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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진규의 생일 축하합니다."
"진규야 생일 축하해, 와와와, 하하하. 헤헤헤."
"야, 우리 진규를 위해 애국가를 불러주자,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토록..."
어제(10일)는 아빠와 단 둘이 사는 진규(10·다압초 3년)의 생일이었습니다. 동네 아이들은 진규 덕분에 짜장면 파티로 배가 부르고 과자·사탕의 달콤함을 즐기다 왁자지껄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엊그제 장난을 치다 마을 승규(13·다압초5년)형에게 얻어터진 진규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까마득히 잊고 생일축하 세례에 마냥 즐겁습니다.
진주에서 엄마와 단 둘이 살던 진규는 동네 공장의 방을 빌려 살던 아빠가 번듯한 집을 마련하면서 이제 아빠와 단 둘이 살게 됐습니다. 진규는 헤어진 부모 틈에 끼여 잦은 전학에 시달렸지만 좀처럼 기죽지 않습니다. 다른 친구들처럼 형제가 없어 싸울 때 불리한 것 외에는 별다르게 서운할 것이 없다는 진규, 학교와 동네에서 뒤질세라 손들고, 앞서며 통통 튀며 자∼알 지냅니다.
레미콘 운전기사인 진규 아빠는 어제 얼큰하게 취했습니다. 동네 아이들에 휩싸인 생일잔치 분위기로 인해 한결 쓸쓸함을 지울 수 있었고 "왜 생일을 말해주지 않았어요, 우리가 미역국을 준비할 건데..."라는 솔이 엄마의 항의도 서운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왜 서글프지 않겠습니까? 남자 단 둘이 사는 살림의 궁색함과 긴 겨울밤의 외풍이 춥지 않을 수 없겠지요.
진규 아빠(김형길·39)는 <평화를 여는 마을> 마을운영회 대표입니다. 덕분에 대통령 지역 순시에 초청돼 악수도 하고 기념촬영도 했습니다. 얼마 전 아빠가 대통령과 악수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액자가 도착하자 진규는 한참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대통령아저씨와 악수한 우리 아빠> 진규는 액자를 들고 집집마다 찾아갔습니다.
"아저씨, 우리 아빠 대통령과 악수했어요!"
"야, 솔아 우리 아빠 멋있지!"
우쭐거리며 친구들의 시새움을 한 몸에 받던 어느 날, 학교에까지 액자를 들고 가 친구들에게 신나는 자랑을 하며 시골 아이들의 야코를 죽이기도 했답니다.
고등학교 시절 경남 육상대표까지 지낸 건장한 진규 아빠, 한때 경남 하동의 밤무대 밴드마스터로 쏠쏠한 돈맛도 보고, 관광버스 운전사로 멋진 팔도 유람도 다니고, 스킨다이버로 물속 세상을 잠수하던 그였지만 서른 끝자락에 닥친 것은 빚더미와 깨진 가정이었다고 합니다.
얼마 전, 진규 아빠는 "형님, 너무 힘들어 죽겠어요!"라며 한숨을 토했습니다. 월급이 차압당할 위기라고 했습니다. 느닷없던 친구의 보증 건과 애엄마 보증 건이 연달아 터지면서 정신 차릴 겨를이 없다고 했습니다. 혼자 자식을 키우는 사내의 긴 한숨의 아득함, 섬진강 바람이 백운산 자락을 오르는지 숨 벅찬 바람소리가 문틈 사이로 새어 들어왔던 밤이었습니다.
하지만 마냥 슬퍼할 틈이 없습니다. 슬픔으로 연대를 이룬 평화마을 주민들, 저마다의 슬픔으로 모인 사람들은 이웃의 어려움을 덜어줄 돈과 땅은 없지만 슬픔의 사연을 함께 들어줄 귀가 있습니다. 그래서 도란도란 이야기 꽃샘도 파고, 한숨의 여울도 만들고, 살아갈 길을 트기 위해 일자리 정보도 나눕니다.
마을을 찾아오시는 귀한 손님 대접을 위해 떡도 하고, 단밥도 만들고, 돼지머리 눌린 고기도 장만해야 하는데...
왁자한 생일잔치에 힘이 파한 아이들은 일찍 잠 들었습니다. 10시 무렵, 홀로 아들 둘을 키우는 마을 홍보위원 세원이 엄마가 매실농장의 야간작업에서 돌아왔고 해비타트 송간사님도 자리했습니다.
일거리가 수북합니다. 당장 오늘 저녁(11일)에 방송(KBC)이 마을 취재차 방문하고 15·16일에는 지난여름 집짓기 행사에 참여했던 40여명의 귀한 자원봉사자들이 또 다시 겨울봉사를 위해 마을을 찾아오신답니다.
뿐만 아닙니다, 마을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민들레공동체 김인수 전도사님이 17∼20일까지 4일간 마을 어린이를 위한 '민들레캠프'를 열기 위해 오신다 하고, 18일에는 올해 여름 지미카터 워크프로젝트(JCWP)의 일환으로 아산·오산에 지어질 <화합의 마을> 입주자 선정위원들이 마을 견학을 오신다 합니다.
떡도 하고, 단밥(식혜)도 만들고, 돼지머리 눌린 고기도 장만해 대접해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직 마을기금이 없는 형편이어서, 마음은 굴뚝같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아 마음을 동동거려 봅니다. 여하튼 오신 손님 따뜻하게 대접하고, 마을을 지어준 수많은 손길의 정성을 잊지 말자고 다독거려 봅니다.
자정 무렵에 회의가 끝났습니다. 이날 결론은 언론대책입니다. 평화마을은 그 동안 언론으로부터 지나칠 정도로 각광을 받아왔습니다. 그로 인해 마을주민들이 동원되기도 하고, 연출을 위해 억지 웃음도 필요했습니다.
언론이 <평화를 여는 마을>을 쏟아주신 애정 어린 관심과 격려에 감사하지만, 앞으로 일방적인 취재는 정중히 사양하기로 했습니다. 취재의뢰가 오면 취재기획안을 정식으로 받은 뒤 마을운영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협조 여부를 통보하기로 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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