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야스 파소 도블레달리아꽃
정호갑
향기가 없어도 좋아라
달리아 꽃들이 시간 차이를 두고 꽃을 피우기 시작하니 그야말로 감동, 감탄의 연속이다. 색깔, 모양, 크기를 저마다 달리하면서 피워낸다. 이렇게 신비로울 수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장마가 시작되니 걱정이 많다. 지지대를 세우고 바람에 흔들릴 수 있는 줄기를 하나하나 묶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었다면, 아내는 달리아를 살피러 나간다. 넘어진 달리아를 세우고, 가지와 줄기를 지지대에 연결하여 안전하게 묶어준다.
집순이 삶을 살았던 아내가 눈을 뜨면 바로 정원으로 나가는 모습을, 그렇게 흐뭇해하는 표정을 짓는 것을 지금까지 거의 본 적이 없다. 나를 보고 그런 표정을, 나의 상태를, 그렇게 열심히 보면 좋겠다며 실없는 농담도 한다. 나는 30여 년 동안 아내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였는데 달리아가 하고 있다.
나탈, 디바, 라일라 사바나로즈, 라일락 타임, 머틀폴리, 비스트로, 실버이어즈, 에든버러, 옥상달빛, 옵틱 일루전, 와인 아이드질, 진세, 칙어디, 파이드 업, 카바나 바나나, 크레이지 러브, 파인랜드 프린세스, 프레야스 파소 도블레, 하베스트 문라이트. 지금까지 우리 정원에 핀 달리아꽃 가운데 이름을 안 것이다. 아직 꽃이 피지 않은 것도 있고, 이름을 찾지 못한 것도 있다.
달리아꽃은 꽃이라면 있어야 할 향기가 없다. 색깔과 모양은 감탄을 자아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으나 향기가 없는 것이 아쉬울 수 있다. 그래서 더 좋다. 향기가 좋은 라일락꽃이 우리 정원에 많다. 향기는 이들이 메워 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하나쯤 모자란 것이 좋다.
에이아이(AI)가 지배하는 세상, 규격화되고 정형화된 것보다는 조금 모자라고, 어떨 때는 조금 벗어난 것에 더 애정이 간다. 사람도 그렇다. 완벽한 사람 곁에 가면 내가 설 자리가 없다. 그저 부러워할 뿐이다. 그 부러움에 주눅이 든다. 모자란 사람끼리 서로 모자란 부분을 메워주며 사는 삶이 더 좋다. 그래서 내가 시골살이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