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할 수 있는 텐투텐(ten to ten) 추천 부탁드려요."
맘카페 같은 곳에서 이런 질문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텐투텐'은 방학이나 주말에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듣는 학원 수업을 뜻한다. 입시열기가 강한 지역에선 유치원에 들어가면 학원을 등록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텐투텐을 시작한다고들 한다.
한국 사회에서 부모는 자녀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사교육에 대한 금전적 부담을 지기 마련이다. 대학 진학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 사회에서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어 보인다. 한편으로 자녀가 먼저 학원을 보내달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 친구 대부분이 학원에 가 있기에 어울리려면 어쩔 수 없다. 어떤 부모는 입시경쟁에서 벗어나고자 이민을 고려하기도 한다.
이런 이들을 위한 안내서가 있다. 책 <독일교육, 성숙한 시민을 기르다>(2022)가 바로 그것. 책에는 저자 박경란이 독일에서 두 딸을 기른 15년의 세월이 담겨 있다. 작가는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주고, 충분히 기다려주는' 독일 교육의 가치를 말한다. 불편함도 목격했지만 '다름'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그들의 방식을 내보인다.
지난 4월 25일 저자 박경란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는 '성적을 위한 수업'이 아닌 '배움을 위한 수업'을 하는 독일 공교육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 해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무엇이든 질문하라, 멍청한 질문은 없다'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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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숫자. ⓒ pexels
- "독일은 선행학습이 금지돼 있다. 느린 아이에게도 학교는 다그치지 않고 협업을 중시하며 서로 이끌 수 있도록 돕는다"는 내용이 눈에 띄었습니다.
"독일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 때 1~10까지의 숫자를, 2학년 후반에 가서야 책을 더듬더듬 읽는 수준으로 가르칩니다. 한국에서는 (아이들이) 선행학습을 했기에 조바심이 났죠. 더군다나 아이들은 한국인 이민자라 독일어가 미숙해 차별받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독일에는) 그럴싸한 학원이란 게 없어 집에서 숫자를 먼저 알려줬지만, 이를 대번에 알아본 선생님이 선행학습을 하지 말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어요. '학교는 아이들이 천천히 놀이하면서 재밌게 배우는 곳입니다'라면서요. 조급함을 내려두니,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토론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조성하는 독일식 교육을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게 됐죠."
- 독일은 주입식 교육과 토론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교육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나요?
"'교육'은 선생님과 학교라는 도구를 통해 지식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주입식 교육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할 수 있어야 해요.
학교는 계속해서 질문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합니다. '무엇이든지 질문해라. 멍청한 질문은 없다'가 급훈인 곳도 있어요. 몰라서 물어보면 알려주고, 다른 생각을 표현하더라도 차이를 인정해요. 독일에서 아이들은 묻고 답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성장합니다."
- 토론을 중시하는 독일 문화답게, 자기 생각을 쓰는 시험이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아 채점자의 재량도 들어갈 텐데, 학교에서는 객관성을 어떻게 유지하나요? 한국 시험은 정답이 명확할 뿐더러, 복수정답과 같은 사안은 법정다툼까지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객관성을 유지하는 장치가 따로 있다기보다는 선생님을 신뢰하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깔려 있습니다. 독일 시험 제도는 구술·필기·프레젠테이션·협업능력 등을 종합해서 평가합니다. 대부분 선생님의 재량이 들어가죠. 필기시험 역시 주관식이라 논리성을 따집니다. 정답이 아니어도 타당하게 서술했다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죠.
평가에 이의를 제기하려는 학부모는 선생님을 개인적으로 찾아가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학기마다 선생님을 만나는 시간이 있는데, 보통 이때 성적에 대해 반론을 합니다. 이 자리에서 선생님은 납득할 때까지 계속해서 설명합니다.
저만하더라도 아이의 총합 점수가 낮아 개인 면담에서 질문한 적이 있었는데, 아이가 '질문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죠. 다음 학기 때 노력하면 좋은 점수를 주겠다면서 저를 어르고 달래더군요(웃음). 실제로 다음 학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더니 더 나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이의 제기에 승복할 수 없는 경우 청소년 관청에 신고할 수 있지만 그런 경우는 정말 소수입니다. 많은 부모가 아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변화할지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독일 사회 자체가 성적에 너무 연연하지 않습니다."
'공부'만이 답인 한국, '비상구'가 많은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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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란 작가. ⓒ 박경란 제공
- 교육의 지향점이 다를 뿐, 자녀 교육에 열을 올리는 건 전 세계적 현상일 텐데요. 모범답안이 없는 시험에서 성적에 관심이 많은 독일 부모는 자녀를 어떤 식으로 교육하나요?
"우선 독일 부모는 자녀 성적에 대한 욕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10학년(중3) 때까지 부모가 학교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데, 성적에 관심이 많은 부모는 이를 적극 활용합니다. 학교대표·학급대표 각 2명씩 총 4명을 뽑는 학부모 대표에 당선하려 하죠. 선생님과 많이 소통하는 만큼 학급대표 자녀의 성적은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열의가 높은 부모는 자녀와 공부하기도 합니다. 가령 라틴어 특화 학교에 다니고 있다면, 프레젠테이션과 같은 과제를 함께 준비해요. 도와주지 말라고 당부하는 선생님이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학술적으로 공부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의 차이는 있습니다. 박사 학위를 취득한 사람은 대문 앞에 '독터'라는 명판을 달기도 하죠. 학력을 존중하고, 공부한 사람을 우대합니다. 그럼에도 과열되지 않는 이유는 공부가 아니더라도 직업 교육을 받는 등 '비상구'가 많기 때문이에요. 일하다 대학에 가는 경우도 빈번합니다."
- 한국에서는 여전히 대학 진학이 기본값입니다. '뒤처졌다'라는 인식을 피하고자 N수를 거듭하기도 하죠. 이와 달리 독일에서는 대부분 졸업 후 1년 정도 여행을 떠나거나 직업 현장에서 경험을 쌓는다고 하셨는데, 독일 학생들은 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나요?
"곧바로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은 6명 중 두세 명에 그칠 정도로 흔치 않습니다. 한국의 수능처럼 독일에서도 '아비투어'를 봅니다. 차이가 있다면 재수 개념이 없어 이 성적은 평생 가죠. 결과가 변하지 않기에 나이 들어서도 그때의 점수로 대학에 지원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스스로에게 주어진 점수이고, 바꿀 수 없으니 조급해하지 않습니다. 사회 경험을 중요시하는 분위기도 한몫하죠."
느리게 가는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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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독일 교육, 성숙한 시민을 기르다> 표지.
ⓒ 정한책방
- 독일 교육의 가장 큰 매력은 뭔가요?
"'느리게 가는 것'이요. 독일에서 사는 게 행복하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곧바로 행복하다고 답하더군요. 기다려 주는 사회이기에 부모는 사교육 관련 재정 비용에 대한 부담이 적고, 자녀는 학업 부담감을 덜 수 있죠.
학교에서는 말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보지 않습니다. 수업 중 말이 안 되는 얘기를 해도 제지하지 않고 일단 끝까지 들어주죠. 성적보다는 토론과 협력을 강조하는 학습 시스템에서, 다른 의견에도 당황하지 않고 조리 있게 설득할 수 있는 근육을 키웁니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일은 집에 초대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호하죠. 자연스레 아이와 어른이 대화하는 문화가 형성됩니다. '어른이 말하는 데 끼어드는 거 아니야'와 같은 문화가 아예 없습니다. 마냥 어리게 보지 않고 한 인격체로서 존중합니다."
-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사회인 거군요.
"저는 종종 이런 말을 합니다. '아이들에게 슈퍼 거북이 되라고 주문하지 말고 거북은 거북, 토끼는 토끼로 본성을 유지하되 그 한계 속에서 행복할 수 있는 행복 권리권을 아이들에게 보장해야 한다'고요. 성적만 생각하며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보다, 거북이로 태어났다면, 토끼가 부러워 곁눈질하지 않고 스스로를 인정하며 사는 게 행복하지 않을까요? 자기만의 속도로 갈 때 비로소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일 교육, 성숙한 시민을 기르다 - 현지에서 바라본 독일 공교육의 가치와 이상
박경란 (지은이),
정한책방,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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