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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7월부터 1999년 3월까지 이스라엘을 여행하고 키부츠에서 생활한 이야기들을 <샬롬! 이스라엘>을 통해 연재하고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오른쪽 지도에서 보듯, 하이파와 악코는 매우 가깝다. 하이파와 악코의 다른 점은, 하이파가 이스라엘 제3의 국제적인 도시라면, 악코는 5000년의 기나긴 역사를 자랑하는 항구의 요새 도시이다. 기원 전 16세기에 페니키아의 도시로 번영하였던 악코는 지중해에 면한 항구도시로서 매력이 넘치는 곳이었고, 그 만큼 외세의 침입이 끊이지 않았던 곳으로 십자군, 맘루크왕조, 오스만 터키 왕조 등의 지배를 받았다.
악코의 신시가지는 유대인들이 살아가는 주택지역이며, 구시가지가 관광지로서 볼 것이 많다. 현재의 구시가지는 오스만 터키 왕조의 파샤인 후메드가 그 기초를 닦았다고 전해지며, 신시가지와 달리 구시가지는 아랍사람들이 사는 지역이다.
악코로 여행을 간 날은 날씨가 그리 좋지 않았다. 새벽 내내 비가 내렸고, 출발하는 이른 아침도 약한 빗줄기가 내렸다. 때는 이미 12월 중순, 겨울 옷을 특별히 가지고 오지 않은 나는 비, 바람이라도 막아볼 참으로 이스라엘 군인들이 입는 우비를 하나 걸쳤다. 친구 솔리만이 건축자재를 사러 악코로 가는 길이라 그의 차를 얻어 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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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코의 항구 – 악코 마리나 ⓒ 배을선 |
악코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반긴 것은 파도소리와 짙은 안개, 그리고 오래 전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항구였다. 정확한 명칭은 악코 마리나(Akko Mar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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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도가 나의 머리를 폭발시키다니.. ⓒ 배을선 |
비가 온 후라 적잖이 쓸쓸한 항구의 모습 속에서 낚시를 하는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는 이 곳에서 해양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도 많으며 크루즈도 가능하다고 한다. 항구자체가 성벽으로 이루어져있어서, 그 성벽을 따라가면 바다와 만날 수가 있다. 사진을 찍겠다고 파도옆에 섰다. 성난 파도가 내 머리를 폭발(?)시키고 지나갔다.
반대쪽으로 성벽을 걸었다. 이 성벽은 구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데, 십자군 시대에는 현재 악코만에 둥하고 떠있는 작은 엘 마나라 섬의 성벽까지 이어져있었다고 한다.
끊어진 성벽도 찾아서 기어오르고 하면, 악코의 구시가지 전체가 눈에 들어오는데, 두 눈을 압도적으로 빼앗는 것은 바로 모스크 엘 자자르이다. 녹색 돔이 눈에 확 들어오는 이 모스크는 예루살렘의 바위돔과 엘 아크사 사원에 다음가는 이스라엘 제 3의 모스크이다. 이 모스크는 오스만 왕조의 번영을 다른 나라에 과시하기 위해 만들었기 때문에 매우 호화롭게 만들어져 있다. 안쪽 깊숙히는 저수지가 있는데, 저수지 내부로 입장이 가능하다.
안으로 들어가면 꽤 어둡고,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리는데, 꼭 영화 <구니스>나 <인디아나 존스>의 느낌처럼 으시시하다. 하지만 정말 볼만한 거리이다. 정원에는 엘 자자르와 그의 양자 슐레이만의 무덤도 있다. 모스크와 지하저수지에 들어가는 입장료는 4NIS(1200원)인데, 잔돈이 없다고 하니까 두 사람에 4NIS로 깍아주었다. 인심좋은 아랍 아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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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 자자르의 모스크 정원에서.. ⓒ 배을선 |
모스크를 나오면 맞은편에 십자군의 지하도시가 나온다. 하얀 석조 문이 바로 지하도시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입구는 작지만, 그 좁은문을 통해 들어가면 어마어마하게 넓은 부지에 12세기의 거리가 보존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우체국이 눈에 뜨이고 관광안내소가 보인다. 더 안으로 들어가면 기사의 홀(Knights Hall)이 있는데, 이 곳은 오스만왕조시대에는 요새로 사용되어 온 곳이지만, 현재에는 가끔씩 콘서트가 열리기도 하는 장소란다.
기사의 홀 서쪽으로는 세인트 존의 지하성당도 있다., 이 지하성당에는 공중 목욕탕의 옛자리가 있으며, 이 목욕탕은 이슬람교 여성들의 사교장이었다고 하니, 목욕탕은 예나 지금이나 여성들에게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장소임이 틀림없다. 요즘도 목욕탕의 사우나에서는 아줌마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100도의 온도를 이겨내며 가득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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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 엘 움단에서.. ⓒ 배을선 |
마지막으로 간 곳은 칸 엘 움단(Khan El Umdan)이다. 이 곳은 18세기, 엘 자자르에 의해 세워진 상인들을 위한 숙박시설, 즉 여관인 셈이다. 칸(Khan)은 말과 함께 묵을 수 있는 숙박소를 의미하고, 칸 엘 움단은 여러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숙박소란 의미이다. 사진을 보면, 내가 서있는 곳인 1층은 말을 묶는 마구간이고, 2층이 잠을 자는 객실임을 알 수 있는데, 금방이라도 조로(Zoro)가 2층에서 말 안장위로 뛰어내릴 것만 같다.
칸 엘 움단을 나오면, 항구의 성벽을 따라서 지중해 음식을 파는 낭만적인 레스토랑으로 가득하다. 물론, 돈이 없는 관계로 레스토랑은 구경만 하고, 시장쪽으로 나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유명한 팔라펠 집에서 8NIS을 주고 팔라펠을 사먹었는데, 아마 이 곳이 이스라엘에서 팔라펠 맛이 가장 맛있는 집이었던 것 같다. 지금 그 집 이름은 잊었지만, 그 팔라펠의 맛과 분위기는 아직 내 가슴에 있네… 움홧홧.. 박인환 님의 시 ‘세월이 가면’을 적절히 인용했다. 움홧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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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코의 구시가지 – 오른쪽의 희미한 것이 엘 자자르 모스크이다 ⓒ 배을선 |
시장인 수크(Suq)에는 여러가지 기념품들이 가득하다. 인심좋은 아랍사람들과는 가격을 흥정하기도 쉽다. 이스라엘은 은 제품이 많고 저렴한데, 이 곳에서 수공예품 은반지를 엄청 깎아서 샀다. 하룻동안의 악코 여행을 끝마치고 신디와 나를 픽업할 친구 솔리만을 기다리는데,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기다리는 우리에게 아랍소년 3명이 다가온다. 그들은 항구 바로 앞 주택에 사는 18살 정도의 소년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단다. 갑자기 비가 내려와, 비도 피할 겸, 우연찮게 그의 집에서 아라비안 차(tea)도 마셨다. 솔리만이 와서 크랙션을 울려댈 때까지 우리가 이야기 한 것은 트레이시 채프만과 밥 말리의 레게, 등 음악에 관련된 것이었던 것 같다.
그는 트레이시 채프만의 빅팬이었는데, 그녀의 정품 씨디를 여러 개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노래 “fast car”를 여러 번 듣고 난 후 우리는 헤어졌다. 그의 이름을 물어본 것도 같은데,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다시 박인환 님의 시를 인용한다면 지겹겠지?)
참 이상한 것은 이스라엘을 여행하더라도, 아랍냄새가 물씬 풍기는 장소가 나에겐 더 매력이 있고 흥미롭다. 어쩌면 나뿐만 아니라 한국사람 대부분이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동질감을 느끼는 지도 모르겠다. 하이파는 사실 너무 국제적이어서 그 어떤 냄새도 나지 않는다. 세계화 되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악코는 달랐다.
오스만 왕조의 문화유산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 곳은 지나가는 아무나를 집에 초대해 차 한 잔을 대접하는 아랍인들의 인정이 여전히 남아있고, 오스만 왕조의 거대했던 세력이 바닷속에 남아, 거친 파도로 관광객들을 놀래키며, 아직도 길거리에 나와 앉아 광합성을 즐기며 한가하게 물담배를 피는, 시간이 정지된 곳 같았다. 이스라엘을 여행하려는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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