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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아무도 그 연예인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

눈에서 스마트폰을 떼지 못하는 이 시대 인간 군상

등록 2024.09.24 10:27수정 2024.09.24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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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스마트폰을 보며 걷는 보행자. 스마트폰을 보며 걸으면 주의력이 평소보다 현저하게 떨어지고 오가는 사람들과 부딪쳐 사고를 유발할 가능성도 높다.

스마트폰을 보며 걷는 보행자. 스마트폰을 보며 걸으면 주의력이 평소보다 현저하게 떨어지고 오가는 사람들과 부딪쳐 사고를 유발할 가능성도 높다. ⓒ 김관식


지난 19일. 목요일, 바쁜 출근 길.

9호선 종합운동장역에서 내려 2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바삐 걸음을 재촉하던 찰나였다. 기다란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위해 오른쪽으로 섰다. 잠시 후, 내 뒤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거 좀 빨리 갑시다. 뒤에 쭉 줄 서있는데, 휴대폰 보면서 가니까 줄이 늘어지잖아요."

"내가 보든 말든 아저씨가 뭔데 그래요? 그럼 앞질러서 가든지요."

나도 내심 당황했다. 그렇게 시작된 그 두 사람의 말다툼은, 주변 사람들의 재촉으로 금세 마무리됐다. 하지만, 뒷맛이 씁쓸했다. 바쁘고 바쁘지 않고를 떠나, 부득이하게 휴대폰을 켜야 할 때도 급한 전화에 집중하느라 주변을 살피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런가 하면, 모바일 게임이나 OTT 시청, 유튜브를 보는 데 집중하는 이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출퇴근 때, 스마트폰에 너무 빠져들다 보면 앞 사람과 간격이 점차 벌어져 그 사이로 새치기하는 사람을 보면, 뒤에 줄 선 사람으로서 괜스레 짜증이 날 때도 있지만, 문제는 스마트폰에 집중하는 사이 주변과 발 아래를 살피지 못해 갑작스레 사고에 노출될 수 있다는 데 있다.

a  에스컬레이터를 탄 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

에스컬레이터를 탄 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 ⓒ 김관식


올초, 같은 장소. 내 바로 앞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한 청년이 스마트폰에 집중하다 끝에 다다를 무렵 발을 제대로 떼지 못해 크게 넘어진 적이 있다. 나도 순간 그를 피하려다 넘어졌고, 내 뒤를 따라 올라오던 두 사람도 발이 엉켜 모두가 한바탕 크게 굴렀다. 그 청년은 부끄러운 듯이 이어폰을 다시 끼운 채 도망가듯 자리를 떴다. 문제는 뒤따르던 두 사람도 스마트폰을 보다 옆으로 피하지 못 했다는 점이다.


오가는 길에 마주쳤을 땐 더욱 난감하다. 멀리서 스마트폰 보며 오는 사람이 눈에 띄면 일찌감치 여유 있는 곳으로 방향을 잡지만, 사선으로 걸어오는 통에 멈침할 때도 다반사다. 사과 한마디 듣기도 어렵다.

언제부턴가 스몸비족이라는 용어가 돌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좀비'의 합성어로 '스마트폰만 보느라 주변을 살피지 않고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마치 영혼 없이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걷는 모습이 영락없이 좀비 같다는 얘기다. 실제로 보행사고 중 스마트폰과 관련한 사고가 연일 증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방수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지난 8월 30일 YTN과 한 인터뷰에서 "스마트폰을 보행 중에 이용하면 소리로 인지하는 거리가 평소보다 50% 이상 줄게 된다"면서 "자신이 인지할 수 있는 거리 범위가 축소되는 상황 때문에 보행 중 다른 사용자와 부딪치거나 다른 보행자와 충돌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해 주의 깊게 봐야할 통계 자료도 있다. 미국 정부 통계를 보면 2011년부터 2019년 사이에 휴대폰을 보며 걷는 바람에 생긴 응급상황이 3만여 건이라 한다. 그중 1/4는 가정에서 일어난 사고다.

그런가 하면, 김경수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교수는 <무등일보> 오피니언 코너에서 "스마트폰을 보며 걷는 스몸비족은 어디서든 볼 수 있고, 게다가 스마트폰을 보며 운전하는 이가 10명 중 무려 4명이 된다는 통계가 있다. 이는 누구나 사고의 가해자와 피해자 될 수 있다는 뜻에서 미래의 잠재적 위험성"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또 "이어폰을 귀에 꽂고 걷다가 안전사고 위험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보행 중에 스마트폰을 이용하면 상황 대처 능력이 떨어지고 안전사고 발생 위험이 올라가기 때문에 운전이나 보행 중에는 스마트폰을 조금 시야에서 멀리하는 게 좋다"고 당부했다.

a 교통안전표지(왼쪽)와 보도부착물 보행 중일 때는 잠시 내려놓으셔도 좋습니다.

교통안전표지(왼쪽)와 보도부착물 보행 중일 때는 잠시 내려놓으셔도 좋습니다. ⓒ 서울시




스마트폰 집중으로 인한 사고는 지상으로 나오면 더 위험하다. 도로 위를 다니는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 킥보드 등 예상치 못한 것들이 주위에 늘 도사리기 때문이다. 특히 도로 인사 사고는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늘 주의해야 한다. 게다가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다닌다면 더욱 안전에 신경 써야 한다.

무엇보다 자동차의 경적이나 자전거 혹은 전동 킥보드가 오갈 때 그 낌새를 전혀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최근에는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이용하는 보행자가 많아지며 더욱 주의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자동차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행동들, 스마트폰을 보며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로 무단횡단하는 행위, 보행신호가 깜빡깜빡하는 사이 빨간 불로 바뀌었는데도 이를 알아치재 못하고 스마트폰에 몰두하는 행위는 위험천만하기까지 하다. 2021년 기준,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 1018명 중 26.6%인 271명은 무단횡단하다 일어난 사고다.

통계청이 2021년 발표한 자료를 보면, 스마트폰 부주의로 인한 사고 중 10~20대가 45%, 30~40대가 41%를 차지했다. 또, 스몸비족과 하루 한 번 이상 부딪힌 경험이 있는 이도 36%로 나타났다.

a LED 바닥형 신호등 앞을 보지 않아도 신호를 감지할 수 있도록 점멸등을 바닥에 설치해 교통약자나 스마트폰을 보며 걷는 보행자의 사고를 예방한다.

LED 바닥형 신호등 앞을 보지 않아도 신호를 감지할 수 있도록 점멸등을 바닥에 설치해 교통약자나 스마트폰을 보며 걷는 보행자의 사고를 예방한다. ⓒ 김관식


a LED 바닥형 신호등 앞을 보지 않아도 신호를 감지할 수 있도록 점멸등을 바닥에 설치해 교통약자나 스마트폰을 보며 걷는 보행자의 사고를 예방한다.

LED 바닥형 신호등 앞을 보지 않아도 신호를 감지할 수 있도록 점멸등을 바닥에 설치해 교통약자나 스마트폰을 보며 걷는 보행자의 사고를 예방한다. ⓒ 김관식


언제부턴가 횡단보도 보행자 대기선에 밝은 LED 바닥형 신호등이 이곳 저곳 설치되기 시작했다. 노약자나 어린이는 물론이고, 최근 들어 스마트폰만 바라보는 보행자의 횡단보도 안전을 위해 설치를 늘리는 중이다.

지하철 역사든 지상 도로든 많은 사람이 오가는 도로는 공적 공간이다. 이런 곳에서는 서로의 배려가 필요하다. 내 스마트폰으로, 내가 오가는 길에서,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누리는 것은 얼마든지 존중한다. 하지만, 공적 공간에서의 내 행위가 존중 받기 위해서는 나도 남에게 피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또 하나,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함께 주의해야 한다.

적어도 최소한 걸어다닐 때는 잠시 스마트폰을 눈에서 떼어 놓는 건 어떨까. 멀리 산도 바라보고 사람들 표정도 살피며 내가 살아가는 오늘을 잠시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도 멀리보면 자산이 될 듯하다.

기사를 작성하기 전 봤던 한 전문가의 발언이 오래도록 잊히질 않는다.

"사람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게 되면 주의력이 반감돼요. 걸어가며 스마트폰을 보면 발 밑에 무엇이 있는지, 누가 지나가는지 알 수가 없어요. 최근에는 제법 알려진 모 연예인이 촬영 마치고, 지하도를 지나가는 데 자신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 했대요. 모두 스마트폰만 쳐다봤던 거죠."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글쓴이의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스마트폰 #스몸비 #LED바닥형신호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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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잡지교육원 전임교수. 사소한 것일 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화제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아파하는 곳을 찾아갑니다. seoulpa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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