 덕천리, 김녕리, 월정리, 행원리, 성산리 등 7개의 마을이 세계자연유산으로 구성됐다.


세계자연유산마을 김녕리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에 속하는 마을이다.
세계자연유산마을김녕리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에 속하는 마을이다.강선미
바닷길 바다를 가로지르는 듯한 길이 나있다.
바닷길바다를 가로지르는 듯한 길이 나있다.강선미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와 맑은 하늘 아래, 바다로 이어지는 듯한 길이 나 있다.

신비롭고 매력적이다. 마치 바다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자연과 내가 연결된 느낌이 든다. 여행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이곳에서 멋진 추억을 담아보는 것도 좋다.

바다에서 이어진 길을 올라오니 월정리 들판이 눈앞에 펼쳐진다. 또 다른 제주를 만나는 기분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풍력 발전기의 날개는 바람에 맞춰 돌아가며 이곳이 바람의 섬임을 실감케 했다.

월정리 들판 도로를 따라 펼쳐진 풍경은 또 다른 제주의 매력을 보여준다.
월정리 들판도로를 따라 펼쳐진 풍경은 또 다른 제주의 매력을 보여준다.강선미
월정리 해변 낮 기온 23도까지 올라간 제주에서는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월정리 해변낮 기온 23도까지 올라간 제주에서는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강선미

잔잔한 파도가 아름다운 해변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저 멀리 서핑 보드에 올라 파도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평화롭고 여유로워 보인다. 따스한 햇살 아래, 바다와 사람의 조화가 그림처럼 느껴진다.

제주밭담축제 이번 축제에는 가수 이솔로몬의 무대가 펼쳐졌다. 처음 알게 된 가수였는데 차분한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제주밭담축제이번 축제에는 가수 이솔로몬의 무대가 펼쳐졌다. 처음 알게 된 가수였는데 차분한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강선미

11월 2일과 3일, 월정리에 있는 제주밭담테마공원에서 축제가 열렸다. 축제 현장에는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불턱 체험을 비롯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었다. 길을 걷는 동안 잠시 들러 축제를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우정의 길 나란히 길을 걷는 두 친구의 모습을 조용히 담고 있는 한 친구.
우정의 길나란히 길을 걷는 두 친구의 모습을 조용히 담고 있는 한 친구.강선미

돌담길 사이를 걷다 보면 하늘로 닿을 것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오랜 세월을 담은 돌담은 고즈넉한 정취를 풍기고,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초록의 밭과 풍력 발전기의 모습까지 조화롭게 느껴졌다. 길을 걷는 두 친구의 모습은 이 순간을 더 특별하게 만든다.

카페 카페에서 바라 본 풍경이 동화 같이 아름답다.
카페카페에서 바라 본 풍경이 동화 같이 아름답다.강선미

주변 환경에 흠뻑 빠져 걷다 보면, 어느새 살짝 지치는 순간이 찾아온다.

올레길에는 그런 여행객을 위한 카페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창가에 앉아 따뜻한 라떼 한 잔을 주문했다. 커피의 향은 피로를 씻어내듯 부드럽게 스며들었고, 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휴식' 그 자체였다.

평대리에서 만난 말 왠지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는 말이었다. 당근을 먹는 건지 밟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혼자라서 외로운 걸까?
평대리에서 만난 말왠지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는 말이었다. 당근을 먹는 건지 밟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혼자라서 외로운 걸까?강선미
길고양이 나른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고양이는 기꺼이 사진 모델이 되어주었다.
길고양이나른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고양이는 기꺼이 사진 모델이 되어주었다.강선미

길을 걷다 보면 길가에 앉아 여유롭게 햇살을 즐기는 고양이나 말을 만날 수 있다. 자연과 어우러진 이런 동물들의 모습은 걷는 즐거움을 한층 더해준다. 그들은 마치 제주 올레길의 작은 주인공들처럼 길 위의 풍경을 완성시킨다.

세화 해변 세화 해변 인근에 있는 해녀박물관 부터 숨비소리길이 시작된다.
세화 해변세화 해변 인근에 있는 해녀박물관 부터 숨비소리길이 시작된다.강선미

제주 올레길 20코스를 마무리하며

세화 해수욕장 인근에는 세화 민속 오일 시장과 제주 해녀 박물관이 있다. 오일장은 매월 5일, 10일에 열린다. 이제 20코스의 여정이 마무리됐다.

제주 올레길은 총 27코스, 437km로 이뤄져 있으며 추자도와 우도 같은 부속 섬도 포함돼 있다. 2007년 1코스가 처음 만들어진 이후, 현재는 섬 전체를 아우르는 걷기 여행의 명소가 돼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완주자는 제주 올레 여행자 센터에서 완주 증서와 메달을 받을 수 있으며, 제주올레 누리집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릴 수 있다.

제주 올레길 20코스는 바다와 마을, 돌담과 밭 길이 어우러진 제주도의 축소판 같았다. 17.6km에 걸친 길 위에서 제주의 자연과 문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코스는 난이도 중급으로 5~6시간이 소요되며, 걷는 동안 잊고 있던 여유를 되찾을 수 있는 특별한 길이었다.

제주는 여행자에게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며 다음 여행을 기대하게 만든다. 11월 날씨라고 하기엔 낮의 햇빛은 뜨거움을 느끼게 했고, 초록의 당근 밭과 청명한 하늘은 계절마저 잊게 했다.

가끔 관광지로서의 부정적인 기사도 접하게 되지만, 그건 어디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부의 모습일 뿐이다. 여행하는 동안 친절한 제주 도민을 만나고,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더구나, 35년 지기 친구들과 함께한 제주 여행은 내 존재의 가치를 느끼게 해 준 특별한 시간이었다. 일상의 피로에서 벗어나 제주 여행을 계획해 보는 것도 좋은 휴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올레길을 걸으며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그려보는 시간은 작은 희망을 품게 해줄지도 모른다. 더불어, 함께 걸어주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그 자체로 큰 힘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쉼이 필요한 분들께 제주 올레길을 추천합니다.
#제주여행 #올레길20코스 #제주밭담공원 #제주해변 #우정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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