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웨스틴조선 서울 호텔에서 열린 통일 준비를 위한 탈북민 경제활동 정책토론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2023.11.27
연합뉴스
흔히 탈북민을 '먼저 온 통일', '통일의 선발대'라 말한다. 탈북민이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는 우리 사회가 통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준거가 되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편견과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많은 탈북민들은 우리 사회에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탈북민이 우리 사회에서 '경계인'으로, '이방인'으로 겪는 '힘듦'은 처절하다. 그런데도 그들은 오늘 다시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탈북민의 험난한 '평균'에 스며들기
2024년 6월 말 기준으로 우리 사회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은 34,183명이다. 사실 탈북민이 우리 사회에 '온전히' 정착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북한에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가 많고 설사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 하더라도 교과 내용이 다른 만큼 자본주의식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연줄'과 '스펙'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된 경력과 인맥이 없는 탈북민이 온전히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도전이고 생존의 문제이다.
'리얼리티와 유니티'(2023)를 쓴 조경일 작가는 탈북 청년으로 우리 사회의 '평균'이 되기 위한 '열망'을 이렇게 전했다.
'보통의 삶'은 누구나 누리는 삶 같지만 대한민국을 사는 탈북 청년에게는 꿈이자 목표다. 대단한 승자의 꿈을 꾸는 게 아니다. 평범할 수 있다는 것, 그런 보통의 삶을 이루기 위해서 탈북 청년들은 치열하다. 그 치열함은 그저 '평균'에 스며들기 위한 노력이다. 학업에서, 생업에서, 취업에서, 모든 부분에서 반드시 '평균'이 되고 싶다는 것, 돼야 한다는 열망이다. … '연줄'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탈북민 청년들의 분투는 치열하다. 어떻게든 '평균'에 속해야 한다. ('리얼리티와 유니티' 중에서)
그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탈북의 순간만큼이나 치열한, 간절함이 느껴져 먹먹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탈북민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취업 원서에 탈북자임을 밝히면 서류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하지만, '탈북자'를 지운 순간 통과됐다는 말은 그들이 겪는 일상일지 모른다. 이 때문에 탈북 청년들이 스스로 북한 출신임을 밝히지 않는 비율이 62%로 높게 나타나는지 모른다(2022년 탈북청소년 사회통합조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북 청년들에게 대한민국은 여전히 기회의 땅이다. 조경일 작가는 "아무리 대한민국이 '헬 조선'이니 해도 북향민들에게 한국 사회는 여전히 기회의 땅이자 희망의 땅"이라 말한다.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북한 사회를 떠나 대한민국에서 좁지만 그 '기회'를 가질 수 있음에 대한 희망일 것이다.
경계인으로 살며 통일을 꿈꾼다
탈북민을 만나다 보면 자신을 남과 북 모두를 품은 혹은 남도, 북도 아닌 경계에 선 사람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보는 경우가 많다. 관련해서 '어떤 불시착'(2024)을 쓴 정서윤 작가는 자신을 '남과 북을 잇는 경계인'이라 말한다.
나는 남과 북을 잇는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것이 오히려 남북을 통합하는 데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남과 북을 넘어 '세계시민'이기도 하다. ('어떤 불시착' 중에서)
남과 북을 잇는 경계인, 남과 북을 넘어 세계시민인 '나', 정말 멋진 말 아닌가? 물론 경계인으로서 감당할 무게를 이겨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다. 정서윤 작가는 남북 청년이 함께 소통하고 교류하는 '유니피벗'의 대표로 활동하며 통일을 꿈꾼다.
두만강을 건너던 열 살짜리 소녀는 이제 서른여섯 살이 되었다. 남한 생활 22년 동안 나는 내가 남과 북 사이에 끼인 존재라는 것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때론 버겁고 힘들었지만 그 애매한 정체성이 나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나와 같은 사람만 아는 것,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단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일, 갈라진 두 개의 한국을 잇는 일, 멀어진 남북한의 마음을 다시 연결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 ('어떤 불시착' 중에서)
사실 지금까지 소개한 두 청년 작가들의 이야기는 치열함을 넘어 처절한 '생존 투쟁'에 가깝다. 하지만 그들은 어제의 좌절에 쓰러지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자기 일과 목표, 꿈을 찾고 이루기 위해 오늘 다시 일어선다.
소중한 탈북민 인재 내치는 통일부
앞서 조경일 작가가 말했듯, 탈북민은 우리 사회에서 '평균'에 스며들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탈북민이 우리 사회에 본격적으로 정착한 지도 20년이 넘었다.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생존을 넘어 자기 힘으로 우리 사회에서 작지 않은 역할을 담당하는 탈북민이 많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통일부 산하 조직인 남북하나재단의 김영희 대외협력실장이다. 김영희 실장은 함경북도 길주 출신으로 원산경제대를 졸업하고 2002년 탈북해 같은 해 한국에 입국했다. 그녀는 동국대 북한학과 박사로 북한과 통일 그리고 북한이탈주민 정착 분야에서 인정받는 전문가로 활동해 왔다. 그녀는 2010년 남북하나재단이 설립된 이래 처음으로 부서장(대외협력실장)이 된 탈북민이다. 탈북민 제한 경쟁이 아닌 공개 모집 경쟁에서 당당히 부서장이 된 것이다.
김영희 실장은 탈북민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헌신적인 활동을 통해 남북하나재단의 대외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탈북민 사회뿐만 아니라 북한과 통일 분야 전문가 사이에서도 진짜 실력자로 인정받아 왔다. 하지만 최근 김영희 실장이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해 탈북민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남북하나재단 내에서도 김 실장이 이끄는 대외협력실의 업무 성과가 높은 평가를 받았고, 그녀의 헌신을 인정해 정부가 2023년 통일부 장관 표창을 수여했던 터라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월 14일 개최된 제1회 북한이탈주민의 날 행사에서 "대한민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분들이 날로 늘어가고 있다"라며 "북한이탈주민들의 '역량' 강화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특히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이 솔선수범하여 북한이탈주민들의 채용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실상은 정부가 탈북민 인재를 스스로 내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이사장님은 감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