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운동화아빠께 사 드린 운동화
황성혜
집에 와서 아빠의 낡은 운동화들은 한쪽에 모아두고, 새로 산 운동화를 신고 걸어 보시라고 했다. 택을 떼기 전에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아빠는 몇 번 걸어 보시더니 발이 편하고 좋다고 하셨다. 택을 떼고, 신발장에 있던 검정 운동화도 현관에 꺼내 두 가지를 번갈아 신으시도록 했다.
다음 날 아침, 설거지를 하는 중 아빠가 서실에 다녀오신다고 하셔서 현관까지 나가지 못하고 "잘 다녀오세요"라고 인사만 드렸다. 설거지를 마친 후 현관에 가보니 내가 사드린 신발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또 낡은 운동화를 신고 나가셨나 싶어 걱정이 되었다.
아빠가 돌아오시자마자 새 신발을 왜 안 신으셨냐고 물으니, 비가 와서 헌 운동화를 신으셨다고 하셨다. "아빠, 비가 오니까 새 신발을 신으셔야죠! 그러다 또 미끄러지면 어떡해요. 안 되겠어요, 당장 큰 쓰레기봉투 사 와서 헌 신발들은 다 버려야겠어요." 내가 강하게 말하자 아빠는 "알겠다. 이제부터는 새 신발만 신을게"라고 하셨다.
아빠는 너무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온갖 고생 끝에 가까스로 대학교를 졸업하셨다. 너무 배가 고파 앞이 제대로 보이질 않을 정도였다 하시니, 그 어려움을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후에도 본인을 위해서는 철저히 아껴 쓰셨다. 아직도 휴지는 반 장씩 쓰시고, 로션도 새끼손가락으로 아껴 펴 바르신다. 새 신발도 아끼시며, 딸이 사준 거라 소중하게 여겨 비 오는 날 선뜻 못 신으셨던 게 아닐까 싶어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싱가포르에 돌아온 후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가 새 운동화를 잘 신고 계신지 물었다. 검정 운동화와 번갈아 신으시지만, 내가 사드린 운동화를 더 즐겨 신으신다고 하셨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아빠는 이제 팔십대 후반을 바라보신다. 매일 운동하고 식이요법을 하셔서 아직은 나와 부산 여행도 다녀오시고, 외식도 하고 차도 마실 수 있지만, 연세가 있으시니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
작은 운동화 한 켤레쯤은 갈 때마다 얼마든지 사드릴 수 있는데, 그저 지금처럼 오래도록 곁에 계셔 주셨으면 좋겠다. 한국에 가서 뵙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다시 그리운 마음이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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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정원 속의 도시' 싱가포르에 살고 있습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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