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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이 호텔보다 좋은 점

7년쯤 쉰 캠핑을 다시 시작하면서 알게 된 즐거움

등록 2024.09.10 11:58수정 2024.09.10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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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텐트 치다."


옛날에 오마이블로그(아래 오블)에 썼던 글이다. 오블은 이제 서비스가 중단되어 글을 볼 수 없지만 전무후무한 조회수를 기록한 글이라 특별히 기억하고 있다.

2009년 7월 25일. 처음으로 텐트를 산 주말인데 비가 내렸다. 집안에 텐트치고 아쉬움을 달랜 이야기를 썼는데, 오마이뉴스 기사로 채택되고 네이버 메인 화면에 떴다. 블로그 하루 방문자가 10만을 넘긴 날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캠핑의 시작 그리고 멈춤

a  집안에 텐트 치다

집안에 텐트 치다 ⓒ 박영호


2009년 8월 1일 처음으로 캠핑을 떠났다. 백담사에서 가까운 십이선녀탕 계곡에 있는 야영장이었다. 요즘은 대부분 캠핑장으로 이름을 바꿨지만 그 시절엔 야영장으로 부르는 곳도 많았다. 장비라곤 텐트 하나라 바닥에서 밥을 먹어도 마냥 즐거운 캠핑이었다. 사진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아! 다시 돌아오지 못할 시절이다.

a  첫 캠핑

첫 캠핑 ⓒ 박영호


정확한 때는 모르지만 동해 망상해변에서 엄청나게 세찬 바람이 불던 날 플라이가 찢어졌다. 아마도 오 년쯤 지났을 때 두 번째 텐트를 샀다. 하나 둘 장비를 더해가며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부지런히 캠핑을 다녔다.


올해는 2024년이니 첫 캠핑으로부터 15년이 지나는 동안 8년쯤 캠핑 다니고 7년쯤 쉬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아들과 딸은 모두 대학생이 되었고, 아들은 5월에 입대해서 군복무 중이다. 나는 머리숱이 훤해졌고 아내는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세월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다.

새로운 시작


지난 주말 아내와 둘이서 캠핑을 떠났다. 예나 지금이나 미리 계획하고 사는 성격이 아니라 별다른 준비도 계획도 없이 훌쩍 떠났다. 목요일 밤에 정하고 금요일 오전에 예약하는 이에게 시설 좋고 경치 좋은 곳은 언감생심이다. 시설은 조금 떨어져도 선착순인 곳이 제격이다. 아이들과 자주 오던 양양에 있는 캠핑장을 찾았다. 예상대로 손님이 적어서 드넓은 솔밭을 우리끼리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a  너무 오래된 텐트와 타프

너무 오래된 텐트와 타프 ⓒ 박영호


캠핑이 호텔보다 좋은 점도 있다. 캠핑은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든다. 호텔 방에서는 듣지 못하는 바람이 전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 바람은 처마 끝에 달린 풍경 소리처럼 부드럽고 은은하게 말을 건넨다.

a  풍경 소리

풍경 소리 ⓒ 박영호


새벽엔 어서 일어나 해돋이 보러 나가자고 속삭인다. 의상대에서 해돋이를 보려고 자전거를 타고 달렸지만 조금 늦었다. 낙산해변에서 잔뜩 몰려든 구름 아래 수평선에 걸린 해를 잠깐 보았다. 호텔 창가에서 보는 해돋이와 느낌이 다르다.

a  해돋이

해돋이 ⓒ 박영호


손수 해서 더 맛있는 숯불구이도 참 좋다. 읍내 전통시장에서 가리비 1kg은 이만 원, 열기 두 마리와 가자미 한 마리는 만 원에 샀다. 둘이 배불리 먹고 기웃거리는 고양이까지 배를 채웠다. 밤이 깊도록 즐기는 불멍은 덤이다. 불편해도 가끔은 캠핑을 고집하는 까닭이다.

a  자전거

자전거 ⓒ 박영호


아이들이 없으니 짐이 확연히 줄었다. 대신에 자전거를 달고 갔다. 요즘 아내와 함께 자전거를 자주 탄다. 낙산사에서 하조대까지 '동해안 자전거길'을 왕복했다. 자전거길이 차도는 물론 인도와도 완벽하게 분리된 구간이 많아서 정말 좋았다. 자전거 전용이라도 차도와 구분이 확실하지 않으면 주차된 차량이 많고, 인도와 구분이 분명하지 않으면 인도가 아닌 자전거 도로로 걷는 사람이 생각보다 아주 많다.

차도와 칸막이나 경계석으로 분리되어 있고 인도와는 높이가 다르게 분리한 구간이 특히 맘에 들었다. 남대천을 따라 달리는 '연어 자전거길'도 아주 좋았다. 지금도 좋은데 벚꽃이 필 무렵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을 듯하다. 다른 지자체도 본받았으면 좋겠다.

문제는 텐트였다. 너무 오래 쓰지 않은 까닭에 텐트와 타프가 망가진 줄 몰랐다. 처음엔 곰팡이가 피었다고 생각했는데 천이 낡아서 헐어 버린 모양이다. 닦아도 닦이지 않아 집으로 돌아와 이불처럼 세제로 빨았더니 못 쓰게 되었다. 역시 세월 앞에 장사는 없다.

아내와 함께 새로 시작하는 캠핑을 위해 낡은 텐트는 버리고 새것을 주문했다. 어제 주문한 물건을 오늘 받았다. 놀랍도록 빠르다. 옛 추억을 생각하며 거실에 텐트를 펼쳤다. 화천에서 군에 복무하는 아들이 면회하고 외박할 수 있는 때가 되면 가지고 가야겠다. 얼른 새 텐트를 사용할 날이 왔으면 좋겠다.

a  어쩌면 마지막 텐트

어쩌면 마지막 텐트 ⓒ 박영호


어쩌면 우리 부부가 쓰는 마지막 텐트일 수도 있다. 앞으로 10년쯤 쓰고 나면 캠핑카를 살 수도 있고 어쩌면 힘에 부쳐서 캠핑을 그만 둘 수도 있다. 그때가 되면 아들이 아이를 데리고 캠핑을 떠나는 모습을 보며 만족하지 않을까 싶다.
#캠핑 #야영 #텐트 #부부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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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사람에겐 편안함을, 친구에게는 믿음을, 젊은이에겐 그리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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