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진델핑겐 벤츠 차량안전기술센터(TFS)에서 정면 충돌 테스트를 거친 벤츠 전기차 EQS.
메르세데스벤츠
우리는 철제 계단을 내려갔다. 눈 앞에 주황색을 입은 메르세데스-벤츠의 최신형 전기차 이큐에스(EQS)가 서 있었다. 주변에는 플라스틱과 각종 부서진 차의 잔해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방금 전까지 멀쩡하던 차였다. 차 앞쪽 절반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바닥에는 냉각수로 보이는 물질이 흘러 내렸다. 현장에 있던 벤츠 관계자는 "우리가 원하던 실험 결과였다"고 자평했다. 이곳에선 매일 벤츠 신차 3대, 많게는 5대가 실험대에 오른다. 그리고 수많은 충돌, 안전 데이터를 남기고 사라진다.
지난달 22일 오후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진델핑겐의 벤츠 차량안전기술센터(TFS). 벤츠의 신형 전기차 한 대가 기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기술 엔지니어의 출발 신호와 함께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약 70미터를 내달린 자동차에서 '퍽' 소리와 함께 굉음이 났다. 차 앞쪽에선 하얀 연기가 솟아 올랐다. 시속 64킬로미터의 속도로 장애물을 들이받는 실험이었다.
충돌 후, 소방 직원으로 보이는 안전요원이 바로 투입 됐고 누전 여부 등을 확인했다. 그리고 6~7명의 연구원들이 컴퓨터 등의 장비를 들고 차로 이동했다. 차 내외부 곳곳에 부착된 각종 전선들을 컴퓨터에 연결했다. 차와 현장의 안전이 확보된 후, 기자들에게 충돌 차를 직접 볼 수 있게 했다. 국내 언론에 벤츠 전기차 충돌실험 현장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었다.
벤츠는 왜 자신들의 핵심 연구시설을 공개했을까
차 앞쪽 오른쪽 보닛은 움푹 들어갔고, 앞바퀴 주변의 각종 부속품들은 부서져 흩어져 있었다. 이번 실험은 범퍼의 40%가량이 장애물과 충돌하도록 돼 있었다. 상대적으로 왼쪽 보닛은 크게 변형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종잇장처럼 구겨진 오른쪽도 보닛을 넘어 운전석까지 손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앞쪽 유리창도 깨지거나 금이 간 곳이 없을 정도였다.
율리아 한너스 충돌안전 엔지니어는 "차 앞쪽 충격을 대부분 흡수해주는 '크럼플 존'이 제대로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개 최근 차 제조사들은 알루미늄과 초강력 장판 등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다. 충돌 사고 때 차가 잘 찌그러져야 그만큼 충격을 흡수해, 운전자 등을 보호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