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3년 10월 17일 <영남경제신문>이 주최한 ‘영남경제포럼’에 참석해 강연하고 있는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
블로그 ‘시니차니 가족의 행복서재’
육사 17기인 허화평 이사장은 제1군단 작전처 교육장교, 제1공수특전단 게릴라전 교관, 제9보병사단 대대장과 작전참모, 정보사령부 특검단 검열담당관을 거쳐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에 근무하며 10.26(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과 12.12(신군부 군사쿠데타)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허삼수 보안사령부 인사처장, 이학봉 보안사령부 대공처장 등과 함께 '보안사 3인방'으로 불렸다.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쿠데타를 통해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에는 대통령비서실 보좌관으로 임명돼 '5공의 설계자' 혹은 '전두환 정권 2인자'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그의 권력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정무제1수석으로 좌천됐다(1981년 12월). 지난 1982년 5월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사건이 터졌을 때 전두환 대통령 친인척의 공직 사퇴를 건의했다가 전두환 대통령의 눈 밖에 났고, 결국 청와대를 떠나야 했다(1982년 12월).
이후 육사 17기 동기이자 '쓰리허'(허화평-허삼수-허문도)의 멤버인 허삼수 전 보안사 인사처장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헤리티지재단의 연구원으로 있다가 노태우 정권이 출범하자 현대사회연구소 소장으로 부임했다(1988년).
두 차례(1992년과 1996년)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12.12 군사반란, 5.18광주민주화운동 등과 관련해 구속기소되었고 유죄판결을 받아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사면된 이후 두 차례(2000년과 2004년) 각각 민주국민당과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 허 이사장은 지난 2021년 12월 <펜앤마이크>와 한 인터뷰에서 "단순한 민주화 요구를 넘어 민족적 차원의 민중혁명 노선을 추구하는 세력이 무장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이를 저지해야 하는 계엄군은 필연적으로 이들을 무력진압할 수밖에 없었다"라며 "이러한 충돌과정에서 발생한 비극이 바로 광주사태의 본질"이라고 '무력진압'을 합리화했다.
<허화평, 굽은 길도 바로간다>, <지도력의 위기>, <이념은 날개가 아니다 : 허화평의 이데올로기 백서>, <가장 근원적인 것에 대하여 : 허화평의 개헌 청원론>, <경제 민주화를 비판하다 : 임현진, 김종인, 백낙청, 송호근 주장의 허구>, <사상의 빈곤 : 사상이 빈곤하면 역사가 표류한다>, <나의 생각, 나의 답변>, <고독하지만 자유민주주의 사상가 허화평의 사자후>, <한국, 미완의 기적>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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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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