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연봉 PB(Private Banking)시절 노훈심.
노훈심
웃는 상 노훈심 얼굴에서도, 군포시 공무원 일회용품 사용에 관한 대화가 이어질 때는 웃음기가 사라졌다. 웃음기가 되돌아왔을 즈음 '언제부터 환경운동을 했느냐?'는 질문으로 화제를 슬쩍 돌렸다.
"올해가 7년째이고요. 그전에는 금융 계통에 있었어요."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학생운동 하다가 환경운동을 하거나, 다른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다가 뜻한 바가 있어 환경운동으로 옮기는 식이 아니었다. 환경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자본주의 냄새 풀풀 풍기는 '금융계'에서 왔다니.
그는 연봉이 억대가 넘는 투자·자산 관리 전문가였다. PB(Private Banking)라는 이니셜(initials)로 잘 알려진 직업이다. 고액자산가를 상대로 영업활동을 펼치고 자신의 실적만큼 두둑한 보수도 챙길 수 있어, 증권이나 은행 등 금융권 내에서도 인기가 높은 직군이다. 그런 만큼 업무 강도가 높고 경쟁이 치열하기로 유명하다.
그는 투자신탁회사 PB였다. 금융인 삶 20년 차를 맞이하던 어느 날 그에게 '번아웃 증후군(burnout)'이 찾아왔다. 심각했다. 더 하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밀려올 정도였다고. 특히 고객이 맡긴 돈을 투자 실패로 손해나게 하는 경우를 견딜 수 없었다. '손해났다'는 말을 고객에게 해야 하는 순간에는 정말 딱 죽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 순간을 피할 수 없는 게 바로 PB의 숙명이었다.
"억대 연봉을 받기 위해서 얼마나 치열하게 일했겠어요. 고객 돈으로 주식도 해야 하고, 펀드도 해야 하고. 그러려면 전 세계 금융시장을 다 꿰고 있어야 해요. 세계 시장을 다 훑어보는 게 매일 출근하자마자 하는 일이었어요.
해외 부동산 펀드에 투자했다가 고객 돈 원금 5000만 원 전액을 날리고, 그 얘길 해야 하는데... 아, 그건 정말 극심한 스트레스였어요. 이런 일 겪으면서부터 멘붕(멘탈붕괴)이 왔고, 번아웃을 겪게 된 거죠."
그는 "머리채나 멱살 잡히는 일은 없었지만 정말 미안했다"라고 말했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동료들은 '돈 벌러 온 사람들이니, 손해 볼 수도 있는 것'이라며 '너무 죄의식 갖지 말라'고 그를 위로했다. 실제, 고객 돈 수백억 원을 날리고도 당당한 강심장 동료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노훈심의 심장은 그렇게 강하지 못했다.
그가 선택한 해결책은 사표. 2014년 초 그는 20년 금융인의 삶을 접고 40대 중반의 나이에 전업주부라는 새로운 직장을 갖게 됐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게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면서 무엇인가 공익적인 일을 해보겠다 마음먹었는데, 막상 찾아보니 그게 쉬운 게 아니었어요. 아파트 부녀회에서 봉사활동이라도 하려 했는데, 그것도 진입 장벽 넘기가 만만치 않았어요. 거기도 터줏대감들이 있었던 거죠."
나도 모르는 내 성향을 찾아 준 절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