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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만들어진 내 이야기... 그걸 본 친정 엄마가 한 말

영화 <그녀에게> 원작자가 드리는 말씀... "추석 연휴 기간, 105분이면 됩니다"

등록 2024.09.06 06:59수정 2024.09.06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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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1일 발달장애아 엄마의 10년 간의 여정을 다룬 영화 <그녀에게>가 전국에서 개봉합니다. 이상철 감독이 연출을 맡고 김재화 배우가 주인공인 '상연'역을 맡아 밀도 높은 감정 연기를 선보였는데요.

저는 영화의 원작인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의 저자, 류승연이라고 합니다. 올해 중학교 3학년이 된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엄마입니다.


기존에도 많은 영화들이 원작 도서를 기반으로 만들어지곤 했어요. 그런데 이 영화는 조금 특이합니다. 원작 도서가 '소설'이 아닌 '에세이'라는 점 때문이죠. 실화 바탕의 영화입니다. 물론 실화를 바탕으로 했을 뿐 다큐가 아니기 때문에 허구의 이야기가 더해졌습니다.

특이한 점은 또 있어요. 실화 바탕 영화의 실존 인물들은 대부분 고인인 데다 특별한 업적을 이룬 위인들이 많았는데요. 저는 멀쩡히 살아서 영화 주인공과 동시대를 살고 있는 데다, 위대한 업적은커녕 매일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며 평범한 삶을 사는 '그냥 엄마'라는 것이죠.

a 영화 <그녀에게> 포스터 주인공 상연과 아들 지우

영화 <그녀에게> 포스터 주인공 상연과 아들 지우 ⓒ 영화로운 형제


올해 여우주연상은 '김재화'

요즘 사람들이 만날 때마다 물어요. "자기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게 어떤 기분이야?" 솔직히 말하면 아무 기분도 아닙니다. 정말 이상하죠? 저도 그래요.

왜 이렇게 아무 기분도 아닐까를 생각해 보다가 알았어요. 저는 영화를 보면서 영화 속 '상연'이 '승연'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그냥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엄마가, 발달장애인의 엄마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김재화 배우님의 연기가 그만큼 뛰어났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 같아요. '상연'과 '승연'이 자연스럽게 분리가 되더라고요.

사실 쉽지 않은 역할이잖아요. 그냥 엄마인 줄로만 알고 있다가 생의 어느 한순간 자녀가 발달장애인이 되는 상황을 접하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온갖 폭발적인 감정을 담아내는 연기를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정말 잘 소화하셨어요. 영화를 보면 압니다. 올해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여우주연상은 김재화 배우님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겁니다.

물론 영화제(부산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와 각종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먼저 본 제 지인들은 '상연'의 싱크로율이 저와 높다고 합니다. 제가 시나리오 각색 작업을 하면서 '제 말투'를 녹여 넣었기 때문일 것 같아요. 어쩌면 성질내는 장면 때문일 수도 있고요.

'상연'이 극 중에서 엄마와 통화 후 성질을 버럭 내며 휴대폰을 던지는 장면이 있는데요. 그 장면을 본 친정엄마가 저한테 "어쩜 그렇게 너랑 똑같니"라고 하더라고요.

보편적 감정이라 그럴 거예요. 영화에서 '상연'이 아들 '지우'를 키우며 느끼는 여러 감정은 '승연'이기에 느끼는 특별한 감정이 아닌 사람이라면, 부모라면 누구나 느끼는 보편적 감정들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으로서의 보편적 감정을 담아낸 이 영화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 모두의 이야기가 됩니다.

치열하게 고민한 이상철 감독

a 영화 <그녀에게> 스틸 컷 주인공 상연이 국회 앞에 서 있다

영화 <그녀에게> 스틸 컷 주인공 상연이 국회 앞에 서 있다 ⓒ 영화로운 형제


이상철 감독님한테 처음 연락을 받은 게 3~4년 전이에요. 책을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말을 듣고 한 번에 오케이 했습니다. 왜냐면 저 또한 이 책을 기반으로 한 영화작업을 언젠가 하고 싶었거든요.

영화인도 아닌 제가 영화작업을 꿈꿨던 건 '확장성' 때문이었어요.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이라는 책을 내게 된 목적은 아들에 대해, 아들의 장애에 대해 세상으로부터 이해받고 싶기 때문이었어요. 이해받으면서, 조금 더 평범하게 남들처럼 살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알다시피 책은 깊이는 담을 수 있지만 영화에 비해 확장성은 떨어집니다.
책은 작정하고 읽어야만 읽게 되잖아요. 영화는 굳이 작정하지 않아도 어떤 기회만 갖춰지면 쉽게 접할 수 있고요. 나중에 내가 하려던 일을 먼저 해주신다니….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감독님한테 더 고마운 건요. 배우려는 자세로 다가와 주셨다는 거예요.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발달장애에 대해, 발달장애인의 현실과 그 가정의 삶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모르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하는데요. 감독님은 그런 일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많이 공부하고 치열하게 고민하시더라고요.

시나리오 과정에서 어떤 부분엔 감독님과 마찰이 있기도 했습니다. '편지 신'의 순서, 클라이막스가 된 사건의 마무리 등을 놓고 팽팽한 접전이 있었죠. 하지만 이 영화는 다큐가 아니었던 만큼 제가 물러섰는데요. 이후 완성된 영화를 보니 제가 멋모르고 나섰구나 싶어 깊이 반성했습니다.

a 영화 <그녀에게> 스틸 컷 키즈카페에서 아이들 생일파티를 여는 상연

영화 <그녀에게> 스틸 컷 키즈카페에서 아이들 생일파티를 여는 상연 ⓒ 영화로운 형제


'삶'에 대한 이해 먼저

저는 이 영화를 많은 비장애인들이 보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스태프 기술 시사회 때 영화를 본 친정엄마가 극이 끝난 후 제 어깨를 잡으며 그러더라고요.

"미안하다. 몰랐어서…"

엄마는 제가 아들을 양육하는 데 가장 많은 도움을 준 분입니다. 그런데도 몰랐던 거예요. 발달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삶은, 아주 가까운 관계라도 직접 그 삶을 살고 있지 않은 한 모른다는 겁니다.

심지어 엄마는 책까지 다 읽었거든요. 그런데도 영화로 보니 비로소 현실감이 와닿은 모양이더라고요. "아, 이런 게 영화의 미덕이구나"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일단 '발달장애'라는 말이 붙으면 책이고 영화고 사람들이 거리감을 느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른 주제에 비해 진입장벽이 높다는 거죠.

그런데요. 그런 경험 없으세요? 한 두 다리만 건너면 누구나 주변에 발달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가정이 있는 경험이요. 우리들은 실존적 인물로서 이 사회에 존재하고 있어요. 눈에 안 보인다고 없는 게 아니랍니다.

'장애인식개선', '장애이해교육', 다 좋은데요. 저는 그러한 노력들이 진짜 빛을 발하기 위해선 발달장애인과 그 가정의 '삶'에 대한 이해가 먼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에 공존하고 있는 실존적 인물들과 그들이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선, 아무리 좋은 교육을 들어도 그 내용들은 한낱 귀를 스쳐가는 공허한 외침이 될 거예요.

평생에 딱 한 번, 105분의 경험

a 영화 <그녀에게> 스틸 컷 발달장애아 '지우'역을 맡은 빈주원 배우

영화 <그녀에게> 스틸 컷 발달장애아 '지우'역을 맡은 빈주원 배우 ⓒ 영화로운 형제


영화 유튜버 '거의없다'님이 이 영화를 보고 그런 말을 하셨어요. 본인은 평소에 영화 관계자들을 잘 만나지 않는대요. 일단 사람을 알고 나면 그들을 쉽게 때릴(?) 수 없어서요(영화에 혹평을 할 수 없어서요).

그런데 '거의없다'님에겐 이 영화가 그런 영화였대요.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누구인가를 알게 된 그런 영화요. 그다음부턴 자주 가는 편의점에서 마주치던 발달장애인에게 그동안 몰랐기 때문에,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더랍니다.

평생에 한 번, 105분이면 됩니다. 이번 추석 연휴 기간에 온 가족이 함께 <그녀에게>를 보며 의미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떠세요?

평소엔 TV에서만 보던, 그래서 궁금하긴 했지만 그래도 선뜻 알 순 없었던 발달장애인과 그 가정의 삶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거예요.

'발달장애'라고 하니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어둡고 우울할까. 정말 그럴까요? 그 또한 편견일 수 있습니다. 힘든 것과 불행한 것은 분명히 다른 문제더라고요. 저는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로 인해 남들보다 10배는 더 많이 웃는 행복감을 매일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물론 눈물 흘릴 일도 많지만요).

일단 영화는 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쭈욱 몰입해 볼 수 있게 하는 '영화적 재미'가 있습니다. 중간중간 터져나오는 웃음도 있고요. 무엇보다 결말을 보고 극장을 나설 땐 뭔가 몽글몽글하면서 따뜻해지는 마음을 흠뻑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이 영화의 원작자로서,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엄마로서, 이번 생을 잘 살아내고 싶어요. 손가락질이 아니라 이해받으면서요. 이 작은 영화 한 편이, 그러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작은 '씨앗'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라봅니다.

류승연 작가 scaletqueen@hanmail.net

a 영화 <그녀에게> 포스터 하교길, 건널목에 선 상연과 지우

영화 <그녀에게> 포스터 하교길, 건널목에 선 상연과 지우 ⓒ 영화로운 형제



#그녀에게 #김재화 #이상철 #류승연 #사양합니다동네바보형이라는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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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기자, 현직 작가. 저서로는 [배려의 말들]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다르지만 다르지 않습니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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