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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잘 쉬는 '온가족 휴가', 이렇게 다녀왔습니다

집에서 1시간 거리 숙소, 식사는 네끼 다 외식... 모두가 '제대로' 쉬어야 합니다

등록 2024.07.27 11:45수정 2024.07.2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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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두통을 앓는다. 감기로 인한 두통을 제외하고는 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피곤할 때 두통이 생긴다. 질병으로 인한 것은 아니기에, 스트레스가 되는 상황에서 벗어나거나 충분히 쉬면 두통은 사라진다.


두통이 도드라졌던 명확한 시점은 명절이었다. 물리적 이동 거리 약 400km. 교통체증으로 인해 걸리는 시간 약 8시간. 에너지가 넘치는 세 아이와의 동반이라는 상황이 피로도를 극한으로 몰고 갔고 어김없는 두통이 찾아오곤 했다.

뿐만 아니라 '시댁을 방문하는 며느리'라는 역할이 스트레스로 작용하기도 했다. 먼 거리, 오랜 시간, 아이들을 데리고 달려가지만, 쉬지 못하고 즉시 노동에 임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두통의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그만큼 '쉼'은 나를 온전히 서게 하는 데에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이제는 휴식을 위해 떠나는 여행지에서도 두통을 앓는 일이 발생하곤 한다. 예전에 남원, 여수, 전주 등 전라도 곳곳을 여행할 때, 이동한 거리가 만만치 않게 길었지만, 또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세 아이가 있었지만 그래도 참 유익하고 즐거웠었다.

하지만 다시 그렇게 다니라고 한다면 못 할 것 같다. 그럴 만한 체력이 나에게 남아있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실제 전날 충분히 잠을 못 자고 여행지로 향했을 때, 나는 두통으로 식사도 하지 못하고 거의 서너 시간을 누워 있어야 했다.

휴가인데 휴가가 아니다, 여전한 '밥차림의 피로'  
 
a  돌봄노동, 식사차리기... 휴가 때에도 쉬지 못하고 노동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두통의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자료사진)

돌봄노동, 식사차리기... 휴가 때에도 쉬지 못하고 노동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두통의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자료사진) ⓒ 픽사베이


이동 거리가 먼 곳, 사람이 많은 곳이 피로를 쌓게 하는 주범이다. 그러나 주부인 나에게는 끼니를 챙겨야 한다는 사실 또한 꽤 비중 있는 피로의 원인이다. 휴식을 위해 집을 떠나지만,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나의 일은 여전하며, 가족을 위한 희생이 반드시 따르게 된다.


여행지에서도 여전히 아이를 돌봐야 하고, 숙소와 빨래를 정리해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 밥을 먹여야 한다. 장을 보고,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내 희생을 통해 가족들이 즐거워한다면 그것은 나름의 가치가 있다. 가치에 의의를 두면 육체의 피로함은 문제 될 게 적다. 문제는 가족이 더 이상 휴가를 달가워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 희생에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이 고민은 고등학생인 큰아이가 점차 가족 여행을 거부하면서 갖게 되었다. 가족들과 자연을 보며 휴식하는 것보다, 지금의 아이는 짧은 시간이라도 친구와 함께 있는 것에서 더 큰 즐거움을 느낀다.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가족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아이는 따분하다, 재미있지 않다. 그런 아이를 강제로 끌고 온들, 시큰둥한 얼굴을 계속 봐야 하니 여행의 만족도는 전체적으로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그렇다고 집에 혼자 두고 오자니, 끼니는 잘 챙겨 먹는지 혼자 외롭지는 않은지 등 염려가 되어 영 마음이 불편하다.

이러한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올여름 우리 가족의 휴가는 아주 단조롭게 이루어졌다. 우선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장소를 선정했다. 집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대부도. 지난겨울, 해돋이를 보기 위해 가족이 함께 방문했던 펜션을 이번에 다시금 예약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거리상 가깝기도 했지만, 바다를 내다볼 수 있는 경치가 멋졌기 때문이다.

일정은 따로 정하지 않았다. 미술관, 박물관, 체험관, 수목원, 해수욕장, 해상 케이블 등 즐길 거리가 넘치는 대부도였지만, 우리는 그저 시원한 곳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인파에 시달릴 필요가 없는 계획이었다.

잠들기 전 딸의 한 마디 "다 같이 노니까 너무 좋아"   

또한 시간을 짧게, 1박 2일로 잡았다. 현지의 유명한 곳을 다 들르겠다는 계획이 아니기 때문에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기로 했다. '남들이 다 가는 곳 우리도 가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버렸다. 이전에는 늘 그런 생각으로 일정을 잡곤 했지만 말이다.

4끼의 식사를 모두 식당에서 해결했다. 한정식, 고기, 칼국수, 치킨. 요리도 설거지도 없었다. 장은 편의점에서 간단한 과자류를 구매하는 것으로 끝났고,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할 필요가 없었다. 혹시 몰라서 가져갔던 김치는 가져간 모양 그대로 다시 들고 왔다.

목적을 하나로 잡았다. '자연 속에서 제대로 휴식하며 가족이 단합하자'. 그 목적은 날씨의 궂음도 나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오히려 창이 넓은 숙소 안에서 비 오는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낭만을 즐길 수 있었다.

다 함께 영화 한 편을 보기도 했고, 라이어 게임, 무언의 공공칠빵, 딸기 게임, 바니바니 게임 등을 하며 다섯 가족이 둘러앉아 배꼽을 잡고 웃었다. 마지막 게임은 카드 게임이었는데, 식사 메뉴 선정권을 걸고 격렬한 공방전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렇게, 모든 게임이 끝난 뒤 함께 잠자리에 들면서 딸아이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엄마, 큰오빠가 엄청 착한 사람이 된 것 같아."

대학 입시를 앞두고 예민하고 까칠했던 큰아이 언행이 휴가 와서 부드러워진 건 나도 느끼던 차였다. 자연의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눈앞에 놓인 산이 너무 커 보여서 불안한 마음이 있을 때, 모든 것을 수용할 것만 같은 넓은 바다를 보면 그 마음에 여유가 생길 수 있는 게 아닐까.

'쉼'을 의미하는 한자 휴(休)는 사람이 나무에 기대어 있는 모양이다. 자연 속에 놓인 우리 가족이 그 의미처럼 제대로 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 다 같이 노니까 너무 좋아."

미소를 머금은 채 말하던 딸아이가 행복하게 잠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온 가슴이 흐뭇함으로 젖어 들었다.
 
a 우리 가족이 1박 2일 머물렀던 대부도의 펜션. 뷰가 멋진 곳에서 제대로 된 쉼을 누리고 왔습니다.

우리 가족이 1박 2일 머물렀던 대부도의 펜션. 뷰가 멋진 곳에서 제대로 된 쉼을 누리고 왔습니다. ⓒ 박정은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여행자 수가 2013년에는 약 28만 명, 2019년에 약 34만 명으로 거의 10만 명이 증가했다가 코로나 시기인 2020년 22만명으로 급감했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이후 2022년에는 약 28만 명, 다시금 증가하는 추세란다.

여행은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여가활동의 하나로 여행 참가자 수가 증가한다는 통계를 통해 국민 개인의 삶에 있어 여가가 얼마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특히 한 해의 중간이라고 할 수 있는 여름 휴가는 국민 모두에게 '쉼'을 위한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그 만족도는 달라질 것이며, 만족도에 따라 개인의 삶의 질 또한 달라질 터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2022년 통계 자료에 따르면 여름 휴가의 주목적은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 보내기'가 42.7%로 1위를 차지했고, '지역별 맛있는 음식 먹기'가 39.2%로 2위를 차지했다. '리조트 등에서 여유롭게 보내기'는 34.4%로 3위를 차지했으며, '관광명소 유적지 관광' 12.8%, '자연 감상' 9.6%로 각각 4, 5위를 차지했다. 휴가를 대하는 개인의 기대가 엿보이는 통계다. 개인마다 휴가로 얻고자 하는 가치가 다양하겠지만, 모두가 놓치지 않아야 할 가치는 무엇보다도 '쉼'이 아닐까 싶다.

온라인상에는 무수한 여행 후기들이 즐비해 있다. 여행 계획을 세움에 있어 꽤 도움이 되는 정보들이 많다. 하지만 진정하게 쉬며 삶의 질을 낫게 하기 위해서는 나만의 휴가, 우리 가족에 맞는 계획이 꼭 필요하다. 무작정 남들을 따라하기보다 자신에게 맞는 현명한 선택을 통해 잘 쉬었으면 한다.

여행이라기보다는 MT 같았던 휴가. 다른 가족의 여행지와 비교하여 더 비싸고, 화려하고, 특별한 곳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이 하나 되기에 충분했던 곳. 앞으로의 무더운 여름을 거뜬히 이겨낼 만한 충전을 제대로 하고 왔다.

식사 시간이 다 달라 얼굴 보기도 힘든 다섯 가족이, 평소에 잘 볼 수 없는 바다를 바라보며 함께 웃을 수 있었다는 것. 이번 여름휴가의 의미는 그것 하나로 충분했다. 두통이 찾아올 만한 어떤 틈도 없이 쉼이 가득했던 이번 휴가가 오랫동안 뇌리에 그리고 가슴에 남을 듯하다.
 
a  여행이라기보다는 MT 같았던 휴가. 그러나 우리 가족이 하나 되기에 충분했던 곳. (자료사진)

여행이라기보다는 MT 같았던 휴가. 그러나 우리 가족이 하나 되기에 충분했던 곳. (자료사진) ⓒ 픽사베이

 
#여름휴가 #우리에게딱맞는 #쉼 #가족의단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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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평범한 주부. 7권의 웹소설 e북 출간 경력 있음. 현재 '쓰고뱉다'라는 글쓰기 공동체에서 '쓰니신나'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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